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기득권과 이권(사도행전15:6-11)
살아있는 생물들은 생존경쟁을 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살기 위해서 피를 튀기는 생존경쟁을 합니다. 같은 종에서도 그렇고 같은 것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만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기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생물 중에서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생존경쟁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라서 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존경쟁은 하되, 법과 질서의 테두리 내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적인 교육과 질서도 여러 층이 존재합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아져야 합니다. 그런대 좋아지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람들은 더 지능적이고, 더 대담해집니다. 그래서 펜으로 도둑질한 놈이 소 도둑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인간은 본디부터 악하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제동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교육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전인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로도 안 됩니다. 종교적으로도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으로 됩니까? 믿음으로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믿음으로밖에 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조차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기득권과 이권입니다. 교회에서 기득권은 단연 먼저 교회에 나온 성도들입니다. 소위 말해서 전입고참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그것에게서 파생되는 것들이 이권입니다. 이 기득권과 이권이 교회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며 아프게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거의 기득권과 거기에서 파생된 이권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득권과 이권을 야고보사도는 어떻게 말합니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그) 욕심(hJ ejpiqumiva)/he epithuimîa/헤 ‘에피쒸미아’는 ‘에피쒸메오’(ejpiqumevw/탐내다)에서 유래한 말로 충동, 욕망, 갈망을 의미합니다. ‘에피쒸미아’는 처음 문학에서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윤리적으로 나쁜 의미를 지녔습니다.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이생의 악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였기 때문입니다.
욕망(에피쒸미아)이 중립적 또는 좋은 의미인 경우는 누가복음22:15, 빌립보서1:23, 데살로니가전서2:17입니다.
누가복음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빌립보서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데살로니가전서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욕망(에피쒸미아)가 나쁜 의미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마태복음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가복음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인간의 욕망이란 항상 죄를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쁜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욕망들을 성령충만 하지 않으면 제거하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교회의 분쟁들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진리입니까? 말은 그렇게 합니다. 표출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기득권과 이권입니다. 기득권과 이권을 빼면 교회의 분쟁은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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