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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교회(사도행전2:1-47)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교회를 건전한 종교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불신자들이다. 성도들은 다르게 이해한다. 불신자들은 천국과 지옥은 상관하지 않고, 삶을 바라본다. 성도들의 삶을 바라보고 교회를 평가한다.

1절 불신자들이 이해하는 교회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1881-1944)감독은 1942년 켄터베리 대주교의 취임식 설교에서 지난 2세기 반에 걸쳐 그리스도교의 선교운동의 결과로 세계적인 대 그리스도교의 출현을 일컬어 우리 시대의 위대한 새 사실이라고 했다. 교회의 선교는 유대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아시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래서 웬만한 곳은 거의 복음이 전해진 상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기독교가 전해진지 2세기도 채 되지 않아 전국 어디에도 교회 없는 곳이 없다. 그래서 한동안 교회가 잘 나갈 때는 전 인구의 25%가 신자라고 했었다. 하지만 IMF이후 교회의 성도들은 급속히 떨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성장이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가 되었을 때는 성도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제에 항거했고, 가난을 타파하려 했으며, 사회의 약자들과 함께 했었다. 특히 기독교는 국민들과 함께 가려 했었다. 국민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불신자들에게 좋지 않은 조짐이 1970년대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회가 대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다가 기독교가 사회약자를 보호하려 하지 않고, 강자의 편에 섰다.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12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19805월에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때 교회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미명하에 폭정을 일삼던 군부에 침묵하거나 두둔하였다. 1960315일의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부정선거,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파동, 1970년대 1인 독재를 위해 제정한 유신헌법에 대하여 침묵하였다.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였을 때는 그를 위해 조찬기도회를 열어 불법적인 군사정변을 정당화해주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목사와 장로들이 정치의 맛을 알았다. 그래서 정치판에 뛰어들어 수많은 국민들과 적을 만들어 놓은 상태이다. 즉 불신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교회는 종교가 아니라 힘으로 이해하고 있다.

2절 교인들이 이해하는 교회

주후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콘스탄틴이 막센티우스와의 밀비안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성과로 인해서 기독교를 로마제국에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교회는 약 300년의 피 뿌림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이때부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제국의 종교로 거듭난 기독교는 누가 수위에 있을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동방과 서방의 오랜 싸움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의 순수함이 사라졌다. 말씀이 예전으로 바뀌었고,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거기에 교회는 이단들과도 싸워야 했다. 사도 시대부터 발흥한 이단과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교리를 세워야 했다. 삼위일체론, 기독론 등의 교리를 세워야 했다. 그리고 밀물처럼 밀려오는 권력인 로마카톨릭과 대전(大戰)을 치러야 했다. 대전을 치르고도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다. 독일에서부터 개혁의 기치를 든 기독교는 프랑스, 스위스를 휩쓸고는 영국에 착륙했다. 거기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에 19세기에 들어왔다. 일제시대에 들어온 한국교회는 시험대에 올랐다. 신사참배, 좌경신학과의 전쟁, WCC로 인한 분리, 교회의 대형화, 교단과의 수위권다툼, 정교유착으로 인한 타협 등으로 인해서 교인들이 이해하는 것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그게 그거라는 인상을 받는다.

3절 바울이 이해하는 교회

불신자들과 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교회는 부정적이다. 그러면 바울은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1. 바울이 세운 교회

다메섹에서 회심한 바울은 제1, 2,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교회들을 세웠다. 그 대표적인 교회들이 고린도교회들, 갈라디아교회들, 에베소교회들, 빌립보교회들, 골로새의 교회들, 데살로니가교회들이다.

2. 바울이 이해한 교회

바울은 교회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도이다. 교회(ejkklhsiva)가 신약에 115회 중 62회가 바울서신에 나타남이 이를 입증한다. 바울은 에클레시아를 우주적인 교회를 가리킬 때도 사용하고(5:2325)한 장소에서 회집되는 개 교회를 가리킬 때도 사용한다(고전 1:2; 4:17). 그러나 바울은 건물을 교회라 부르지 않는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배와 교제와 봉사를 위해 정규적으로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켰다.

