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교회의 바른 판단(사도행전15:6-11)
사도와 장로들이 이방사람들의 구원문제에 대해서 회의를 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안디옥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교회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데, 유대주의자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교회에 파견했습니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교회에서나 안디옥교회에서나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후세에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회의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바울, 바나바였습니다. 7절을 보면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측에서는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 측에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토론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베드로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너희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행10:20/고넬료). 하나님께서 우리 때에 비로소 이방에 구원의 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보내서 주님의 복음을 듣게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가운데서 나를 택하여 보내지 않았느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증거하게 하셨지만,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 하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저희(이방인) 마음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즉 저희나(이방인), 우리를(유대인), 분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울과바나바의 의견과 같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주의자들에게 말합니다. 예루살렘교회측에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게 한다는 것은 과오를 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굳이 정탐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수백 년 전에 말씀하시고 누차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탐꾼을 보낸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조상과 자신들도 지금 토론하고 있는 것은 능히 매지 못할 멍에라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이방인) 동일하게 주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어야 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너무나 멀리 초대교회와는 멀어졌습니다. 베드로와 바울과 야고보는 얼마든지 부딪힐 소지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의 알력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다투어야 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대로 했지, 자신들의 견해는 조금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른 성도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바른 성도의 자세요, 교회지도자들이 본받아야할 사항입니다.
'사도행전 새벽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나바와 바울의 보고 (0) | 2015.07.18 |
---|---|
교회의 기득권과 이권 (0) | 2015.07.17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0) | 2015.07.14 |
중요한 교회회의 (0) | 2015.07.13 |
니케아공의회/니케아신경 (0) | 201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