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추지 않는 사도들(사도행전5:33-42)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람들은 재판정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재판정이 법을 수호하지는 않습니다. 종교재판이라든지, 군사재판정이라든지, 독재재판정들은 형식만 갖추었을 뿐, 사람을 죽이기 위한 재판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법정에 서는 사람들이 떳떳한 사람들입니다. 네로의 재판정에 서는 것 떳떳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재판정에 서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사도들은 산헤드린의 재판정에서 떳떳하게 여겼습니다. 조금도 창피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고, 기쁘게 여겼습니다. 말이 그렇지 40에서 하나 감한 매를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었습니다. 잡힌 사람들 모두 그렇게 맞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고통과 기쁨 중에서 갈등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 이름을 위한 마음이 優位(우위)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복음을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마다 두 가지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Calvin). 형벌의 아픔보다 영적인 기쁨, 그 이름을 위한 기쁨이 그 고통을 타고 넘었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들은 제대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순교를 당했습니다. 어떤 사도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짐승에게 찢겨 죽임을 당하기도 했으며, 참수 또는 기름 가마에 넣어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적들은 잔인하게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죽임당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삶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고 힘이 났으며, 그 일들을 기쁨으로 여겼습니까? 더 나은 것을 소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만용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모함이 아니며, 그렇다고 계산된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성령과 같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십자가를 지고서 그 많은 사람들이 순교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거운 일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끝이 예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고통의 멍에를 메고서 걸어갔습니다. 왜 입니까?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그 이름 예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전혀 박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즉 ‘예수는 메시아’라는 말을 쉬지 않고 전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passion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들 속에, 교회들 속에, 교회사의 모든 일 속에 성령께서 늘 함께 하셨기 때문에 교회의 질주는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사도들은 박해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그만두어야 할 형편이었지만 그 이름을 위하여 이탈자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합니까? 그러나 불평은 사도들보다 엄청 많습니다. 빨리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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