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목적(창세기11:1-5)
우리나라의 병폐는 삼국시대부터 서로 협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뚜렷하게 南北으로 갈라졌었으며, 東西로 갈라져 내려왔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에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지 않고 고구려와 신라가 연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나 하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까지 南北으로, 東西로 갈라져서 여간하여 마음이 합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협력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를 짓는데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시날 땅에 멈춘 이들은 진흙(rm,jo)을 대신하여 역청(rm;je)을 사용하고 벽돌(hn:bel])로 돌(@b,a)을 대신하여 성(ry[i)과 대(lD;g]mi)를 쌓았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름 내기를 좋아합니다. 지구 가까운 달에 가서도 깃대를 꽂았고, 화성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들은 꾸준히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바벨탑의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들에게 제사 지내는 신전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 폐허지에서 발굴한 바벨탑과 유사한 유형의 지구라트(zigurat)에 대한 연구는 바벨탑이 별들에 대한 예배에 전용되는 하나의 신전이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신전들은 원형으로 된 것과 정사각형으로 된 것이 있는데 형태는 어떻든 모든 신전에는 대개 사람들이 꼭대기에 올라가서 해와 달과 별 같은 것에 제사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올라가는 통로나 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바벨탑의 목적은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집결지점으로서의 일반 종교 중심지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연설에서 한 문장(11:4)에서 ‘우리’라는 대명사가 4회나 등장합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이 말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오만한 야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대한 혁명을 일으켜 하나님의 통치를 떨쳐버리고 하나님 없이 단합과 평화를 이루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들의 단합의 상징은 바벨탑이었습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무모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현재까지 근접한 심판은 바벨탑심판입니다. 따라서 바벨을 떠나야만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에 온 것이나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제2의 출애굽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데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건축물을 크게 합니다. 그래서 한때 “동양에서 제일 큰”이란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배후에는 반드시 사람의 이름을 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역시 이러한 마음을 배제해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언제든지 토양만 있으면 발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혼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제대로 잘 되어 있으면 우리가 이 인생을 살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날마다 죄의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탑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