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앞을 떠난 가인(창세기4: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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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여호와의 (그)얼굴을 떠나가서 에덴동편 놋 땅에 거하고 있었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났습니다. 즉 ‘가인은 정죄를 받을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석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중지하시자 그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만 한 곳으로 새로운 정착지를 옮긴 것입니다.’ 놋(누드)이란 “방황하다”라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는 가인이 놋 땅에서 방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치욕스러운 형벌은 여호와의 앞을 떠난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이 하나님 앞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 앞을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개시 시작”이라는 뜻의 에녹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을 쌓아서 에녹성이라 부르면서 그 안에 살았습니다.
가인의 정신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정신입니다. 그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아벨의 혈통을 단절시키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유리하는 자가 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주를 받아 방랑자로 쫓겨다니지만 “앞으로는 방랑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정착지를 정하여 그곳의 주위를 칼날 같은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쳐서 아무도 나를 공격할 수 없게 할 것이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에녹성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방랑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소망 없는 도망자입니다. 그의 마음은 안식을 찾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안식이었습니다. 가인은 불행하게도 그 도시에서 그는 자신과 사람을 위하여 새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전의 것들을 모두 잊었습니다. 옛 고향과 거기서 섬기던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기억들을 떨쳐 버렸습니다. 가인은 지혜롭게도 자신의 이름으로 도시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들이 그의 과거 생활이나 경력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가인은 옛 생활을 단절했습니다. 그의 범죄도 숨겼습니다. 그의 하나님도 잊었습니다. 그의 옛 생활에 속한 모든 것은 더 이상 그와 그의 동료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베일에 싸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가인은 명확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위대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그의 도시를 "에녹" 즉 '시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것과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좋은데 가인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상한 심령과 통회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솔직하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안식을 찾고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인 같은 안식은 진정한 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안식은 초호화궁궐에 산다 해도 안식이 아닙니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안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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