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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관심(창세기12:11-16)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자 식량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식솔들의 먹을 것과 짐승들의 먹을 것이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사라를 칭찬한 것입니다. 사라의 미색에 반한 것입니다. 심히 아리따운(hp;y daom] awh)이 나옵니다. 순전히 애굽사람의 눈으로 본 미학적인 외모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에게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방편을 생각했는데 자신들의 관계를 오누이라고 하자고 입을 맞춥니다. 이렇게 되면 거기에서 끝날 줄 알았습니다. 목숨도 보존하고 가정도 지키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의 신하들이 사라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사라의 아름다움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뱀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아브람의 생각은 안전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습니다. 아브람의 일행은 애굽의 바로에게 끌려갔습니다. 바로(h[or]P';파르오)는 애굽어(페르 아오(pera'o;큰 집; The Great House)의 표기와 발음을 옮겨온 것입니다. 이 애굽어 칭호는 원래 애굽왕을 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궁전을 가리켰습니다. 제18왕조(B. C. 1575-1308)의 중반까지도 이 표현은 왕의 통칭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애굽왕의 공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마치 “아말렉”이나 “씨저”와 같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의 최고 통치자에게 불려갔습니다.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온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염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겼습니다. 대신 바로는 아브람을 후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목적은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약속된 씨의 사라는 어떤 힘도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경호원들이 사라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절망의 상태였습니다. 그때서야 가나안을 떠난 것이 어리석은 행동이라 생각했습니다. 굶어죽어도 좋으니 벧엘의 언덕으로 돌아갔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였습니다. 가슴을 치고 통곡해도 아브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결국 믿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믿음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노선을 정확하게 잡아야 합니다.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낭비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합니다. 재물을 낭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뺏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긴 여행으로 세상을 갔지만 우리는 문만 열면 세상입니다. 바로 세상이 들어옵니다. 항상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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