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통제(창 7:13-16)
16절을 보면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 방주의 문을 노아가 닫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대로 다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으시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종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신학(信學: 자기들이 믿는 교리)이 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종교도 있고,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종교도 있을 것이며, 새로 만든 종교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죽은 신상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혼을 불어넣어서 마치 이생을 주관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또 속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하나님이 닫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의 문을 하나님께서 주관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해도 어떤 신이 방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쓸어도 어떤 신이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의 가족과 짐승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간 것은 2월 10일이었습니다. 그리고 7일 후, 즉 2월 17일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면은 온통 홍수로 뒤덮이게 되고 방주는 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홍수 기사에서 당시 사람들의 사투에 대한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르짖는 절망의 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어나는 물결 앞에 두려워 도망치는 자들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들처럼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들의 심한 고뇌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때늦은 후회로 그들은 가슴을 쳤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면서 죽었을 것입니다. ‘그냥 노아의 말대로만 했으면 되었는데’하고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심판은 결정된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안전한 방주 안에서 파멸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바라본 한 의인의 슬픔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노아의 경험은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쉽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을 많이 느낍니다. 구원이 그 안에서 역사하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우리의 신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적인 난국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환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병약한 몸, 질병, 의기소침, 좋아하는 계획들이나 바람직한 사업의 실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옛 소욕들에 대하여 정해놓은 어떤 뚜렷한 표징없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내버려질 수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이 세상과 모든 역경과 유혹의 물결들을 혼자의 힘만으로 물리쳐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실까 확인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표징을 받지 못합니다. 기도를 하고 노력을 해도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네 위에 있다고 말해주는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의 생애의 대부분을 이러한 상태로 보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잘해 나가려면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다루시는지에 대한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챨스 하지는 하나님의 보존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주전체는 스스로 존재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지탱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를 멈출 것이라 하였습니다.” 노아는 홍수 속에서 하나님의 보존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역시 하나님께서 지키시지 않고 보존하심이 없다면 단 하루도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존하시고 통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