. 성령에 의한 단체(고전 12:3,13, 8:9-11)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은 신약교회 설립을 위해 계획된 사건이다. 새로운 사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요, 신약교회를 인친 사건이며,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덧입힌 사건이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며(고전 12:3),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고전 12:13).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은 성도 안에 거하신다(8:9-11). 따라서 기근의 시대에 우리자신의 신뢰를 새로운 운동계획이나 새로운 유형의 어떤 것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이심(1:22-23)

교회의 건물을 초대형으로 세우고 교회라고 하는데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그 힘과 존재를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살아있고, 자라나며, 움직이고, 일하는 유기체로서 우주적인 유기체다. 교회는 그 본질, 기원, 시간(영원성), 목적성으로 보아 그리스도라는 반석위에 단호히 세워졌다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란 유기적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대표성을 말하고, 통치성을 말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1:23의 논리의 방향은 교회로부터 그리스도가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와 우주로 향한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세우시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교회의 존재와 사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제공한다고 이해하였다.

. 유기체로서의 교회의 기능(고전 12:12-26)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2:12-26에서 성령이 내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기적 기능인 지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1) 유기체인 교회

교회를 몸에 비유한 것은 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교회도 유기적인 단체라는 증거이다. 몸의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몸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듯 교회도 유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각 지체가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도바울은 다양성과 통일성을 몸과 지체의 비유를 들어 말했는데, 교회는 다양하나 하나라는 말이다.

(2) 다른 지체를 위한 교회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우리 교회주의이다. ‘우리교회가 아니면 다른 교회들은 거의 적()의 수준이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큰 병폐이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교회는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 즉 모든 사람들이 우월감을 가지지 않아야 하며, 자기교회 건물이 크다고 독존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교회의 우월성이 없음

몸의 지체는 귀천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몸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서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였기 때문에 어떤 교회는 귀하고 어떤 교회는 천할 수 없으며, 어떤 교회는 특별하고, 어떤 교회는 보통의 교회라 할 수 없다.

.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의 기능(1:18)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교회를 살게도 하시며, 자라가게도 하신다(2:19). 그는 교회의 유기체적인 머리가 되신다. 머리로서 그는 교회를 다스리시는 권한을 행사한다. 그리스도는 모든 교회를 통치하신다. 우리의 몸이 우리 자신을 외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 보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는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여기고(12:1), 우리 전체 인격을 모두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그리스도를 대신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즉 교회가 움직이면 그리스도가 움직이는 것과 같고, 교회가 휴식을 취하면 그리스도가 휴식하는 것과 같고, 교회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리스도 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과 같으며, 교회가 선한 일을 하면 그리스도가 선한 일을 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능은 하나님께는 항상 예배드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교회만 가지고 있는 권리

(1) 구속의 비밀을 책임진 교회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리스도자신이 이방인과 유대인과의 막힌 담을 허셨다(2:14)고 했다. 이 막힌 담은 수천 년 전부터 허물수가 없었다. 누구도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물지 못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담을 허무신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이 담은 유대인들만 가지고 있었던 구원이 이방으로 나온 것이다.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철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2) 천국을 미리 알게 한 교회

바울 사도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에 귀신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신성모독의 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한다(고전 6:13-18). 교회가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 때문이다.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고(6:8)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고(8:17)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6:6)예수님과 함께 죽고(고후7:3)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고(6:4)예수님과 함께 부활하고(2:12; 3:1)예수님과 함께 살림을 받고(2:13; 2:5) 예수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고(8:17)예수님과 함께 후계자가 되고(8:17)예수님과 함께 통치한다(딤후 2:12). 즉 교회는 이 세상에서 어디에도 없는 기관으로 천국을 항상 맛보고, 미리 천국을 알게 하는 곳이다. 비록 우리는 이 세상에 몸을 두고 있지만 항상 본향인 천국을 소망하며 나그네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주민권을 두고 있지만,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소망은 이 세상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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