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시는 하나님(창세기3:8,9)
[바람이 불어 날이 써늘할 때에 여호와 엘로힘이 동산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그의 음성을 들었다.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엘로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다. 여호와 엘로힘이 아담을 부르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세상에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들이 나름대로 내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포교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굉장한 진리가 있다고 하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조잡하고 더럽습니다. 벌레나 동물을 신으로 섬기든지 죽어 있는 것들과 이미 지옥에 사람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세관은 기독교 빼고는 없습니다. 모두 인간들이 만든 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황당한 종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종교라고 하면 이생뿐만 아니라 내세관이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말들을 사용하면서도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G. W. F. Hegel은 종교를 철학으로 보았기 때문에 종교를 일종의 지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지적인 차원에 주목하였습니다. 인간이 역사를 이해할 때 신은 자기인식에 이른다고 주장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단순한 의존감정이라 했습니다. 즉 종교란 “인간이 자기보다 우월한 어떤 존재에 의존하는 감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칸트는 종교를 윤리와 동일시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행동을 명령하는 양심의 지상명령의 소리를 자기 속에서 느끼는데 종교에서 인간은 양심에 의하여 규정된 의무를 신의 명령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 본질적인 개념상, 하나님 안에 있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는 생활이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참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습니다. 사탄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무엇인가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동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로서는 어떠한 대책이 없었습니다. 큰일은 났는데 일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문제입니다. 무엇인가 일을 해결해야겠는데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보다 더 힘이 있다고 믿는 것들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자연종교들입니다. 태양신을 믿습니다. 달신을 믿습니다. 산으로 찾아가서 자연의 모든 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구사항일 뿐입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모두 죽은 것들입니다. 그 스스로도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능자를 찾아야 합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찾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셔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찾아오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을 우리는 다만 맞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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