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작정'에 해당되는 글 1건
- 2020.02.27
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사람의 행위와 인생의 종교적 특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의지작용과 자기결정입니다. 의지작용이 성벽적 복합체에 의해 결정된다면, 과연 자유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의지작용의 의도와 능력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자유합니다. 자율적인 능력 또는 자율적인 행위주체가 그의 무조건적인 大權대권(특권/prerogative)에 의하여 일련의 의지작용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 작용은 그 사람이 특성적으로 어떤 사람이냐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결정됩니다. 자유는 일련의 의지작용이 자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의지작용은 자기 결정적입니다. 행위는 자기 행위입니다. 의지작용은 자기의지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외부로부터의 강요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의해 행위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에, 결코 강제되거나 어떤 본성의 절대적인 필연성에 의해 선 또는 악이 결정되지 않는 본래적 자유(natural liberty)를 부여하셨습니다. 야고보서1:13-14은 인간행위의 이러한 과정을 묘사하였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이 원리는 선과 악에 있어서의 인간의 모든 상황 속에 적용됩니다. 그것은 타락에도 중생에도 적용됩니다. 타락에서 사람의 성벽은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를 낳았습니다. 중생에서 새로운 성품이 주어집니다. 그 결과 새로운 의지작용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내재적인 성품에 반하는 의지작용은 없습니다. 어떤 것도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의 내재적인 성품에 반하여 의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가정은 결국 우리가 부여받은 본성을 파괴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선 또는 악을 위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들, 다시 말해서 선의 권고 또는 악의 유혹의 영향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은 유혹이 포함하고 있는 것을 잠자코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는 주장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의 성벽은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 또는 수용에 의해서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자유는 소극적으로는 강제의 부재, 적극적으로는 자기 결정으로 정의됩니다. 사람은 자기행위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행위는 그의 의지작용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의지작용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 추진되기 때문입니다. 강제 없이 행사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내밀한 경향과 성벽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이성적 자발성입니다.
자유의 포괄성은 의지작용과 행위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벽의 복합체인 마음에도 적용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타락되어 있으나, 이 타락성은 그의 것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성품은 거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한변화는 커다란 신비이지만, 거룩하지 않은 성품은 그의 것입니다. 그 까닭에 이 성품의 모든 움직임에 대하여 그는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중생을 통해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사람은 중생을 통해서만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주어지면 그것은 중생한 사람에게 속하며, 그것은 강제적으로 부과된 성품이 아닙니다. 새로운 성품은 그 사람의 특징적인 속성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내재적인 성품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그의 의지에 반하는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의에 의해 그의 것입니다. 반대 선택의 능력은 자유행위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선택(contrary choice)과 대안선택(alternative choice)을 구별해야 합니다. 반대 선택은 도덕적으로 반대되는 兩者양자, 곧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면에 대안선택은 윤리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가진 양자로서 모두 선한 양자나 모든 악한 양자 사이에서의 선택입니다. 이것은 오직 반대 선택에만 적용됩니다. 이제 이 명제를 검토하면서
소극적인 면에서 사람이 반대 선택의 능력을 가졌던 상황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완전성의 상태에 있었던 아담은 반대 선택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것을 부인한다면 범죄는 그의 본성의 필연적 산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아담은 범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르고 거룩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중생에서 심겨진 거룩함으로 인하여 반대 선택의 능력 곧 선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內住내주하는 죄 때문에 범죄 할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7:25은 이 취지를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상태의 중생하지 못한 사람에게 대안 선택의 능력이 결핍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범죄의 필연성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모든 사람)는 전적으로 타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에베소서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러나 죄의 속박의 영역 내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대안적 행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중생한 사람은 비록 그의 확정된 거룩함의 상태로 인하여 특정한 것들을 의도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가 선과 악의 범주 안에서 대안적 선택을 가지는 많은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위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과 오직 예정된 행위들만이 일어난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하지만 대안적이며 반대적인 선택능력은 인간의 作因작인과 가능성의 영역에서 배제될 것입니다. 반대선택의 능력은 완전성의 상태에 있는 아담의 속성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정은 모든 것을 포괄하지만, 사람에게서 그의 행위를 빼앗거나 그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하는 자발적 결정을 그로부터 박탈할 정도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정은 그것이 유효한 경우에 반대선택의 능력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예정이 인간의 책임과 갈등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대안 선택의 능력과 갈등하지도 않고 배제하지도 않으며 그것은 이 능력이 필연적으로 단정될 때 반대선택의 능력과 갈등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죄의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력은 우리로부터 자유행위를 박탈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자유행위 때문에 죄의 속박이라는 고발이 가해질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생한 상태에서 특히 영화된 상태에서 선을 행할 거룩한 필연성과 그 반대의 불가능성은 자유행위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행위가 그 특성화를 가능하고 적절하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정으로부터 생기는 필연성이 아니라, 확정된 선과 악의 상태에서의 필연성과 도덕적 종교적 상태에만 배타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류가 타락하기 전 반대선택의 능력은 아담의 자유 행위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담이 그의 완전성 안에서 확정되었더라도 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행위 주체였습니다. 반대선택의 능력은 시험을 목적으로 존재했습니다. 죄의 상태에서 선에 대한 전적인 무력은 자유 행위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선에 대한 전적인 무력과 책임 있는 행위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는 상대적이고 영화 상태에서는 절대적이 되는 거룩함의 확정(confirmation)은 우리를 자동기계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확정 상태에서 자유행위는 최고도로 표현되고 실현되고 있습니다. 자유행위의 핵심은 외부로부터의 강제 없이 우리의 본성과 특성에 따라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된 자유행위는 사람과 천사의 모든 상태들에 적용됩니다. 자유 행위는 확실성(certainty)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어떤 행위가 미래에 발생할 것은 확실하지만 발생의 양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불확실성과 조건성이 자유에 필수적이라든가 발생의 확실성이 자유행동(free act)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에 반대합니다. 이 입장은 인간의 책임성을 위해 예정을 부인하려는 입장과 유사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행위의 관계를 분석해서 유효한 완전한 일치(concursus)를 발견하고 인식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각각의 영역과 실재성과 완전성에 대한 침해 없이 모두를 옹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先知)는 발생의 확실성을 전제로 합니다. 그의 예정은 모든 발생을 확실하게 합니다. 그의 섭리에 의해 예정된 것은 변함없이 실행됩니다. 오직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섭리의 영역 안에서만 우리의 자유 행위는 사실이며, 그것은 오직 그렇게 옹호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살며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예정된 목적의 성취에 있어서 섭리는 우리의 존재에 필수 불가결한 자유와 양립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 존재에 불가결하며, 결코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기 위해 작용하지 않습니다(John Murray).
그리스도인이 멸망할 수 있는가?(로마서5:1-11) (0) | 2020.03.08 |
---|---|
믿음으로 의롭다하심(로마서5:1-11) (0) | 2020.03.04 |
하나님의 작정( 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23 |
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18 |
하나님의 작정(뜻/계획)(로마서5:1-11) (0) | 2020.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