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스러운 심판(창세기7:17-24)
17절을 보면 홍수가 땅에 40일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지구상에 물이 많아졌습니다. 당연히 방주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방주가 물위에 떠다녔습니다. 19절을 보면 천하에 높은 산이 모두 물에 덮였습니다. 20절을 보니 물이 십오규빗(약7m)이 산위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물이 완전히 덮은 채로 150일(5개월)이 창일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방주에 있는 사람만 살 수 있었습니다. 카일·델리취는 15규빗에 대해서 “방주가 15규빗 정도 물속에 잠긴 것으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으며, Open 성경은 “세계적인 홍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물이 빠지는데 150일간이나 걸렸다”고 말했고, Calvin 역시 “모세의 기록목적이 전 세계가 물에 잠겼음을 말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노아 때의 홍수는 혹자들 말대로 일부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19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역사하고 계시지 않는 때라도 그의 임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확실히 일하고 계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 얼마동안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날자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방주를 닫아 넣고서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사실 노아가 방주 속에서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노아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은 없었습니다. 노아는 자기 자신이 상자 속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아무런 표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에 처할 때 우리가 보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최선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심판의 표준에 대해서 루이스 뻘콥은
성도들과 죄인들이 심판 받는 표준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시된 뜻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특권을 지녔으므로 이것은 자연적으로 그들의 책임성에 첨가가 된다(마 11:21-24, 롬2:12-16). 이것은 사람들의 상이한 계층들에게 구원의 상이한 조건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판에 나타날 모든 사람들에게 천당에 들어가거나 못 들어가거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느냐의 여부에 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형벌의 정도에는 각기 차이가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정도들은 육체에 행해진 것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수십억 인구를 홍수로 쓸었습니다. 왜 입니까?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두었다가는 지구가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서 더는 두고 볼 수 없으셨기에 그들을 홍수로 쓸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지극하신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수십 억 명을 몰살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부터 1656년이나 회개하기를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하나님의 요구를 듣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