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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하나님의 약속(출애굽기 1:12-14)
히브리사람들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라바)하였습니다. 창성(라바)하였습니다. “번식하고 또 번식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애굽 사람들은 근심하였습니다. 근심(쿠츠)하여는 “몹시 싫어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싫어하다. 강한 혐오감을 가지다”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 정부는 억제정책으로 이스라엘 자손의 役事(역사)를 가혹하게 하였습니다. 아주 어려운 노역을 하게 하였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생활양식과 번성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는 흙이기기를 시켰습니다. 벽돌을 굽게 하였습니다. 어려운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그 시키는 역사가 모두 힘들었습니다.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서 일을 시켰습니다. 애굽의 이 같은 잔인한 정책은 하나님의 예언 (창 5:13)의 성취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더 이상 머물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어디론가 탈출해야만 하는 배경이 되게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어리석은 정책을 통해서도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먼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낮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매를 맞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채찍은 결코 대수롭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하는가?”(사1:5). 고난은 또한 우리가 영광의 깃발, 곧 하나님의 자녀 됨의 표지임을 깨닫게 합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히12:7) 채찍의 흔적은 모두 영광의 상징입니다. 고난은 또 세상에서 성도들이 유명해지도록 하기 위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병사들이 자기들의 승전을 결코 축하받을 자격이 없는 것처럼 성도들도 자기들의 고난을 예찬할 자격이 없습니다.
애굽의 왕들이 히브리사람들을 끝까지 섬기고 있다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까요? 구원자를 보내달라고 그들이 기도할까요? 기도할 필요가 없고 구원자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오니까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려우니까 기도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의 고난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고난으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됩니다. 나의 모든 일이 잘되면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저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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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은 성도들의 번성을 두려워 함(출애굽기1:9-10)
이집트의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의 번성을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특징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고센지방에서 계속 번성했습니다. 원어에는 “우글거리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창성했습니다. 매우 강대하였습니다. 좀 과장법이지만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애굽 왕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당시는 전쟁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거취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집트의 새 정권은 어떻게든지 억제정책을 써야 할 방법을 강구코자 했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막을 줄 알았습니다. 이미 이들은 고센지방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한 민족을 이루고 있는 때인데, 이스라엘을 막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번성을 대단히 두려워합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점점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본성은 마음은 하나님께 향하고 싶은데 육신의 소욕이 마귀에게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과 우리만 알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마귀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세상의 것으로 조종합니다.
당시 애굽이라면 그 실세가 오늘의 미국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심히 번성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번성하려 할수록 마귀도 그 수위를 높입니다. 우리를 막고자 갖은 방법을 짜내려고 애를 씁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존재는 재물이 아닙니다.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한 사람들입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사단은 그 자리에 꼭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을 때 꼭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세속적으로 흐르려고 할 때는 환호하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육신적으로나 영적으로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하셨습니다. 홍수로 온 인류를 쓸어버린 이후에 노아에게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번성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아닙니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이기 때문에 우리가 쇠해지기를 바라고 잘못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사탄이 虎視耽耽 노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공격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눈으로 보이는 대적이 전혀 없어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할 때 어떠한 무기를 써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상대국의 무기보유현황을 안 다음에 비교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무기를 선택해서 전쟁에 투입합니다. 무기를 잘 사용하는 전쟁이 이기게 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인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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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대적(출애굽기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바야캄]는 “그리고 새 왕이 일어나고 있었다.”입니다. “세우다”라는 뜻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말은 왕권이 순조롭게 이어지지 않았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일어나서”는 새로운 왕조의 시작을 말합니다. 즉 쿠데타로 왕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왕권이 다른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새 왕은 요셉이 활동하던 시기의 왕조(Hyksos)가 붕괴되고 새로운 18왕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 왕은 18왕조의 첫 왕 아모세(Ahmose)의 손자인 투트모세 1세로 모두 보고 있습니다(Unger).
