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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철학/스토아학파(사도행전17:17-18)

스토아(Stwi>kov"/Stoikôs)란 스토아(stoav/stoâ/주랑)에서 유래했습니다. 주랑은 화가들에 의해 채색된 현관입니다. 이 말에서 스토아라는 학파가 나왔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는 Zenon(주전336-264)입니다. Cyprus의 Citium의 출신입니다. Zenon은 제자들을 38년동안 가르쳤으며, 단식으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후계자는 클레안테스(Kleanthes/주전331-233)였습니다. 다음으로는 크뤼시포스(Chrysippos/주전280-209)입니다. 스토아학파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로마의 Cicero(주전105~43), Seneca(4-65), 노예에서 해방된 Epiktetos(50-138), Marcus Aurelius(121-180)입니다. Curt Friedlein은 스토아학파의 윤리학과 형이상학, 심리학과 인식론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윤리학/ stoâ철학자들의 중심과제는 참다운 윤리적 삶을 위한 법칙을 찾아내어 현실적으로 적용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정리되어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것은 물리적 본성의 법칙으로, 정신적·윤리적인 것은 정신적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정리되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특수한 인간적인, 곧 윤리적인 삶의 법칙은 특수한 인간적인 본성에서 추구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성은 인간의 이성에서 성립한다고 했습니다. 오로지 이성만이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분려시키고 보다 더 높은 피조물로 고양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은 인간의 고유한 본질과 그의 내면적인 참다운 본성을 만듭니다. 이성에 따라서 자신의 전체 삶을 정리하는 것만이 현존재의 목적이고 윤리의 총체 개념일 수 있습니다.

본성에 적합한 삶, 곧 이성에 적합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stoâ철학자들의 최상의 도덕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stoâ철학에서는 이성에 반대로 작용하는 감각 충동, 욕구 또는 정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이성은 모든 삶의 상황에서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성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판한 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이성 법칙은 윤리법칙 자체였습니다. 이성 법칙을 인식하고 그것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현인(賢人)이며 동시에 윤리적인 인간입니다.

stoâ철학에서는 보편적 이성 법칙 내지는 윤리법칙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비윤리적입니다. stoâ파들은 현세의 모든 선은 우리들의 충동의 대상이고 우리들의 애착을 만족시켜 주므로 피하여야 하고, 부, 존경, 사랑과 우정까지도 피하여야 합니다. 완전한 무욕은 stoâ학파의 도덕원리의 실행이 기대되는 외적 상황입니다. 스토아학파의 도덕원리의 실행과 동시에 이성의 지배를 위한 내면적 전제는 냉정하며 충동과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상태입니다.

이성만이 현자(賢者)의 영혼을 충족시키며 충동과 의지의 삶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자는 유일한 지혜의 덕을 소유합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인식에 따라서 살기에 너무 약하다고 느낀다면 그는 자살로써 인륜의 속박을 벗어납니다. 현자가 아닌 다른 인간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내면의 이성은 아직 전혀 각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이성이 전혀 지배하지 못하는 곳에는 이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덕에는 아무런 등급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와 덕을 모두 소유하거나 아니면 전혀 소유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자가 있거나 아니면 바보가 있을 뿐입니다. 인간내의 이성적인 것과 충동적인 것의 이러한 현저한 대립과 그로 인하여 제한된 현자와 어리석은 자 사이의 대립은 스토아학파의 도덕원리를 실천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자기의 충동적인 삶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엄격한 stoâ학파의 철학자들 자신도 이러한 통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스토아사람들에게 ‘현자’는 그들에게 이상상(理想像)으로서 도달할 수 없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에 근접한 헤라클레스, 소크라테스, (키티온의) 제논, 클레안테스 등은 위대하고 성스럽게 여겨졌으며 최상의 존경을 누렸습니다. 결국 stoâ학파에서는 매우 현저한 개인숭배가 발전되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형이상학/ stoâ학파의 형이상학은 독립적인 사변(思辦)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상이한 앞선 체계들에서 빌려온 개념의 종합입니다. 이 종합은 stoâ학파의 윤리적 견해를 지지합니다. 윤리적 삶이 이성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것과 같이 자연적인 사건도 stoâ학파에게는 이성에 의하여 주도됩니다. 이성은 로고스로서의 전체 물질을 꿰뚫습니다. 로고스는 형태를 부여 하는 불로서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와 유사하게 모든 사물의 끊임없는 회귀를 초래합니다. 그러고 세계를 움직이는 이 힘은 이성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아낙사고라스의 누스(nous), 아리스토텔레스의 합목적적으로 작용하는 제1동자(第一動者)에 대한 의존을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사물과 인간의 이상적 완전성에 대한 사고는 절대적인 세계의 파악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마치 절대적인 세계가 플라톤의 이데아계에서 나다났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stoâ철학자들의 사고 과정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물질적 사물 내의 이성의 내재가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연명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stoâ학파에서 그러한 내재의 원리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한층 더 날카롭게 일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stoâ학파 철학자들에게도 세계에 선행하는 신적정신이 전적으로 물질에 결합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산출하는 이성으로서 정신은 세계를 이미 자기 안에 지닙니다. 자연적 사건이 시작됨에 있어서 그는 무한히 많은 부분들로 분리되었습니다. 이 부분들은 결과를 산출하는 이성으로서 전능한 이성의 의 미에서 개물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형태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세계를 충족시킵니다. 따라서 세계는 엄밀한 물질적 구조를 소유하지만 세계의 각 부분에는 신의 정신이 있어서 이 정신은 그 부분들을 보다 더 높은 형태로 올라가게끔 합니다. 인간에게서 이 정신은 자기의식으로 도달하였으며, 만일 인간이 이성으로 하여금 내면을 완전히 지배하게끔 한다면 그 자신은 신이 됩니다.

스토아 학파의 심리학과 인식론/ 유물론적 심리학과 감각주의적 인식론이 이러한 형이상학과 결합됩니다.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이, 신적정신까지도 물질적 기초에 결부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도 물론 영혼의 능력을 가진 육체입니다. 지각 또한 육체적 과정이요 영혼에 미치는 외적사물의 인상입니다. 이러한 인상으로부터, 영혼 안에 있는 인상으로 파악되는 보편적 표상과 개념이 구성됩니다. 결정적으로 플라톤적 의미에서의 이러한 개념의 독립성에 대한 가정이 도전받습니다. 순수하게 정신적인 존재는 있을 수 없고 오직 개물만이 실재를 소유합니다.

심적 기계론의 법칙에 따라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똑같이 형성되는 보편 개념들에서 stoâ학파의 철학자들은 진리의 가장 확실한 기초를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그들은 개별적 지각이 강한 힘으로 밀어 닥칠 경우에만 그러한 지각을 참다운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환상적 표상에 이러한 강한 인상이 귀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특히 키케로에게 있어서 보편 개념은 본유 관념으로 표시되는데, 이는 근대 합리론자(데카르트/스피노자)에게서 반복되는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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