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거부하면 주지 마라(마태복음7:6)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라(Mh; dw'te). 무엇에게, 개나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발로 밟고 찢어 상할까 염려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의 지혜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국한시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격 없고 속된 멸시자들에게는 복음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전하지 말라’와 ‘전하라’는 말은 충돌합니다. 더구나 개나 돼지를 우리들은 알 수 없습니다. 머리에 개나 돼지라고 써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떠한 표식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유대인들 가운데서 거리의 개는 천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개들은 몸집이 크고 흉하게 생겼으며, 사나웠습니다. 이 개들은 떠돌이 개로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는데 음식물 찌꺼기나 쓰레기 더미 주변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개들을 부정하고 더럽게 생각했습니다(잠26:11, 벧후2:22, 계22:15). 그것들은 위협적이고(시22:16,20), 울부짖고 으르렁거리며(시59:6), 탐욕스럽고 파렴치했습니다(사56:1). 아주 천대들 받았습니다. 그래서 개에게 먹히는 것은 사람에게 내린 하나님의 특별한 저주의 한 증표.였습니다(왕하14:1, 16:4).
돼지들은 개와 마찬가지로 천하고 불결한 짐승으로 간주했습니다. 구약성경은돼지를 먹지 못할 부정한짐승들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레11:7, 신14:8).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들에 가서 돼지를 치게 한 것은 그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눅15:15,6).
우리들이 복음을 제시하는 이유는 복음이 구원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개나 돼지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복음은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개나 돼지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즉 복음을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개나 돼지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단들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옳다고 끝까지 우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개나 돼지보다 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복음이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입니다. 이들은 전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개나 돼지들(타락한 멸시자들)에게 복음을 금하시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조롱거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비를 모독하고, 업신여겨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 전하는 일들을 그만두지 않을까이며, 값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모독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까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값이 없는 것입니다. 왜 복음은 값없는 가치를 지녔습니까?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영원히 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도 아니고, 몇 사람도 아닌 수십억의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