아무리 쿠데타로 왕이 되었다 하더라도 요셉의 치적을 모를 리 없습니다. 중동지방에서 회자되었던 요셉을 새로운 왕이라 하더라도 모를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애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총리였습니다. 요셉은 정치적인 총리가 아니라 경제총리였습니다. 경제학박사였습니다. 아예 바로는 요셉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요셉에게 애굽의 경제를 그에게 맡길 정도였습니다. 애굽은 7년의 풍년이 들었을 때는 요셉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7년 흉년이 들었을 때 요셉의 경제정책을 인정했습니다(창41:25-27). 이 사항이 애굽의 사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 왕이 요셉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알지 못한다”는 말은 요셉의 사실을 몰랐다는 말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말입니다. 마치 이 왕은 일본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일본사람들은 번연히 아는 사실을 눈앞에서 왜곡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자신들의 뜻대로 날조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왕이 왜 역사를 날조하고 있습니까? 왜 요셉을 알고도 모른 척 합니까? 사단이 그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거나 괴롭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교사하여 그의 목적을 달성한 사탄은 바로 가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하여 가인으로 하여금 부모의 은혜를 배반하게 하였습니다. 형제의 의를 끊게 하였습니다. 직접적으로는 하와가 범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와를 교사한 자는 사단입니다. 직접적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주위에는 사단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범죄현장에 항상 마귀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악의 영들은 무수합니다. 모든 곳에서 활동합니다. 악의 영들은 우리 세상에 접촉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들의 마음속에 작용하고 존재합니다.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비집고 들어와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0) | 201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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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출애굽기1:1-7)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들입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 그리고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70명입니다. 출애굽기를 기록하던 시기는 이미 애굽거주 350여년(B.C.1526)이 되기 때문에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들 즉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7:18절을 보면 스데반이 말하기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엄청나게 인구가 증가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또 늘어났습니다. 심히 창성했습니다. 심히 강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고센지방). 저자 모세는 “많다”라는 의미의 동사를 네 개나 사용하였습니다. “생육이 중다하다, 번식하다, 창성하다, 심히 강대하다.” 즉 이렇게 많이 번성한 것을 보면 자연적인 출산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려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31,173개의 구절들입니다. 이 가운데 구약성경의 구절이 23,214절이며 신약성경은 7,959절입니다. 약속의 관점에서 보면 무려 30,000만개의 구절입니다. 스톰(Storms)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약속이 7,487개,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인 예수에게 한 약속은 2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은 991개(느부갓녜살 왕의 꿈을 해석할 것을 약속한 종들처럼), 사람이 하나님에게 약속한 것은 290개라고 지적했습니다.
웹스터 사전은 “약속이란 협의된 어떠한 이익에 대한 선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食言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그대로 되었습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에게서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삭에게서 야곱이 태어나더니 갑자기 1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12명이 70명이 되더니 이제는 생육이 중다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도 食言이 아니십니다. 그대로 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그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자녀에게는 권세(ejxousiva/엑수시아)를 주셨습니다. 엑수시아는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 개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입니다.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우리가 붙잡아야 합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해야 합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 약속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약속을 붙잡고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0) | 201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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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번성을 두려워 하는 사탄 (0) | 2010.09.30 |
사탄의 대적 (0) | 2010.09.29 |
출애굽기 (0) | 2010.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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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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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이스라엘 아들들이 야곱과 함께 애굽에 이르렀다. 각기그들을 데리고 갔다; 출 1:1)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베엘레 세모트(그리고 이것들은 -의 이름들이다)”=“그리고 그 이름들”입니다. 이것은 1:1의 첫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출애굽기(Exodus, “떠남”“출발”)라는 LXX인역의 제목은 Vulgate역이 출애굽기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제는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시작에 관한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성케 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속박의 땅에서 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들과 민족의 기초로서의 은혜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맺으신 옛 약속을 어떻게 성취시키셨는가를 연관시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산기슭에서 언약을 그 백성에게 주셨고 또한 그들의 거룩한 삶을 지도할 행위의 규범을 그들에게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용서의 은혜에 근거하여 죄에 대한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하기 위한 성소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사건과 출애굽기의 첫 번째 사건 사이에는 30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분리시키는 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긴 시간입니다(400년). 기록연대는 주전 1446-1406입니다. 저자는 모세입니다.
