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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마태복음5:17-20)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싫어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시하고 폐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줄 생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케(plhrw'sai)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일점일획이라는 말은 성경글자의 아주 작은 획을 말합니다. 일점(ijw'ta e}n)은 히브리어의 가장 작은 문자인[y]‘요드’이고 일획(miva keraiva)은 헬라어 [i]‘이오타’입니다. 즉 구약성경의 아주 작은 말씀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구약성경’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있는 내용을 새롭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신 그 말씀을 예수님이 깨버릴 리가 없습니다. 저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공격하는 무기로 율법을 폐한다 했지만, 그들은 율법의 가르침이 성경적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영역을 뒤바꾸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바꾸어버렸고, 사회적인 영역으로 바꾸었습니다. 율법의 내면적인 영역이 아니라 외형만을 준수하면 죄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손으로만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살인죄를 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간음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하는 말씀의 배경이 그들의 이러한 생각을 깨버린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구약성경을 깨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치우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율법적인 것을 깨버리는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을 빼버리고 가르치는 자는 결코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서기관과 버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자기들 스스로 만든 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의는 천국과 관련이 없었습니다. 내적으로 만족시켜야 하는 ‘의’ 곧 심령을 만족시켜주는 의가 있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겉으로만 보이는 의가 아니라 내면을 만족시키는 의, 하나님께서 나온 의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내면의 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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