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의 출생(창세기4:1,2)
아담이(베하아담) 그 아내(이쉬토) 하와와(에트 하우와) 동침하매(야다) 하와가 잉태하여(바타하르) 가인을(에트 카인) 낳고(바테레드) 이르되 하니라(바토메르)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남(이쉬) 득하였다(카니티) 2 그가 또(바토세프) 가인의 아우(에트 아힌) 아벨을(에트 하벨) 낳았는데(라레레트) 아벨은(헤벨) 양(촌) 치는 자(로에) 이었고(바히이) 가인은(베카인) 농(아다마) 사하는 자(이베드) 이었더라(하야)
하와는 출산의 고통을 가인을 낳았을 때 알았을 것입니다. 거의 죽음직전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가인을 낳았을 때 해산하는 수고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와 아담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각 아이와 함께 어떤 새로운 희망이 오게 되었습니다. 가인의 이름은 그 안에서 새로운 출발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가 담겨있었습니다. 가인이란 이름은 ‘소유’입니다. 부모는 가인의 출생에서 그 아이를 큰 가치가 있는 소유로 보았고, 그 아이에게서 구속을 기대했습니다.
이로부터 여인의 후손은 계속 기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에게서 죄가 확대되었습니다. 인류최초의 부모가 낳은 첫 아이의 속에서 죄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죄라는 것은 참 특이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죄는 사람들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는 죄가 교묘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오염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품과 성격의 타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거룩하지 못합니다. 이미 아담과 하와는 탁월하고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이제 이들은 죄가 무엇인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것입니다. 죄의 기능들은 거룩하지 못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에 합치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인간은 완전성에 이르지 못합니다. 사람의 이해력은 어두워졌습니다. 그 성정은 타락하였습니다. 그 마음은 심히 부패하였습니다.
아담은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아벨이라 했습니다. 이 이름은 ‘무익’입니다. 여기에서도 죄라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즉시 아벨은 양치는 자, 가인은 농사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농업과 목축업은 일찍이 이 세상에 존재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다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가진 직업에서도 긴장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죄 때문에 빚어진 일들입니다. 죄는 서서히 가인의 마음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제 결정적일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최초의 인간이 낳은 인간의 마음속에 죄는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전적인 부패입니다. 저급한 전적인 타락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죄는 우리에게서 왕노릇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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