기록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구속사의 핵)을 통하여 택한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언약의 신실성을 나타내시고 변개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또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는 하나님께 속했으며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율법의 제정을 통해서 성막건립을 통해서 신정국가 이스라엘로 예표된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지상도래를 선포하기 위함입니다(Thompson Bible).
1-18장까지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의 역사적 사실을 說話體로 전개된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되어(B.C.1446.1.5)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게 되는((B.C.1446.3.15)과정을 유월절 사건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속자(고엘)로 계시하십니다.
19-40장 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시내산상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는 율법제정과 성막건립이라는 2대사건의 요약입니다. 이스라엘이 새로운 신정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는데 율법이 필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을 떠날 때(B.C.1445.2.20)까지의 약 11개월5일간 발생한 사건의 기록으로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계시하십니다(Thompson Bible).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 (0) | 2010.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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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번성을 두려워 하는 사탄 (0) | 2010.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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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개론 (0) | 2010.09.24 |
오경개론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Cogito ergo sum)는 유명하다. 데키르트의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자신이 존재함으로서 세상이 존재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생각해본다는 해석이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생각해서 그것을 밝혀낼 때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일단 의심하고 회의하는 것, 그래서 도무지 의심할 수 없는 것에 도달하는 것이 모든 학문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했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꿈에 불과하거나 악마에게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가설까지 세워가며 의심하고 회의했다. 이후로 모든 학자들이 의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들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모세오경’이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성경에 들이댔던 것이다.
1. 서론
2007년 전국신학대학협의회(KAATS)에서 김지연의 “신명기 간음죄 규정(신22:22)과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삼하11-12장) 비교연구”의 논문을 최우수 논문에 선정했다. 간음한 다윗과 밧세바를 왜 죽이지 않았는가를 레위기 20:10절과 신명기22:22절과 관련, 간음한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법적으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지연은 그 이유를 초기왕정시대에는 구속력 있는 사법제도가 없었다는 논리를 폈다. 즉 다윗과 밧세바 시대에는 신명기 간음죄 규정과 같은 법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Arnold A. Anderson의 견해에 의해 다윗과 밧세바 시대를 “주전 10세기”로, 신명기 간음죄 규정을 “주전 7세기”로 규정하여 당연히 다윗과 밧세바 시대에는 간음죄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신명기의 저작시기가 신명기사가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
신명기라는 이름은 !yrI%b;D]h' hL,a(엘레 하드바림/이것들은 말씀이라)이다. 히브리어 성경도 이 제목을 취하고 있다. 신명기는 중요한 정경서들 가운데 하나이다. 신명기 대부분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포함된 율법을 모세가 재 진술하는 내용이다. 모세는 자신이 지상 생애의 마지막 달에 이스라엘 백성의 총회를 소집해 여호와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특권과 의무를 단단히 가르쳤던 책이다.
2.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은 38년간 바란 광야와 가데스바네아 근처를 유랑하면서 살았다. 그러는 사이에 출애굽한 구세대는 모두 죽었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 진군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둘러가는 우회로를 따라 요단 동편 모압 평야에 진을 치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모세가 고별설교를 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백성들을 미리 준비시켜야 했다. 따라서 모세의 설교는 언약갱신이었다. 신명기는 고대종주권 조약의 형태이다.
신명기는 시내산 및 광야의 경험과 가나안 정복을 서로 연결시켜주며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옮겨진 리더십의 변화를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신명기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효과적으로 해설해주는 오경으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모세는 임종이 가까워오자 신명기의 큰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하고 이를 책으로 기록하였다. 새 세대에게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포함하여,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 관계되는 조항, 정착생활에 관계되는 규정을 적었다. 모세가 5경 중 처음 네 권을 쓴 것은 이보다 약간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모세가 여행할 때부터 매일의 기록과 같은(민33:2)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있었다는 것은(출17:14), 분명하며. 이것을 보다 정상적인 편찬의 역사적 기초로 이용했을 것이다. 또한 언약서를 받은 직후 그것을 기록하였는데(출24:4-7), 신명기가 완성됨과 동시에 오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넜을 때의 여러 사건에 대비한 중요한 안내서가 되었다.
