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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모양의 사람 중에는 이른바 비천한 사람도 있다. 그들을 대할 때 비록 천하고 가엾다고는 할망정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의 인격 속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영원히 존재할 그들의 어떤 불멸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매우 악한 인격의 소유자를 만날 때라도 ‘그렇지, 이 세상에는 저런 추악한 존재도 필요해서 존재하겠지’하고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을 감정대로 적대시한다면 불의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와 같이 불의한 인간에게 맞선다는 것은 죽음의 투쟁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사람도 인간의 그 성격 능력, 기질, 용모를 뜯어고칠 수는 없다. 어떠한 사람이든 비난받을 행위 때문에 그 인격의 본질까지 비난할 수는 없다. 인격의 본질적 속성은 인격 그 자체 내에 갈등해야만 하는 내면의 미흡함과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외면적인 마찰은 상존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가 나타났다고 해서 인격의 본질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본질이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데 그 본질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한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것에 맞부딪쳐 고뇌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인격에 내재하는 개성을 인정하고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본질을 바꿀 생각은 아예 말고 또 그런 인간을 비난할 생각조차도 하지 말라.

                                          Arthur Schopenha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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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거칠어지는 주된 원인은 거짓 신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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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조직의 힘은 천 명의 사람이 공동으로 일함으로써 천 명이 사용할 양만큼만 얻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999명이 오직 한 사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만행을 보며).​

                        Henry Geo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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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젊은이가 인간이라는 고유의 품성을 하직하고 죽음을 연습하고 죽임을 배우는 병사로 교육한다. 따라서 병사는 관습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병사들의 중요한 감정은 상관에 대한 봉사이다. 상관이라는 사람은 영내에서 전제주의를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전제주의는 자기의 목적을 폭력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웃의 권리를 노리개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의 주된 만족은 모험이고 폭풍우 같은 위험이다. 결국 그들은 평화로운 노동에는 등을 돌리게 된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고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어 간다. 전쟁에 이긴 국민은 승리에 도취되어 또 새로운 승리로 향하여 나가려 하며 패전의 고배를 마신 국민은 그들의 명예와 손실을 회복하려고 서두른다. 서로 물어뜯고 분노에 미친 국민은 서로 상대방의 멸망을 바라며 적국에 질병이나 기아사고나 내란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따라서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이런 국민 사이에는 괴로운 고뇌가 아니라 승리의 기쁨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 거리거리에 전광 등불로 번쩍이게 하고 방방곡곡에서 큰 잔치가 벌이는 축제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지고 사악한 욕심을 길러낸다. 결국은 동정이나 인도적 감정을 잃어버리게 한다.

전쟁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는 무서운 살인마들이다. 폭탄 한 개마다 수십 명 내지 수천 명의 목숨이 죽는다. 한 명의 전쟁광 때문이다. 저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지만, 그 전쟁이 참혹하여 자기의 자녀들은 절대로 전쟁터에 보내지 않을 비겁한 자들이기도 하다.

-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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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악 중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악이 가장 크다. 대개의 젊은이들은 고귀함과 위대함은 한 인간이 자신의 의욕을 차버리고 타인의 의로운 욕망을 위한 도구의 역할이 되어 그 때문에 죽음을 당하든지 굶주림과 목마름과 비바람이나 한서 때문에 고초를 당하며 불구가 되어도 그 연유를 초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부여한다. 또 죽은 뒤의 불멸이나 신문이 제멋대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영광 따위와 덧없는 찬사에 웃고 웃지 않는다.

총소리가 난다. 그는 부상당해 쓰러진다. 전우들은 그를 군화로 짓밟고 전진하므로 그대로 죽어간다. 아직 숨이 붙어있던 그 병사는 그 자리에서 불멸의 죽음이라는 고마운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전우들도 친척들도 그의 죽음 따위는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 병사가 자신의 행복과 고뇌와 인생과 모든 것을 바쳤던 그 죽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2, 3년 지나서 누가 그의 백골이라도 찾아내면 그 백골로 영국식 구두약이 만들어져 그가 소속했던 군대의 장군이 구두를 그것으로 닦게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 인생독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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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공정을 말하고, 말로만 정의를 외치며, 말로만 미래를 말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말뒤에 바로 따라붙어야 하는 것이 행동이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과거의 행동이 그러해야 한다.

​                                Pear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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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위는 사회로부터 칭찬과 박수를 받는다. 그러한 칭찬을 눈앞에 맞이할 때 인간은 먼 곳에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보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이에게는 유달리 매혹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무지개, 즉 그 상황이 사라져 버리면 그와 동시에 노력하는 힘도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기독교도 앞에는 영원히 무지개가 빛을 내고 영원의 상황이 보인다. 기독교도는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의 싸움을 갈망한다. 기독교도에게는 늘 싸워야 할 것과 나아가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늘 맑고 밝은 자아의 반성은 스스로의 속에 있는 새로운 결점을 폭로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점과 싸우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도 속의 모든 힘은 잠자거나 약해지거나 하지 않게 되어 항상 눈뜨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선하고 싶다는 소원은 제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야심가에게는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퇴화해 가는데 왜 기독교도는 발전해 가는가? 그리고 기독교도들은 앞으로 나감에 따라서 왜 점점 더 깊은 지식을 얻는가? 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Nikolai Vasil evich Go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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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할 수 있어도 말에 입은 상처는 고칠 수 없다.  페르시아속담

 

말은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있다. 예를 들면 보복한다든지, 검찰제국을 만든다든지, 촛불을 들고 집회했던 사람들을 다 집어넣어야 할 놈들이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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