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사도행전2:14-21)
21절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kaiv e[stai pa'" o}" a]n ejpikalevshtai to; o[noma kurivou swqhvsetai.)고 베드로는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역사적으로나 종교적, 또는 인종적으로 하나님보시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입니다. 그가 어떤 사상을 가졌었든지, 그가 어떤 종교에 심취했었든지, 그가 죄인이었든지, 아니면 그가 소위 깨끗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든지 모두 구원계획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인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당시에 기독교에 역행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 로마인, 그 외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들어있었습니다.그래서 “누구든지”라는 은혜의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 단서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역사에 유명한 기독교인들이 한때는 수많은 죄를 졌던 사람들입니다. 다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몰랐을 때, 제멋대로 살았었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라는 은헤의 단서는 하나님의 가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했습니다. 이 말을 했을 때 혹자들은 지나가는 말로 ‘예수님’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Calvin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통하여 구원이 확실한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매우 비참하게 된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기초해 있을 때에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신앙에 기초해 있다’고 했습니다.
헬라어 ‘이에수스’(!Ihsou'")라는 이름은 구약에 나오는 ‘예수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입니다.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수아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이름으로 사셨습니다. 이 이름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이름으로 거론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려면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를 믿는다는 말이고, 그를 믿는다는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그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사람이 역사에 관계없이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교회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중세시대에도, 종교개혁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습니다. 미래의 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그의 이름은 항상 효력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항상 사람을 살리는 이름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된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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