신명기에 기록된 사건들은 모세 말기, 곧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일어난 것들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진입하기 직전 모압 광야에 진치고 있을 때 모세가 그들에게 행한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3. 신명기(오경)의 모세 저작권
(1) 신명기에 대한 고등비평
18세기 계몽주의의 가운데서 태어난 합리주의 철학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모든 기독교회가 오경이 주전15세기에 살았던 역사적 모세에 의해 써졌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연신론이 역사비평주의와 초자연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눈에 띄었다. 스피노자는 에스라가 오경을 마지막으로 만든 자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 말이 생전에는 무시되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그라프, 퀴넨, 벨하우젠에 의해 문서설을 결정짓는데 기여를 했다.
(가) 오경문서설의 초기 진행
오경문서설은 모세로부터 5세기가 지난 후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 형성된 것입니다. 문서설은 프랑스 의사로서 창세기를 문학적으로 분석하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진 아스트룩(Jean Astruc)으로부터이다. 창세기 1장에는 엘로힘이 나타나고, 2장에는 여호와로 언급되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1780-1783년에 아이호른(Johann Gottfried Eichhorn))이 구약서론에서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 첫 두 장에서 여호와문서(J)와 엘로힘문서(E)로 나누었다. 이것이 후에는 오경이 모세 시대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J-E의 구분이 오경전체에 적용하였다.
1806년에 드 베테(Willhelm M.L. De Wette))는 박사학위논문에서 신명기 연구를 했다. 그는 오경 중 그 어느 것도 다윗이전 시대의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명기는 열왕기하 22장에 의해 요시야 종교개혁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의 모든 표식이 있다고 했다. 즉 예배처를 중앙으로 집중시키려고 한 것인데 모든 왕국의 부분들을 더 가깝게 정치적으로 뭉쳐서 경건한 자들의 모든 헌금을 예루살렘 제사장들의 금고에 쏟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정부의 캠페인을 위한 조작이라고 하며, 그 책의 연대를 주전621년(요시야종교개혁 연대) 혹은 바로 직전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D문서가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오경의 자료가 E(가장 초기의 것) J, 그리고 7세기 문서 D라고 했다.
1853년 후펠트(Hermann Hupfeld)의 작품 “창세기의 자료”가 나왔다. ‘문서설의 역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했는데 그는 E문서에서 E2를 발견했는데, J와 너무 흡사하다고 했다. 후펠트는 E문서의 나머지 부분(창세기 20장에서 시작됨)을 뽑아내어 가장 초기의 문서설 판정을 한 후 “기본문서”라고 명명하고 E1으로 표기했다. 이 E1문서는 후대의 비평가들이 P(제사문서)라고 명명했다. 후펠트의 문서들의 순서는 PEJD였다.
(나) 문서설의 네 문서 요약
① J는 남조 유다에서 어느 익명의 저자에 의해 주전 850년경에 써졌다.
② E는 이스라엘의 북조에서 무명의 저자에 의해 주전 750년에 써졌다. 또한 주전650년에 무명의 편집자가 J와 E를 결합하여 J-E를 만들었다.
③ D는 요시야 왕이 주전 621년에 부흥을 일으킬 때 대제사장 힐기야의 지도를 따라 공식적인 개혁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④ P는 에스겔의 성결법전(레17-26장, 주전 약570년. H로 알려져 있음)으로 시작하여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사 에스라서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편집이 되었고, 에스라는 가장 후대의 제사문서를 율법에 첨가시켰다.
