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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감취어진 섭리(로마서 9:19-21)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부족했습니다. 원래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서 모든 것들이 부족하게 되었습니.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무엇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노력해야 했고, 그 대가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항상 경쟁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해의식을 자연히 느끼게 됩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더 가지지 않았을까? 저 사람과 내가 과연 평등할까? 이런 의구심이 인간역사에 팽배했습니다.

19절의 말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하나님의 감취어진 섭리상의 뜻과 교훈적인 계시된 뜻을 구별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 불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질문하는 사람이 어리석고, 염치없으며, 무감각하다고 꾸짖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를 문제 삼기 때문입니다(William Hendriksen). 바울사도의 요지는 하나님의 선택이 매우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를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성경적인 입증을 제사하면서 하나님의 선택이 자주적인 것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조병수). 대체적으로 하나님께 불만을 품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자가 멸망할 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듣게 되면 분노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의 대적들이 미리 반론할 것들을 앞질러 손을 쓰고 있습니다. 경건치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의를 큰 소리로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변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잘못이 있는 것으로 핑계하면서 주장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정죄 받게 된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버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권능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립니다. 그들은 분노를 속에 항상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폭군이라고 비난합니다. 또한 궤변론자들의 학파들은 소위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에 대해서 허튼 소리를 해댑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 자신의 의를 망각하고서 모든 것을 혼돈시켜 자기의 권위를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치 못한 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를 내실 수가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합니다(John Calvin). 14절을 보면 의문변화사 ) mh;/있느뇨가 있습니다. 가 나타내고자 하는 뜻은 하나님께 불공평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Lenski).

창세기5장을 보면 셋의 후손들이 나열되었습니다. 창세기4장에는 가인의 후손들이 나열되었습니다. 이들이 각각 평행으로 갔으면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창세기6:1-9을 보면

1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이 합해졌습니다. 이 땅은 죄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물로 온 세상을 심판했습니다. 노아의 가족만 빼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언어만 혼잡하게 되었고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을 애굽에서 성장시켰습니다. 430년 후에 애굽에서 빼내십니다.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그러므로 거룩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받지 못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제외하고 이스라엘에서조차 그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국가와 민족들은 어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 말대로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사람마다 가는 길이 모두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로, 어떤 사람은 불교, 어떤 사람은 Roman-Catholic, 어떤 사람은 힌두교, 어떤 사람은 이슬람교 등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감취어진 섭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정하신 영원한 계획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정하셨으며, 그분께서는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통해서 실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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