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와 인과 믿음을 저버린 바리새인들(마태복음23:23-24)
이번에도 예수님은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철저한 위선자였습니다. 돈의 액수가 작은 것들은 법을 만들어서라도 십일조로 냈습니다. 레위기27:30을 보면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이라고 했습니다. 땅의 소산 중에서 십일조를 낼 경우에는 땅의 곡식, 실과의 십분 일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박하, 회향, 근채’ 같은 작은 채소들의 십일조는 만들어서라도 냈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책망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저들이 만든 규례는 융통성 없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요구하는 훨씬 중요한 것은 소홀히 취급했습니다. 즉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는 말, 율법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철저하게 지키고, 큼직큼직한 율법, 꼭 지켜야 할 율법은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용산에 있는 신용산교회에서 용산참사로 희생된 고 이상림 집사는 이 교회를 15년 간 다녔습니다. 보통 교인의 부음을 들으면 담임목사나 부목사가 교인들과 함께 유가족을 찾아가 예배하며 위로합니다. 하지만 이상림 집사 유가족이 다니던 교회는 참사 8개월이 지나도록 찾아오지도 않고, 위로예배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신용산교회에서 이상림집사의 장례식장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주보에도 그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용산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신용산교회의 이춘우 장로가 재개발조합장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원로장로가 재개발 사업을 지휘하는 조합장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교회에서 예배하고 동네 이웃으로 지내온 사람이 세입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용역 직원들을 고용하고, 그들 뒤에 숨어서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이 눈치를 보느라고 한 사람도 장례식장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용산교회의 표어는 ‘거룩, 부흥 그리고 나눔’이라고 합니다. 신용산교회는 교회나 선교 단체 17곳을 지원하고 해외 선교사도 21명이나 후원한다고 하며, 정기적으로 이웃을 초청해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교회를 다니면서 이해관계 때문에 적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성도들이 의와 신과 인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본질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밖으로 잘 한다고 하더라도 안에서 잘 하지 못하면, 곧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은 교회사에 꾸준히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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