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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와 무할례와의 사이(로마서2:25-29)

 

할례는 여러 민족이 행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일부국가에서는 잘못된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언약의 표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한다는 것의 표였습니다. 이 할례의식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길 때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였습니다.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이 Hellenism 시대에 Hellas문화와 구별되게 살려고 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인들도 했었습니다(17:10-14). 그러다가 소년들이 했었습니다. 나중에는 갓난 사내아이들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행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다. 그러나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로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할례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삭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그 무할례자가 오히려 할례를 받은 사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지킨 무할례자가 할례 받고 율법을 범하는 너희들을 판단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논증은 겉으로의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고 표면적(보이는)인 육신의 할례는 할례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의 약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면적(은밀한) 유대인이 진짜 약속받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할례는 마음에 받은 할례가 진실된 할례라는 것입니다. 할례는 신령(성령의 능력)에 있고, 의문(문자)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했다는 것이 사람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자칫하면 윤리적인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율법을 행하였느니, 하지 않았느니 논하는 것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론은 그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문제입니다. 거기에 삶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바알사상이 상당히 많이 교회에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물질이 풍부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어떤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업경영의 방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모으기, 재벌들이나 하고 있는 세습화 등이 세상의 기업인지, 교회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모든 성도들을 자신의 교회로 몰려들었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세속화가 되어도 너무나 세속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교회에서 세상을 대할 때 상당한 훼방을 받습니다. 된다하더라도 지연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유대에서 할례란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권과 책임이 공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알면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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