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제안(창세기13:8-9)
창세기저자는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떠났다는 것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습니다(11:31, 12:4). 그가 아브라함과 동행하고 있음을 말합니다(13:1,5). 그러나 재산의 증가로 인해서 이제는 같이 할 수 없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아브람은 가나안의 사람들에게 형제끼리 싸우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아브람이 고심한 끝에 말한 것입니다. 다툼을 피하기 위해서 이미 아브람은 롯과의 가이드라인을 그어가지고 있었습니다. 너와 나는 골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원문에는 [다투게 하지 말자]란 앞에 “제발, 청컨대”를 뜻하는 불변화사 an:(나)가 있어서 “제발 다투게 하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청컨대 나로부터 스스로 분리하라(혹은 떠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왼편이면 나는 오른 편을 택할 것이고 네가 오른 편이면 나는 왼편을 택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의 사건으로 신앙이 자란 것입니다.
아브람의 제안은 화평의 제안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평화를 위한 명분(名分)을 제시했습니다. 아브람의 제안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지 않고는 이러한 제안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종교보다 탁월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사람 앞에서 다투는 것은 파멸을 자취하기 때문에 다투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의 평화를 위한 제안은 아브람은 동일한 권리가 없는 자에게 동일한 몫을 제공하였습니다. 그것도 우선권이었습니다. 이것은 비이기적인 제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다툼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가르침 받습니다. 선한 사람의 부는 하나님의 복의 열매입니다(잠10:22). 하지만 부는 친족과 이웃 중에서 다툼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재산 때문에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투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툼은 주위 환경과 세상인심으로 말미암아 더욱 가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믿음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외적 번영은 그것을 구하지 않은 사람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부(富)하려는 사람들이 가난의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산을 세상의 방법으로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빌4:11).”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 속에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재산의 있고 없음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면 재산에 깊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미 애굽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지켜주실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이 그러해야만 합니다.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그 분은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