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이 다른 유대인들(마태복음15:7-9)
충신과 간신의 차이는 이중성의 마음을 쓰느냐 안 쓰느냐의 차이점입니다. 충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반드시 합니다. 백제의 성충·흥수·계백은 충신들입니다. 성충(成忠)?-656(의자왕16)은 백제 의자왕 때에 좌평(佐平)이었습니다. 656년 의자왕이 신라에 대한 성공적 공략에 도취되었습니다. 그러자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성충은 적극적으로 간했습니다. 그러나 성충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옥에서 죽기 전에 의자왕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으니 한마디 하고 죽겠다. 시국의 사변들을 보건대 반드시 전쟁이 있을 듯 하다. 반드시 상류에서 대적을 맞이해야 보전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나라 군사가 오면 육로로는 침현(沈峴:또는 炭峴, 충남 대덕군)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강 하구) 연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험준한 곳에 의존하여 적을 막아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자 흥수(興首)가 다시 한 번 이 방책을 권했으나, 의자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적군을 맞았습니다. 결국 패배하여 도성이 위급해졌습니다. 의자왕은 성충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지경이 된 것을 후회하며 웅진성(熊津城공주)으로 피난하고, 둘째 아들 태(泰)가 자립하여 왕이 되어 저항했으나 사비성은 함락되었습니다. 의자왕이 소정방(蘇定方)에게 항복함으로써 백제는 멸망했습니다.
충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간신은 나라와 임금을 위하는척합니다. 그러나 실은 자신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나지금이나 간신은 많고 충신은 적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의 형편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외식하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를 인용했습니다. 이사야29:13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겉으로는 어떤 민족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척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천리 밖이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계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의 교회에 편재해 있는 상황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신앙이 하나도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안위와 안전입니다. 목사가 리무진을 타고, 자녀들은 모두 유학으로, 초호화별장까지 갖추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의 건물은 천국인데 하는 짓들은 지옥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