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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참으시는 하나님(로마서 9:22-26)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진노의 그릇/skeuvh ojrgh'"이란 강퍅한 사람(18/sklhruvnw)을 말하는데 강퍅하다는 뜻은 능동태(能動態)로는 굳어지다이며, 수동태(受動態)로는 굳게 하다입니다. 헬라어문헌에 의하면 스클레뤼노는 본래 의학용어(醫學用語)입니다. 그러므로 Hippocrates의 저작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용어입니다. 70인 역본에서는 카셰/완악한의 번역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진노의 그릇이란 멸망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은 죄인의 형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창세기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창세기18:26-32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열왕기상21: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느헤미야9:17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시편10:8-14 8 저가 향촌 유벽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저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지나이다 11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2)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없기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니 열방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시편86:15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시편145;8,9 8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9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이사야5:1-4 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3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에스겔18:23,32 2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에스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누가복음13:6-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요한계시록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인자하셔서 구원받지 못할 자들에게도 오래 참으십니다.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도 유예기간(猶豫期間)을 무려 120년이나 주셨습니다. 이 기간에 혹시 얼마라도 노아의 하는 일과 전도를 받고 마음을 돌릴까 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마태복음24:38-39을 보면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들의 하는 일들은 반드시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습니다. 120년이라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유예기간이었습니다. 오래 참는다/makroqumiva/마크로뒤미아체념, 감수, 강제적인 수락을 의미합니다. 그런가하면 자포자기적인 인내라는 뜻도 있습니다. ‘'지연, 지체, 행동을 연기하거나 미루는 것'’입니다. ‘고난과 재난을 참는데서 보이는 것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 속에 있는 인간에게 이미 명백히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진노하심은 오래참으심 후에 진노의 날에 절정에 달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순전히 인간의 회개를 기다리고 게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어떤 대상입니까? 물로 쓸어버려야 할 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멸하기로 준비된(복수)”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철저하게 구분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25절과 26절을 부르면 호세아서를 인용합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주전8세기경의 이스라엘은 더욱 패역했습니다. 이 시기에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큰 승리들을 계속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재촉하고 가속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부로부터의 영적, 도덕적 부패에 의하여 붕괴되고 있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앗수르가 주변국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복하면서 접근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이스라엘은 번영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운하를 만들면 우리나라는 곧 일등국가가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천문학적인 국가의 재정을 낭비했습니다. 국익이라고 하는 것은 단 1%도 없는 4대강공사를 밀어붙여서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을 죽이는 공사였고, 주변공간을 죽이는 공사였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훼손하는 공사였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고멜이라는 여인과 혼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혼인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음행을 즐기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았습니다(2:4). 그들의 이름은 이스르엘/la[er]z]yI/“하나님이 씨를 뿌린다입니다. 예후의 유혈혁명(流血革命)과 그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로루하마(hm;j;rU aOl/“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함입니다. “로루하마는 호세아의 둘째 아이()에게 붙여진 상징적 이름으로서 여호와께서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세 번째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를 낳았습니다. 로암미는 이름은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름입니다. 왜 이렇게 선지자에게 가혹한 혼인을 하라고 하십니까? 그들의 이름은 주님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의 상태를 상징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호세아는 자기의 부인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을 나가버린 행락지로 가만히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사 가지고 옵니다. 이어서 긍휼을 베풉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예전의 명예로운 위치에 다시 앉혀줍니다. 그로 인해서 자녀들의 이름이 바뀝니다. “나의 사랑하지 않는 자나의 사랑하는 자, “내 백성이 아닌 자내 백성으로 바뀝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9:25에서 호세아를 인용합니다. 사도바울은 호세아가 고멜의 죄와 형벌과 회복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언의 죄와, 형벌과, 하나님의 사랑에로 회복시키심을 말합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인의 회복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에 대하여 말하면서 호세아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회복이든지, 이방인의 개종이든지, 회복과 구원의 원인은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회복 혹은 전향을 가져다주는 것은 언제나 전능자 하나님의 능동적이고 강력하며 주권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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