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설교/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라(사도행전13:38-41)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바울사도는 이제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종용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예수그리스도를 힘입어야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를 힘입어 의롭다하심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지자들이 말한바 망할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은 곧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 심판은 선지자들이 누차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유대인들이 최고의 법전이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는 기준이었습니다.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율법은 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죄를 용서한다는 것입니다(William Tyndale).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추측이나 상상이 아닙니다. 또한 그의 죽으심은 사람들이 죽는 죽음이 아닙니다. 그의 죽으심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죽음입니다. 사람들의 빚을 오직 예수님만 갚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선택받은 백성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실제로 획득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일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하여 형벌 받을 책임을 조금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단1%라도 형벌 받을 책임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tetevlestai/tetêllestai/테텔레스타이/요19:30)는 것은 인간이 죄에 대한 형벌의 책임을 전혀 배제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몇%, 인간이 몇%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신이 몇%, 사람이 몇%의 분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100%책임을 지셨습니다. John Murray는 그리스도 십자가 사역의 “완전성”을 역사적객관성(historic objectivity), 궁극성(finality), 독특성(uniqueness), 본질적인 효능성(intrincis efficacy)으로 설명했습니다.
역사적객관성이란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수혜자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하거나 거들어주는 것 없이 2000년 전에 세계 역사 가운데서 객관적인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이다. 이는 속죄가 우리 안에 윤리적인 영향력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하는 그런 견해를 반박한다.
궁극성이란 그리스도의 속죄의 객관적 사역이 “결코 되풀이되거나 반복될 수 없는 완성된 사역”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외친 승리의 소리, 곧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진지하게 붙잡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에 덧붙여 신자가 이생에서 혹은 연옥에서 고난당하므로 자기 죄를 속죄해야 한다는 카톨릭신학을 반박한다.
독특성이란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신대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이에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말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4)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직분에 임명되셨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독특한 직무를 행하려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그만이 죄를 속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시며, 하나님의 멀리하심을 해소하시고, 율법의 저주와 죄의 책임과 권세로부터 죄인들을 구속하시며, 사단의 나라를 짓밟을 수가 있었다.
본질적인 효능성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의 죄로 인한 긴급한 모든 사정을 해결해 주는데 본질적으로 적당하며, 선택받은 백성이 온전히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이 세상에는 많은 구원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구원자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종교의 다원화, 종교간 화합 등은 정말 말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오직 사람을 구원하실 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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