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로 들어가라(창 7:1-5)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의로움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죄인인 노아를 어떻게 의롭게 보셨습니까? 의로움(차디크)은 ‘올바른, 공정한’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노아의 의로움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세대는 패역한 세대였습니다. 패역한 세대란 눈뜨고 보지 못할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세세하게 조사(라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의로움을 보십니까?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께서 불의하시지 않으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밀라드 J. 에릭슨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덕적 순결성의 두 번째 차원의 속성은 의로우심이다. 말하자면 이 속성은 그분의 거룩하심의 속성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용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하나님의 본성의 진정한 표현인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하나님께서는 옳은 것들과 자신을 순종하는 신자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게 할 것들만을 명령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또한 자신의 행동이 정해놓은 율법과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행동을 옳게 행하시는 것으로 묘사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의로우시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시대에 맞게 살았지만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바라보고 그에게 방주를 건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홍수를 피하게 하려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노아 때 홍수는 전무후무한 홍수였습니다. 노아는 정결(타호르)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여 방주에 취했습니다. 오랜 후에 모세의 율법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명확히 하였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동물들 “일곱씩”(낱으로 일곱:세쌍과 한마리); 부정한 것들을 “둘씩”(한 쌍) 취했습니다. 정결한 동물을 세 쌍과 한 마리를 취한 것은 홍수 후에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가족들의 식량이었습니다. 노아에게 조류까지 취하라는 명령은 그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음을 입증합니다. 지구가 물에 덮였을 것이며 새들이 착륙할만한 여하한 장소도 남겨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방주입니다. 방주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멸망하지 않습니다. 노아처럼 순종해야 살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기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입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싫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싫고, 예수님이 싫으면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습니다. 영원한 심판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