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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이 아니면 악이 된다.

인간은 살아 있을 동안 마음은 죽어 있는 것이며, 육체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을 때 마음은 살아난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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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주는 교훈을 보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결 과는 언제나 그 욕망의 결과로 얻은 어떤 가치와 어 떤 존재로도 스스로의 이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섬겼거나 그 헛된 이상이 불러오는 오만과 악으로 어두워진 이성의 눈 으로 섬길 필요조차 없는 것에 대한 막연한 희구였음을 알게 될 뿐이다. 인류가 한 덩어리가 되어 죄 속에 살고 있으며 또 각자가 그 속에 살고 있는 무서운 거짓을 떠나 밝게 살자면 솔직하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가 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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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말에 입은 상처는 고칠 수 없다.

                       페르시아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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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9:1-33에서 본 유대인의 미래

 

9장부터 11장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방법은 역사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약속은 믿지 않는 나라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남은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그러했습니다. 현재에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불신앙으로 자기들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항상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스라엘인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9:6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11:1-6,26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구원은 언제나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법칙은 종족의 구별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됩니다. 유대인의 불순종은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구원이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시기를 불어넣어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으로 안도했는지를 바울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11:11,30,31).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원의 사건은 11:33-36의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구원의 길은 동일하게 이신칭의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의하여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가 9장에 와서도 자기의 주제를 결코 망각하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민족이라고 어떤 편견을 가지지 않습니다. 실상 9:3-5에서 어느 정도 확대된 형태로 열거된 유대인들이 향유하는 특별한 이점들은 2:17,18, 3:1,2을 반영하였습니다. “참된 이스라엘이 된다는 의미는(9:6)2:28,29을 반영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율법의 행위는 제쳐놓고 이신칭의를 왜 그렇게 강조했습니까? 바울사도는 9:6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대체로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약속을 오해하여서, 그 약속은 아브라함의 육의 후손을 위한 것이며, 따라서 그 약속의 성취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인간의 공로를 그 조건으로 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인간의 마음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본성적으로 교만해서 은혜에 의해서 구원받기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하냐는 로마 교회 자체가 교리 상 순결할 필요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교인들은 자신들의 확신이 국외자들 즉 불신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 의하여 공격당할 때에 그 확신들을 방어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9-11장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선의의 초대가 여전히 유대인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유대인에게서 손을 떼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즉 현 세대 혹은 은혜시대 전체를 통하여, 그들의 거절은 결코 그치지 않으며(9:6,27) 결코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며(10:21), 결코 절대적이거나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11:14,26).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라도 긍휼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바울도 과거와 현재의 많은 유능한 학자들의 견해대로 9-11장의 기록 목적 중의 하나는 안류역사의 종국에 이르렀을 때, 혹은 거의 가까이 갔을 때, 그 때에 지상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 유대인의 무리, 전체 나라에 대하여 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폭넓은 불신 유대인의 종말적 회복이 될 것입니다.

Nazis의 공포정치가 극에 달했을 때인 1942316일에 고백교회를 향해 행한 설교에서 슈미트(K. L. Schmidt)는 로마서 9~11장이 그 위험한 시대의 신앙열쇠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 세 장에 걸쳐 나타난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소망이 암울한 어둠 속의 빛이라고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에 의하면 그것은 단순한 계시의 반짝임이 아니라 하나님 임재의 현현이었습니다. 9~11장에서 시종일관 하나님의 영광이 울려 퍼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비극에 깊이 개입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문제 미래 문제 유대인 문제는 동일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얼핏 듣기에 이상해 보이는 이 진술은 로마서 9~11장에 대한 균형 잡힌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유대인의 불신앙 문제를 숙고하면서 결국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미래의 소망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 추론은 현재의 역사에 관한 어느 한 견지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강퍅해진 이스라엘의 현재상황은 진실로 하나님의 신실하심 복음 선포 속에 나타난 그 신실하심을 오히려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유대인의 미래는 하나님께서 지금 복음을 통해 무엇을 행하고 계신가라는 선행문제에 좌우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각각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자유주의, 세대주의, 시온주의, 보편주의, 근본주의 등 여러 각도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성경대로 해석한다고 하는데 자칫 성경에 자신들의 생각을 많이 가미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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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닳지 않는 영원한 보물이다. 이사야 64:5에서 우리는 주께서 자비로 영원토록 선대하시나니라는 말을 보게 된다. 만약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를 자비롭게 대하신다면아무리 곤고한 영혼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만족합니다라는 고백을 드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금까지 용서하셨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다시 범죄 하였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심과 자비를 더 베푸시겠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영원토록 그 선하심과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그래서 시편136편은 그 영원함을 한 번이 아니라 무려 26번이나 계속해서 찬미하고 있다.

Thomas Goodwin

 

れみは永遠ですそれはしてえず摩耗しない永遠宝物ですイザヤ645たちはれみで永遠ばれるかという言葉ますもし永遠にわたしを慈悲深われるならばいくら困難であっても、「わたしは満足ですという告白をささげるでしょうはあなたをこれまでされましたかしかしそれにもかかわらずあなたは犯罪しましたか自分れみをもっとえてくださいますかそうだ永遠永遠そのげられるでしょうだから詩編136その永遠さを一度ではなくなんと26けて賛美している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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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식을 반추하는 동물이 되어야 한다. 아무 리 많은 서적을 서재라는 밥통 속에 넣는다 해도 그 것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좋은 지식을 되 풀이하여 삭이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책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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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양의 사람 중에는 이른바 비천한 사람도 있다. 그들을 대할 때 비록 천하고 가엾다고는 할망정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의 인격 속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영원히 존재할 그들의 어떤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매우 악한 인격의 소유자를 만날 때라도 ‘그렇지, 이 세상에는 저런 추악한 존재도 필요해서 존재하겠지’하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을 감정대로 적대시한다면 불의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와 같이 불의한 인간에게 맞선다는 것은 죽음의 투쟁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사람도 인간의 그 성격 능력, 기질, 용모를 뜯어고칠 수는 없다. 어떠한 사람이든 비난받을 행위 때문에 그 인격의 본질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인격의 본질적 속성은 인격 그 자체 내에 갈등해야만 하는 내면의 미흡함과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외면적인 마찰은 상존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가 나타났다고 해서 인격의 본질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본질이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데 그 본질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한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에 맞부딪쳐 고뇌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인격에 내재하는 개성을 인정하고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본질을 바꿀 생각은 아예 말고 또 그런 인간을 비난할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Arthur Schopenh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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