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신학'에 해당되는 글 2건
- 2020.10.01
- 2020.08.28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로마서6:12-14)
성도들은 신학이라는 말을 하면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더러 좋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신학이라고 하면 학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신학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학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은 반응입니다. 넓은 의미로서 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행위, 내용 및 그 함축하는 바에 대한 知的省察(지적성찰)입니다. 신학은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신앙에 관하여 서술합니다. 따라서 신학은 상황적 학문입니다. 신학의 이러한 상황적 성질 때문에 신학은 지속적인 과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삼위의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신앙고백과 헌신은 불변합니다. 하지만 이 신앙고백의 현장인 이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신학은 각 세대의, 각양의 문화적 배경 속에 있는 교회를 섬깁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교회의 신조를 성찰하도록 도우는 것이 신학입니다.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역에 임하는 현장인 이 세상에 그 신앙고백을 적용하도록 도움으로써 교회를 섬기는 것이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신학 따로, 신앙 따로는 없습니다. 신학은 성경적인 복음, 교회의 유산 그리고 현대 세계의 사상 형태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곧 신학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불변하는 고백을 적절히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학은 항상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성경의 이중적 진리를 균형 있게 표현하기를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하여 초월자로서 관계를 맺으십니다. 초월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분리되어 스스로 자족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위에 계시며 우주 저 너머로부터 이 세상에 오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하여 내재자로서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피조 세계에 존재해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우주 안에 활동적으로 존재하십니다. 세계와 인간사 양자의 운영 과정에 관여하십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이 세상 너머에 계신 초월자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재자로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각 시대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묘사할 때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이중적 진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창조적 긴장과 균형의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두 가지 진리 모두를 균형 있게 수용해야 신학과 이성 혹은 문화의 관계가 적절히 수립됩니다. 이 둘 사이의 균형이 상실되면 심각한 신학적 문제들이 튀어나와 혼란스럽데 합니다.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화적 상황과의 관련성을 잃게 됩니다.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떤 특정의 문화에만 얽매이는 신학이 되고 맙니다.
바른 신학과 바른 신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삶을 사는 것은 죄의 삶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삶의 과정에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선한 싸움의 1차적인 장소는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은 죄부터 해방된 피조물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 (0) | 2020.10.20 |
---|---|
죄가 우리 주인일 수 없다. (0) | 2020.10.10 |
감정적인 신앙이 아닌 실제적인 신앙 (0) | 2020.09.25 |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죄에 대하여 죽은 자 (0) | 2020.09.17 |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역사적인 예수님의 이적들 (0) | 2020.09.06 |
누차 언론에서 이야기했겠지만 과연 8.15광복절 집회를 허가한 것은 100% 허가한 판사의 잘못이다. 그들 곧 극우주의자들 미국기, 태극기, 심지어 욱일기까지 든 미친 데모대들은 과거에도 얼마든지 인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와 정부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이른 새벽부터 결혼식장행, 돌잔치행 등의 황당한 표식을 하고 마스크무시, 질병관리본부에서 하는 거리두기무시 하면서 이 나라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때 최소한 국가의 안녕을 몇 년 후퇴시키고 있는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서 극우유투버 등이 병원을 호텔처럼 생각하고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는 등 온갖 눈꼴사나운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독불장군을 넘어서 미쳐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어제인가 대통령과 소위 기독교총회장들이 모였다. 한기총대표, 한교연대표, 한교총대표 등과 모여서 정부입장과 이 나라의 현재 코로나19상황을 서로 주고받았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잠을 설쳐가며, 수고하는 의료진들은 방진복을 입고 언제 벗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철주야 수고 하고 있는데 세 기독교대표자들의 하는 말은 코로나19상황의 한국상황과 전 세계상황은 다른 이야기처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우리교회의 대변자들인가 심히 우려스럽게 생각한다. 예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조심해서 대면예배를 드려서 코로나19환자를 최소화 해달라는데 교회를 핍박한다는 등, 대면예배금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목사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거북스럽게 생각한다. 교회에 코로나19환자가 발생돼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마치 초대교회의 바리새인들을 보고 있지 않나 착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은 교회의 대표라고 하지만 교회에 조금의 보탬도 되지 않고 오히려 전도문을 막고 있는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공의들이 파업으로 인해서 두 분의 생명이 삶에서 떠나버렸다는 뉴스를 들었다. 참 기가 막힌 뉴스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도, 병원이 옆에 있었는데도, 의사가 있었는데도 순전히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에 귀를 막은 것이다. 의사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반드시 숙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의료의 윤리적 지침으로, 현대의 의사들이 의사가 될 때 하는 선서이기 때문이다.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 나의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이런데도 아무리 자신들은 어떤 변명을 해도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밥그릇 지키기 위해서 터무니없는 파업을 하고 있으니 국민 된 입장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적잖이 속이 상한다.
White Christmas (0) | 2020.12.25 |
---|---|
제33회 kt기독선교회 기념성회 (0) | 2020.11.26 |
산책로 코스모스 가꾸기 (0) | 2020.08.17 |
특별한 경계 (0) | 2018.03.24 |
kt기독선교연합회 성회 (0) | 2017.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