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자였던 바울(사도행전26:9-11)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9-11)
바울 자신도 과거에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을 지독하게 박해한 사람이었다고 술회합니다. 갈라디아서1:13-14을 보면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라고 했고, 디모데전서1:13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아는 대로 박해자가 아니라 어떤 바리새인들보다, 어떤 유대인들보다 심하다할 만큼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했다는 것입니다. 나도 (진실로) 예수의 이름을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못지않게 그리스도인에게 대하여 못된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사도는 바리새인들을 이해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핍박하고 죽이고 하는 일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론적으로는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난 후에 다시 살아난 것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사기꾼이라고 몰아세우고는 핍박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그러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발본색원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준 권위로 집집마다 다니면서 마치 Nazi의 Gestapo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투옥시켰습니다. 이 회당에서 저 회당으로 다니며 그들을 고소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처벌을 받도록 했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재판을 받을 때 정죄하는 투표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형선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되도록 복음이 퍼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각 회당들을 다니면서 강제로 예수를 저주받을 자라고 모독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자신은 이전에는 어떻게든지 그리스도인에게 죄를 주고 되도록 사형을 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울사도의 박해의 끈은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유대와 예루살렘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전 Roma제국에 그의 손이 닿는 한 성도들을 박해했고, 땅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박해를 했던 그가 이제는 박해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던 사도바울, 오직 주 예수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사도바울의 열정과 주님에 대한 사랑을 오늘의 우리들은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 박해자였던 사도바울의 신앙은 후세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귀감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세워졌던 교회는 업그레이드를 시키고, 잘못된 교회들은 고치고, 권면하고 격려했던 사도바울, 진정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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