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와 교회와의 관계(사도행전15:22-29)
예루살렘교회는 공의회가 끝나자 즉시로 이방교회에 가결된 내용을 통보하기로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더 천거해서 보냈습니다. 유다(바사바)와 실라였습니다. 이들 편에 편지를 보내어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에 있는 여러 이방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예루살렘교회)가 전혀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희교회들을 말로 괴롭게 하여 이방교회들이 마음이 편치 않았을거라는 내용까지 적어서 이방의 교회에 보냈습니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고 권고였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이방교회들이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에 명령을 할 권한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는 교회들은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의 교회들이나 모두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교회는 보편적입니다. 예루살렘교회나 이방의 교회들이 모두 같습니다. 누가 크고 작고가 없습니다. 누가 명령하고 명령을 받고가 없습니다. 다만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교단을 만들어 서로간의 친교를 위해서 만든 것뿐입니다. 어떤 교회들은 크고, 어떤 교회들은 작고가 없습니다. 즉 특별한 교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교회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교회중의 우리교회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 우리교회만 교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고넬료 사건을 통하여 모든 민족적인 울타리가 허물어졌습니다. 교회는 한 민족(유대)만의 교회가 아니고, 초민족적이고 다인종적인 신자들의 공동체여야 했습니다(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교회여야지, 다른 교회를 다스리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교회건물에 십자가를 달아서 통일이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입니다. Reymond는 모든 신자들은 한 성령에 의해 세례를 받아 한 머리와 한 주를 가진 한 몸 안으로 접붙여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건물을 크게 하여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은(교회가 커야 일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성경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교회가 크면 목사가 목사로 보이지 않고 총재로 보이며, 일반 회사의 CEO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기업경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호와의 관계는 수평관계이지, 수직적 관계는 아닙니다. 교회위에 교회 없고, 교회 밑에 교회없습니다. 모두 주님을 머리로 한 하나님의 교회들입니다. 지상에 교회의 대표도 없습니다. ‘내가 교회의 대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교회와 교회와의 관계는 上命下服式상명하복식의 군대와 같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수평적인 교회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깨져 있어서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나 사도들은 그렇게 만들지 않았는데, 좀 더 큰 교회들이 문제를 야기 시킨 것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관계는 수평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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