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창세기11:3,4)
사람들은 죄를 짓는 데는 앞장을 섭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시날 땅에 머무른 이들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습니다. 회장은 니므롯이었습니다. 이 회의에 대해서 윌밍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초교파적 모임과 공식적인 종교의 시작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일은 바벨론 시에서 발생했다.”
니므롯(d/rminI)은 “반역” 또는 “우리 반란을 일으킵시다”라는 뜻입니다. 니므롯은 함의 장자 구스의 아들입니다. 니므롯이 완력으로 천하를 장악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백성들의 기억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없애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새로운 신화들을 만들어서 보급했습니다. 그는 사후의 화근을 없애기 위해서 셈 집안에 속하는 모든 성읍들을 점령했습니다. 니므롯의 배후에서 정권유지의 비책을 전수한 자는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였습니다. 니므롯은 본래 사냥꾼이었습니다(창10:9). 무기를 만드는 기술자였기 때문에 지략에는 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니므롯에게 지략을 일러준 것은 세미라미스였습니다.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에게 이원론을 가르쳐 주어서 새로운 신화의 기본 논리를 제공했습니다. 하나님을 없애기 위한 사악한 음녀였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창세기의 1장1절을 없애버리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세미라미스는 바로 이것을 하기 위해서 그녀와 가나안 세력이 먼저 시작한 것은 바로 니므롯의 신분격상이었습니다.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의 신분을 그들의 조상인 노아보다 상위(上位)에 놓기 위하여 그를 홍수 이전의 인물인 가인의 환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인을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면 그 위에서 다시 하나님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미라미스는 창세기의 이야기에 태양의 신을 삽입하고 그 빛의 신이 하와와 동침해서 낳은 아들이 가인이라는 거짓말을 꾸며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던 사탄은 하나님과 대적 하는 빛의 신으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 세미라미스가 한 일은 바로 창조론을 없애고 ‘시작과 끝’을 없애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지가 늘 그대로 있다 하는 윤회설입니다. 이것은 힌두교와 불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세미라미스에 의해 영적인 진화론이 만들어졌는데 사람은 죽은 다음에도 계속해서 환생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 점점 더 훌륭한 존재로 진화되어 신이 되기까지 진화한다는 논리입니다. 처음과 끝을 부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을 부인하고 하나님 자체를 없애버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했습니다.
환생설은 백성들을 속이는 데 안성맞춤의 논리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의 하나가 바로 '죽음' 이후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장차 자신에게 닥쳐올 일이 심판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라미스의 환생설은 그러한 불안을 달래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는데 아주 적합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 세미라미스의 거짓말에 속고 있습니다. 인도의 인구 중 약 90%가 거지입니다. 그런데도 불평이 없습니다. 모두 힌두교의 윤회설 때문입니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입니다. 전생에 죄가 많으니 그렇게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어려운 현실을 개선해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내세에는 더 좋아질 테니까” 사탄이 거짓말로 속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사탄은 그들을 깔고 앉아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미라미스의 영적인 진화론입니다.
니므롯이 죽자 세미라미스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바로 이 환생설을 써먹었습니다. 그녀는 아이 하나를 낳아서 그 이름을 ‘담무스’라 했는데 이 담무스가 곧 니므롯의 환생이라고 거짓말 한 것입니다. 세미라미스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창3:15)훼방하기 위해 미리 담무스를 니므롯의 환생인 신의 아들로 만들어놓고 그래서 담무스는 곧 신 그 자체라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자신은 신의 어머니, 즉 '하늘 황후'의 자리에 앉았습니다(렘7:18). 세미라미스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혼란시키기 위해 담무스를 여름에 죽고 봄에 부활하는 신으로 만들어서. 담무스 월(태양력으로는 6-7월)의 둘째 날에 모든 여인들이 애곡하게 하였는데 어이없게도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이 애곡에 참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겔8:14).
세미라미스는 이렇게 환생설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고 하나님에 관한 백성들의 기억을 지워버렸으며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교란작전까지 성공함으로써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새 시대의 지도자를 기다리는 루시퍼의 추종자들은 지금도 그들의 집회에서 모이고 헤어질 때에 언제 죽더라도 다시 환생하여 만나자고 다짐하는 ‘작별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습니다. 이 환생설은 세미라미스가 기대했던 대로 하나님을 내버린 현대인들에게 상당한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심령과학이라는 것이 환생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놓고 영매가 그 사람의 영에게 질문을 하면 자신은 15세기에 어느 나라 어디에 살던 누구라고 대답합니다.
세미라미스의 이 환생설은 고대의 가나안과 바벨론 그리고 애굽 등 모든 우상종교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아스다롯과 담무스’로 페니키아에 전파되었습니다. 페니키아에서 소아시아 버가모로 전파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모자숭배의식은 ‘이시스와 호루스’로 변했습니다. 헬라에서 이것은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로 나타났습니다. 로마에서는 ‘비너스와 큐피드’로서 경배를 받았습니다.
세미라미스는 자신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여황”으로 그녀만이 성수(聖水)의 뿌림으로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시대 때 이 모자숭배는 로마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는데 로마황제들은 황제 외에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 aximus)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대사제장”이란 뜻입니다. 담무스를 섬기던 로마의 제사장들은 약간 변형하여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지 않고 기독교에 들어왔습니다. 결국 모자숭배는 “마돈나와 어린아이”로 로마카톨릭이 되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의 발전과 철학의 빈곤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밀교의식이 빛을 잃게 되자 그들은 아직도 신비한 베일에 쌓여 있고 무언가 심오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힌두교를 이용하였습니다. 힌두교도 본래는 바벨론의 밀교에서 파생되어 세미라미스의 환생설과 아스다롯의 에로티즘을 바탕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거기에 인도 특유의 잔혹한 고행 방법과 명상에서 얻어지는 신비한 황홀감등은 물질문명에 지친 서구인들을 매료하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종교의 다원화를 부르짖습니다. 종교간 화합을 부르짖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는 유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