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철학/에피쿠로스학파(사도행전17:17-18)
아테네는 토론문화가 발전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들이 믿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피력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경쟁관계에 있는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학파의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자신들에게 어떤 학파를 전하는 말장이로 생각했습니다. ‘말장이’라는 말은 비하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어떤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18절을 보면 그리스의 철학가들인 에비구레오학파와 스도이고학파가 나옵니다.
에비구레오(!Epikouvreio"/Epioûreios)는 에피쿠러스(Epicurus/주전241-270)하파의 창시자입니다. 데모크리투스(Democritus)의 원자설에 근거한 그의 윤리체계는 쾌락(hedone)을 인생의 최고 목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가장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쾌락은 고통과 어지러운 열정과 미신적인 두려움이 없는 ataraxia(평정)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주전341년에 사모스 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세상을 원자 입자들이 무작위로 조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에피쿠레스는 데모크리투스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주전306년에 자신의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였습니다. 주전270년에 사망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평정과 초탈함을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였고 신들은 인간의 실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욕망을 제한함으로써, 그리고 우정을 통하여 만족을 구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스승의 세련된 인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일생을 화락, 우정과 정신적 선의 향유에 바쳤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윤리학/ 에피쿠로스주의는 개인이 모든 사회관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순수하게 독립됨으로써 문화의 타락을 피하려는 노력에서 성립하였습니다. 당연히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인 의무에 무관심했으며, 조용한 은둔 속에서 삶을 영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토아 철학자처럼 이성적 활동의 전개와 이성에 의한 감정 동요의 억제가 삶의 목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그는 나쁜 결과나 고통이 없는 삶의 선을 만끽함으로써 특정한 감정 성향의 형성을 추구하였습니다. 순수한 향락은 불쾌의 회피, 특히 부당한 선입견이나 자연력 및 신에 대한 공포에서 생기는 불쾌의 회피를 자치 안에 포함했습니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는 사물의 관계 및 신의 본질에 관한 조명을 얻기 위하여 인식을 추구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외부적 및 내면적 안정, 곧 평정(ataraxia)입니다. 따라서 이성의 과제는 향락을 검사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를 평가하고 아울러 불쾌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아하고 우정어린 관계의 배려에서 최상의 표현을 발견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쾌락이 가장 높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쾌락의 만대로 변한다는 인식에서, 후기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의 노력은 단지 불쾌만을 피하려고 하였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의 형이상학과 인식론/ 형이상학에서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윤리학을 가장 훌륭하게 정립시키는 것으로 여겨지는 그러한 견해, 곧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나선형의 운동이 무거운 원자를 가벼운 원자로부터 분리시켰으며 그리하여 세계형성이 도출됨으로써 세계는 서로 다르게 형성된 원자의 혼돈된 근원적 덩어리로부터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영혼도 역시 원자들로부터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정 교하고 둥근 원자로부터 성립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원자는 가장 가벼운 운동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신은 세계과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인간과 유사한 이상적 형태입니다. 이러한 형이상학에는 감각주의적 인식론이 연관됩니다. 모든 표상들은 감각 지각에서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사물들로부터 분리되는 상(像)들이 감각기관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통하여 이 감각지각을 설명합니다. 환상의 상과 꿈속의 상 역시 공중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떠다니는 상의 작용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에는 순수한 감각인상을 참다운 것으로 특징짓는 확실성이냐 명증성이 귀속되지 않았습니다. 개념이란 기억 속에 고정된 감각인상 이외의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개념은 지각에 의하여 항상 확인되거나 부정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만 진리를 포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합리적 인식은 에피쿠로스학파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가치를 상실합니다(Curt Friedlein 2003, 92-93).
이러다보니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말장이의 말로 비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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