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한다는 것(사도행전16:6-10)
바울사도는 아시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을 바로 접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밤에 바울사도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마케도니아로 향했습니다. 즉 바울사도는 아시아로 가고자 계획을 했습니다. 그런데 못하게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 마음을 바로 접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250만-300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이 그야말로 척박하고 물도 없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누구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마솥 같은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물을 주시지 않을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노예시절의 물먹던 때만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그 불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을 무조건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창15:18-21/출3:8).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스파이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못해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 충분히 정탐한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정탐한 것을 참고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12명의 정탐군은 40일간의 정탐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탐보고는 안하느니만 못했습니다. 12명중에서 10명이 가나안 정복자체를 부정했습니다. 가나안을 악평했습니다. 두 명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보고했습니다. 12명중에서 10명(83.3%)이 못 간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16.7%)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300만 명 중에서(정확한 숫자는 아님) 단 두 명만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2/300,0000입니다. 순종한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에 갔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광야에서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전장에서도, 삶에서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왜 순종이 중요합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베드로나 요한, 사도단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서 했다면,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존재했을까요?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보고에 눈을 뜨게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첩경입니다. 순종은 우리의 이성을 거스르는 것이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연기하는 것은 곧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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