(다) 문서설의 변증법적 발전개요
① 아스트룩은 하나님의 이름이 다른 것이 다른 자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J와 E로 구분했고, 이 아이디어가 아이히호른에 의해 체계화됨. ② 드 베테는 D가 요시야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했다. ③ 후펠트는 E를 초기의 E1(혹은 P)과 후대의 E2(J를 더 닮은 것임)로 구분하여 문서설의 순서를 PEJD로 만들었다. ④ 그라프는 P의 율법적 부분이 가장 후대의 것으로서 포로 시대의 것이라고 함. 역사적 부분은 좀 더 이전의 것으로 봄. P1EJD2의 순서로. ⑤ 퀴넨은 P의 역사적 부분은 율법적 부분만큼이나 후대의 것임을 느꼈다. PEJD순서. ⑥ 벨하우젠은 문서설을 완전히 다듬어 JEPD를 체계적이고 진화론적인 형태로 발전시킴.
이러한 가설을 프린스톤의 그린(William Henry Green)이 철두철미하게 반박했다.
(라) 문서설에 대한 비판
문서설 특히 벨하우젠의 가설은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부인되었다.
1) 하나님 이름으로 문서의 기준을 삼을 수 없다.
1893년 클로스터만(August Klostermann)은 맛소라 히브리 성경이 하나님의 이름을 전승하는데 있어서 무오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문서의 자료를 찾아낼 수 없다고 했다. 1909년 영국에서 위너(Harold M. Wiener) 유대인 변호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자료구분을 한다는 것은 비실제적이고 무모하다고 했다. 1908년에 어드만(B.D. Eerdmans/퀴네의 후계자)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분리된 문서들을 찾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1930년 노르웨이의 모빙켈(Sigmund Mowinckel)은 J-E의 문서설을 공격했다. 올브라잇(W. F. Albright)은 하나님의 이름이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2) J·E·P가 분리된 문서라는 것에 대한 반박
헤르만 궁켈(Herman G)은 휴고 그레스만(Hugo Gressmann)을 양식비평을 원조로 삼고, 양식비평을 했는데, 옛 시대의 문학사를 정확하게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고, 오경문학에 대한 실제적 접근은 문서설주의자들의 분석 비평적 방법이 아니라 종합적 창의적 방법으로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궁켈이 벤하우젠 학파의 인위적인 문서분석을 분쇄는 하였으나, 모세의 책이 기록된 형태를 갖춘 것은 포로 시대였다고 하는 가정은 히브리인들이 모세시대 이후로 고도의 언어능력을 갖춘 백성임을 도외시했다.
3) J가 E보다 앞섰다는 가설에 대한 반박
1920년 캐넷(R. F. Kennett)은『신명기와 십계명』이란 책에서 J가 아니라 E가 가장 최초의 기록된 문서였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J가 E보다 앞섰다는 반박이다.
4) E가 J 후대의 문서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가설에 대한 반박
파울 폴츠(Paul Volz)와 루돌프(Wilhem Rudolph)는 1933년『해설자로서의 엘로히스트: 오경 비평에 있어서 하나의 오류?』의 공저에서 E의 단락들을 세심히 재검토한 후 독립된 그리고 일관성 있는 E문서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모빙켈(Mowinckel)도 E란 그에게 있어서 J로부터 독립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과정이라 했다. 페더슨도 J와 E를 분리시킬 수 없다 했다.
5) 신명기가 요시야 시대라는 가설에 대한 반박
20세기 비평가들은 텍스트 자체의 자료와 그 당시를 주름잡았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6) 초기설을 지지하는 비평가들
1919년 케겔(Martin Kegel)은『요시야의 종교개혁』에서 신명기연대를 621년으로 잡은 것은 건전하지 않다고 했다.
1924년 에딘버러의 웰치(Adam C. Welch)는 주전 7세기에 단일 성소에 대한 율법을 공표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 널리 유행된 상황과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브링커(R. Brinker)는 모세의 신명기 제정이 후대에 여러지역 성소에서 보충되었다고 했다. 폰 라드(Gerhard von Rad)는 신명기가 지방 레위인들 가운데서 발생했으며, 주전701년에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슨(Edward Robertson)은 히브리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들어갈 때 신명기와 언약의 책(출20-23장)을 포함한 핵심적 율법들을 소유한 조직된 공동체였음을 주장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예루살렘의 카우프만(Yehezkel Kaufmann)은 P가 D보다 앞선다고 주장했다.
