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막으려하는 어리석은 자들(사도행전5:17-32)
17절을 보면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이에 사도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 모두 들고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들고 일어났습니까?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들고 일어난 원인이 시기였습니다. 보통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못된 시기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시기가’의 시기는 보통 질투가 아닙니다. ‘시기’ zh'lo"/젤로스는 zevw/제오/끓이다 에서 온 말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열정적인 헌신의 능력이나 상태로서 열심입니다. 그런데 이 열심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이 가득함 역시 ‘완전한 가득함’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시기는 사도들을 죽여야겠다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패거리들이 함께 모여 뜻을 같이 했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을 즉시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의 시기심은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일어난 기적들과 그간의 정황들을 생각한다면, 정신이 제대로 박혔다면, 해서는 안 될 일들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이미 이런 박해는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21:12을 보면‘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는 박해는 이미 예상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들이 어떤 상태로 나온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 사도들이 이렇게 담대해졌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이고, 성령께서 지금 그들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박해 따위는 사도들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1세기 경의 예루살렘성전을 맡은 자들입니다. 사두개인들,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이들과 짜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가솔들과 하속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전하고 있는 유전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계명을 지켜야 하며, 그들의 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하기를 바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나타나 자신들의 방식이 아닌 예수의 방식을 전한 것이 몹시 괘씸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잡아가둔 것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지도자들이 제대로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실제로는 사도들이 실권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였습니다. 아닌 사람들이 실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예루살렘은 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닌 사람들이 실권을 잡고 있는 정부나 나라들은 결국에 가서는 모두 彼岸(피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저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우리들일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판정 앞에 사도들을 세운 제사장들 (0) | 2015.02.05 |
---|---|
분통터지는 종교지도자들 (0) | 2015.02.04 |
교회에 능력이 더해짐 (0) | 2015.02.02 |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 (0) | 2015.01.31 |
교회의 진로를 막으려 했던 사람들 (0) | 2015.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