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까지 배척받으신 예수님(마태복음13:53-58)
요사이는 사람하나가 출세하면 그 사람의 이름이 금방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국가고시(행정․사법․외무․기술)등에 합격하면 그가 어렸을 때 다녔던 유치원서부터 현재살고 있는 곳까지 placard를 걸어주며 축하를 합니다. 우리지역에서 인물이 나왔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외였습니다. 선지자들을 고향에서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제자들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비유를 마치시고 거기서 떠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고향의 동네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이 놀라기는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인데 이 지혜와 능력을 의심했습니다(53,54절). ‘이 사람은 목수요셉의 아들이지 않느냐? 마리아는 그의 모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은 형제들이 아니냐? 그리고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이 사람의 그 모든 것들이 어디서 났는가?’하고 놀라기만 하고 배척했습니다(55,56절). 예수님은 저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이외에서는 존경을 받느니라고 하시면서 저희의 믿음으로 많은 능력을 행치 않았습니다.
누가복음4:24을 보면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왜 선지자들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존경을 못받습니까? 바른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출신성분을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태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서기관의 집안에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율법사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천한 목수집안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지적하셨습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능력을 베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믿지 않음’ ajpistiva/아피스티아는 부정접두사 a와 피스토스(pistov")와 합성된 언어로 ‘신뢰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없어서 불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배척한 것입니다. 즉 문제가 그들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몰라보고 배척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면서 가진 것도 없으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박찬 것입니다. 소수의 믿는 자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여정에서 모세와 하나님을 엄청 원망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오직 있는 것은 박한 것밖에 없다고 불평했습니다(민21:5). 그때 하나님은 지독한 독사를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물어죽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정했습니다. 불 뱀을 없애달라고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 놋뱀의 형상을 만들라 하셨습니다. 보는 자만 산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종교가 좋고, 자기들의 지식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믿으면 영생하는데 믿지 않습니다.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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