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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에 있는 돌/반석(로마서 9:32-33)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들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자신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무엇을 해도 옳다고 생각하며 바르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18세기의 마지막 몇 해에 끝난 계몽주의 시대는 르네상스의 기초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세적사고와는 궁극적으로 달랐습니다. 인간을 근본적인 사상의 변화에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사상은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지위를 격상시키면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인간이해라는 것은 인간을 뜯어보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인간을 높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시대나 현대나 인간을 높이는 것은 대동소이합니다.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인간이 주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항상 돌에 부딪힙니다.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행위라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죄인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즉 더러운 옷을 입고서 깨끗한 척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행위라고 해봐야 별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선하게 보이는?)를 사람들은 무척이나 좋게 보고 가치 있게 여깁니다. 실상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데 귀하게 여깁니다. 종교의 가치, 각종 행위의 가치가 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부딪힐 돌에 부딪혀버립니다. ‘부딪힐’ /proskovmmato"/“프로스콤마토스”은 ‘걸려 넘어짐’이라는 뜻입니다. 자신들은 철썩 같이 믿었는데 전혀 엉뚱한 결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의에 이르지 못한 원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넘어진 이유는 그리스도예수님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 즉 행위를 의지하는 한 도저히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쉽게 그리스도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굳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 적부터 쭉 믿어온 믿을만한 전통이 있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문제는 깨끗이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확신했고, 철저하게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넘어지는 돌이었습니다. 고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피하여야 했습니다. 어리석게 보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파멸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6:12-17을 보면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산이나 언덕이 매몰되면 바로 죽습니다. 그런데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습니다. 그리고 산들과 바위에게 말합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말합니다. 숨을 곳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산과 바위가 무너져서 자신들을 덮어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종교간 대화? 종교다원화? 말이 안 되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이사야28:16과 이사야8:14을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의 파멸을 입증했습니다.

 

이사야28:16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다

이사야8:14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될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사람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코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오직 인간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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