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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정치(사도행전1:1-26)

변증법(dialectic)의 사전적인 정의는 동일률(同一律)을 근본원리로 하는 형식논리에 대하여,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하는 논리입니다. 변증법의 창시자였던 엘레아학파에서 상대방의 입장에 어떤 자기모순이 있는가를 논증함으로써 자기입장의 올바름을 입증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에 전개되고, 플라톤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헤겔은 인식이나 사물은 정((()(정립·반정립·종합, 또는 卽自·對自·卽自對自)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의 단계란 그 자신 속에 실은 암암리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의 단계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모순에 부딪침으로써 제3의 합()의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합의 단계는 정과 반이 종합 통일된 단계이며, 여기서는 정과 반에서 볼 수 있었던 두 개의 규정이 함께 부정되면서 또한 함께 살아나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이 변증법에 따르면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政治/politics)라는 것은 진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어떤 압력에 의해서 한 치를 양보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그랬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23:4). 유대인의 시기로 재판에 넘겨준 줄을 알았습니다(27:18). 그러면 소신대로 바른 판결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바른 판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민란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명절을 당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제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께서 죄를 면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빌라도는 소신껏 재판을 해야 했습니다. 바라바는 정죄하고 예수님은 석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생명력에 영향을 끼칠까하여 바른 판결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이후로 빌라도는 신앙 고백할 때마다 등장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교회정치는 어떻습니까? 역시 진리를 진리답게 하지 못합니다. 정반합 사상으로 나갈 확률이 많습니다. 이편도 옳은 것 같고, 반대하는 저 편도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습니다. 중간으로 정하든지 표 대결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진리편이 승리하게 되느냐? 그렇지를 못합니다. 신사참배는 엄연한 우상숭배인데도 변절한 힘 있는 삯군목자들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떠들면서 회유하고 압박한 사례로도 진리가 승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작금의 교회정치행태가 사회에 비쳐질 때 더욱 선교에 훼방거리만 되었습니다. 자신들은 옳다고 말하며 물의를 일으키지만, 결국 빌라도의 법정과 조금도 다름없는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정치는 안할 수는 없지만 많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콘스탄틴의 교회정치나 빌라도의 법정이나 양상만 다르지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정치는 아차하면 진리를 그르칠 수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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