(2) 신명기적 역사 가설
신명기에 대한 비평은 연대기와 관련되어 있다. 신명기 연대를 어느 시대의 문서로 보느냐에 따라 신학적인 차이가 생긴다.
1943년 마틴 노트(Martin Noth)는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는 가나안 정복에서 바벨론 포로에 이르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 권의 책(신명기적; the Deuteronomistic History)이라고 주장했다. 신명기-열왕기가 여러 권의 책들이 하나로 엮어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래 전체가 하나의 독립된 책이라고 주장했다.
신명기적 역사 가설 자들은 하나님 백성의 과거를 예언 정신에 비추어 풀이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가시는 길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려고 한다. 하나님 백성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죄를 들추어내고 그로써 신학적으로 책임성 있는 과거극복의 길을 제시한다. 노트는 포로시대의 이 신명기적 역사가(Dtr)는 4:44-30:30에 나오는 신명기법전을 활용했으며, 이 법전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복음주의적 견해
복음주의자들은 신명기의 핵심주제가 중앙 성소 집중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폰 라드는 신명기에서 예루살렘이 예배의 중심장소라는 것은 주관적이며 본문의 근거가 없다고 보았다. 페더슨도 만약 중앙 성소 예배가 신명기의 주제라면 당시 종교관습에서 ‘바못’과 ‘산당’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신명기 12장에서 ‘바못’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홀베르다는 12:13의 ‘택하실 그 곳’이라는 의미를 각 족속에서 한 장소‘라고 해석하여 열두 장소 이상의 예배장소로 이해하였고, 폴은 예루살렘과 지역적인 차원의 예배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성소를 반대하였다. 클라인은 고대근동의 주요 왕들이 체결한 조약을 재발견함으로써 신명기의 구조적 통일성과 통합성을 강조하였고, 키첸은 신명기의 구조가 10세기 이전의 히위족 계약법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카일과 델리취는 신명기는 십계명과 그것이 나타내는 묵시 중에서 가장 정수가 되는 내용을 권고하는 설명이며 강요이고, 교회적이며, 사법, 정치, 사회조직적인 더 나은 발전이 나타나 있어서 가나안 땅에 백성들의 복지와 생활을 위한 영원한 기초라고 했다.
칼빈은 이스라엘이 그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언약이 선포된 지 약 40년 후에 그것을 다시 새롭게 하셨고, 그것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모세가 선포한 말씀이라 했다. 신명기는 모세의 저작이다.
4. 성경의 바른 해석
성경의 저자와 저자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글이 써진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 성경해석자는 저자 자신에 정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석이 전혀 이상한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분명히 신명기1:1에 “이는 모세가···선포한 말씀이니라”가 있다. 모세는 자신의 불순종과 이스라엘의 반역성 때문에 그 백성이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음을 고통스럽게 인식하고(신4:21-26),
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익명의 저자가 주전 5세기 안팎에 썼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성경을 세분하여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즉 숲은 바라보지 못하고 한 개의 나무만을 찾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들이 성경을 심히 왜곡하는 것이다(벧후3:16).
5. 결 론
신명기는 모세오경에 속하는 책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유혹에 맞서기 위해 신명기의 구절을 인용하였다(마4:1-11). 그런데 이것을 부인하게 되면, 즉 모세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하면 성경을 심히 훼손하게 된다. 주전15세기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주전 5세기에 기록되었다고 한다면 성경을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 분명히 모세가 이미 한 번 실패한 사람들이 거의 죽고, 그들의 후손을 위해서 전에 이미 선포했던(출20장-31장 등) 것을 다시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중앙 성소 집중과 헌금의 집중을 위한 것과 바벨론에서 실패한 결과 다시는 그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겠기에 익명의 어떤 저자가 신명기를 썼다는 것은 너무나 편협한 생각과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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