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의 복(마태복음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Makavrioi oiJ praei'", o{ti aujtoi; klhronomhvsousin th;n gh'n.
“복들이 있다. 온유한 자들은, 왜냐하면 저희가 땅들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prau?"’“온유한”은 헬라어문헌에서 ‘사물, 동물,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써졌습니다. 사물에 관해서는 ‘진정시키는, 온화한’(진정제, 온화한 말), 동물에 관해서는 ‘길들인’ ‘유순한’(길들인 유순한 짐승; 짐승을 길들이거나 짐승이 화나거나 흥분할 때 달래거나 진정(안정)시키는 것을 의미), 사람에 관해서는 ‘온화한, 친절한, 온유한, 즐거운’ 것으로 잔인하고 매정하고 독한 것의 반대입니다. ‘온유한’은 고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 즉 모욕을 받고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 재판에 임하여 인정 많은 재판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자비로운 왕 등이 지닌 성격의 특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개념을 정열과 무감정의 양극단 사이에 있는 복된 중용의 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LXX인역본에서는 히브리어 아니(억압받는, 가난한, 괴로움 당하는, 비천한, 낮은, 겸손한)의 역어와 아나우(가난한, 겸손한, 온유한)의 역어로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난한 자란 토지 재산이 없는 사람으로서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권리를 빼앗기고, 하나님께서 물려주신 풍성한 유업을 수탈당했습니다. 그들은 불법적인 착취의 희생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니’의 편이십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심판자께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은 오직 이 사실을 신뢰하며, 이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축복선언에 나타납니다. 이 축복선언은 억눌리고 멸시 당하며, 마치 가나안 정복 이전의 이스라엘처럼, 자기 것이라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장래에 하나님의 땅의 통치의 상속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왜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을 말하는지를 알 것입니다.
우리는 온유하다고 하면 굽신굽신하고 무조건 낮은 자세를 취하며, 줏대 없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것은 줏대 없는 것도 아니고, 연약한 것도 아닙니다.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참아내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저희들은 착취를 당했습니다. 버림을 당했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참아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도저히 땅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가 저희들에게 온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든 것을 참으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천국의 법은 역설적인 법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겼습니다. 가난함이, 애통함이, 온유함이 이 세상(kosmos)에서는 손해일 것 같은데, 그 반대로 뒤집었습니다. 도저히 복을 받을 것 같지 않은데, 복을 받으며, 복을 받을 것 같은데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법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쌍히 여기는 자의 복 (1) | 2009.12.24 |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0) | 2009.12.23 |
애통하는 자의 복 (0) | 2009.12.21 |
심령이 가난하면 복 (0) | 2009.12.20 |
산상 설교 (0) | 200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