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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길과 생명의 문(마태복음7:13-14)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넓습니다. 통과하는 문 역시 넓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은 가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통과하는 문 역시 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넓은 문을 통과해서 넓은 길로 갑니다. 전주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많이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통과해서 가기도 하고, 국도를 통해서 가기도 합니다. 또한 지방도로를 이용해서 가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 길로 가도 서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고속도로를 이용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과 문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길이 아닙니다. 멸망의 길과 생명의 길, 즉 지옥과 천국의 두 길을 대조하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stenh'" puvlh")은 그야말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좁은 길(qlivbw)은 그 상황이 더욱 힘들게 하는 길입니다. ‘협착하여’의 ‘들리보’는 ‘압박하다, 억압하다, 괴롭히다’라는 뜻입니다. qlivbw는 헬라어 문헌에서 ‘누르다, 짓누르다, 압착하여 짜내다, 문지르다, 둘러싸다, 가두어 넣다’이며 비유적 의미로는 ‘괴롭히다, 억압하다, 방해하다, 좌절시키다’라는 뜻입니다.

LXX은 ‘원수’(rx')의 번역어로 사용했는데, ‘괴롭히다, 적대감을 가지고 대한다, 억압하다, 적대하다, 파괴하다’의 의미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들리보’는 사람을 압박하는 상황에 쓰였습니다. 막3:9에서 ‘바짝 에워싼’ 것을 의미했고, 고후1:6에서 ‘환난 받는’의미로 고후7:5에서는 ‘가해지는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은 넓은 길과 넓은 문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 길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좋은데 너무나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좁은 길을 선택하지 않고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이유는 핍박을 받아야 하고, 모욕과 중상과 비방을 당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해야 합니다. 원수들까지도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의무를 져야 합니다. 대개 이런 이유로 기독교인이 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영원한 은혜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상속자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며, 배부를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저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단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해당되고 영원에서는 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결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어렵습니다. 좁습니다. 그 길을 통과하려한다면 옷이 찢겨지고 살점이 달아나는 길입니다. 이러므로 이 길을 가는 자들은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이 없으면 여간해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통과하면 영생으로 돌아갑니다. 오늘날에는 성경이 생명의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들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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