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하심(창세기5:25-32)
라멕이 182세에 노아(j'nO)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노아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j'n:)하였습니다.
취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대학교를 나와도 어디에 취직할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월 100만의 급여를 받을 만한 자리마저도 쉽게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IMF로 한번 얼어붙은 경제는 여간해서 일어서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리 일해야 얻은 수확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가정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한번 엎어진 경제는 여간해서 일어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고로이 일해도 얻는 것이 없거나 적습니다.
라멕은 노아의 이름을 지으면서 예언을 합니다.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j'n:/nāham)하리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라멕이 자신에게 그의 노동의 경감이나 위로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면서 라멕이 제유법이라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고는 비참한 인생의 역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왜 인생이 비참했습니까?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땅은 갈수록 처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땀을 흘려 수고해야 겨우 연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파문을 당한 것입니다. 땅이 장애물로 에워싸여 인간에게 풍요가 금지되었습니다. 흙의 생산성인 풍요가 금지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들은 소득이 없는 땀들을 많이 흘려야 했습니다. 그래야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나지금이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저주하신 땅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고로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도 엉겅퀴를 수확해야 했습니다. 즉 우리의 가정경제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일생을 사는 것이 순탄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U-turn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U-turn하지 못하는 삶은 현생애에서도 다가오는 내세에서도 엉겅퀴를 수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utopia를 꿈꾸며 이생을 계발한다하더라도 엉겅퀴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오라고 하셨습니다(마11:28). 예수님께 가야 수고와 짐이 가벼워진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수고라도’ 하나님께서 안위하시면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진정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위하심은 형세적일뿐만 아니라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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