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인이 아니라 히브리인(사도행전7:23-29)
모세는 여태까지 자신이 애굽의 왕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차기 왕의 수업에 열중했습니다. 애굽의 모든 문물을 습득했습니다. 이집트의 학술에 능통했고, 말과 하는 행동이 애굽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이집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이집트사람들이 그렇게 박해하고 증오하는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모세는 심히 갈등했습니다. 40이 된 그는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손들이 노역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날마다 노역현장에 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감독자가 히브리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그 이집트인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백성을 돌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을 빌어서 구원하여 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사람들은 모세에게 냉냉했습니다. 모세의 마음을 전혀 멀라주었습니다.
이집트인을 죽이고 난 이튿날이었습니다. 다시 노역장에 나간 모세에게 히브리사람들끼리 다투었습니다. 모세는 동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 그들을 서로 화해시키려 했습니다. 형제들끼리 왜 다투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전혀 뜻밖의 상황에 돌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를 우리의 재판장으로 세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제 이집트인을 죽인 것 같이 이번에는 나를 죽이려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모세는 왕자에서 죄인으로 떨어졌습니다. 차기 이집트의 실권자가 평민으로 전락했습니다. 미디안은 광야입니다. 미디안은 애굽의 생활과는 판이한 곳입니다. 메마른 곳입니다. 미디안에 아무런 연고도 없습니다. 무작정 탈출한 곳이 미디안이었습니다. 모세는 드디어 고난의 신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고난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고난이 모세를 성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미디안에서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을 했습니다. 거기에서 게르솜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드로의 양무리를 기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을 바라보며 애굽의 히브리민족을 생각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쉬워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 외에 도망자로서 그가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매일매일을 보냈습니다. 그러기를 40년이었습니다. 그는 점점 무력해졌습니다. 갈수록 동족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지만 무력한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모세는 미디안의 신학원에 입학한 줄을 몰랐습니다. 총장이신 하나님께서 학점을 체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를 날이 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십보라와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일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있는 자리에서 갖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를 하감하시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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