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라고 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33:18-23)
모세가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드러내소서”(명령형). 모세가 이렇게 말함은 하나님의 은혜에 탄력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가 원했던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이전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계시를 능가하는(16:7,10, 24:16,17) 하나님의 어떠한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던 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더불어 얼굴을 마주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입을 마주대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를 직접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눈에 보이게끔 해주는 형태인 “여호와의 어떤 형상”(민12:8)을 보았을 뿐입니다. 여호와의 직접적인 형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본질적인 영광이 아닌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백성들은 이 영광을 불에 의해 빛나는 검은 구름의 베일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보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어떠한 형상으로가 아니고, 베일에 가려진 모습을 직접 보기를 원했습니다(카일·델리취). 모세의 이러한 요구는 최근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간격이 임무수행을 하는데 인격적인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을까하는 염려였습니다(바움가르텐). 모세의 이 요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선(토브)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네게 반포(카라)하리라 하였습니다. 나는 은혜(헨)를 줄 자에게 은혜(헨)를 주고 긍휼(나함)히 여길 자에게 긍휼(나함)을 베푸신다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인하여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지 못한 인간을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 sw'ma coi?kon 과 yucikovn(지상적이며 육체적인 몸)과 무한하신 하나님과는 경계가 있습니다. 이 경계는 “우리 몸의 구속”에 의해서만 없어집니다. “영의 몸”을 입을 때에는 없어집니다. 하지만 “육의 몸”을 입은 한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경우 진멸이 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얼굴 앞에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위에 섰으라 내가 지나는 동안에 너를 손으로 덮었다가 지나간 뒤에 다시 놓으리라’하였습니다. 모세는 겨우 하나님의 등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은 이전처럼 회복이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이스라엘과 모세와 하나님과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와 하나님은 화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물러서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양보였습니다. 그래야 인간들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양보가 없으면 인간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들은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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