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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이스라엘(출애굽기12:37-42)

이스라엘 자손들이 라암셋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숫자는 유아 외에 장정들이 600,000만 가량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많은 잡족들이 같이 떠났습니다. 가축들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들을 얼마나 급히 떠나게 하였던지 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워서 먹을 정도였습니다. 이유는 아무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었습니다(주전1876-1446). 430년이 마치는 날에 이들이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날을 지켜야 했습니다. 유월절은 절기 중에서 밤에 지키는 유일한 절기였습니다. 그 밤은 여호와께서 보호하시는 거룩한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영원히 이 날을 기념해야 했습니다.

창12:3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지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이들은 그 말씀대로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장정들만 600,000만 명이니 실제인구는 200만 명을 훨씬 넘었습니다. 250-300만 명으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출애굽하기까지 노력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괴로울 때에 고통의 소리를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고역에 시달릴 때 고통 한 것밖에 없었습니다(출 2:23). 한숨 쉬고 괴로워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기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한일은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습니다(창3:15). 그를 이스라엘에 태어나게 하심도 하나님이십니다(미5:2). 그를 버리시기로 작정하심도 하나님이십니다(마26:42). 그가 삼일 만에 부활하심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마28:9-10). 우리를 구원하심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요1:12).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도 그렇습니다. 이 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우리가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낼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언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의 은혜와 지혜로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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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⑩(출애굽기12:29-36)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은 한밤중에 일어났습니다. 즉 자정에 일어났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깊이 잠든 밤이었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죽음의 사자를 보내어 잠에 빠져 있던 애굽왕과,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잠자리로부터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감옥에 갇힌 이집트의 장자들은 정확하게 모두 변을 당했습니다. 장자라고 해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모두 죽이신 것이 아니라 아직 아버지가 아닌 처음 난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즉 미혼의 장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래도 애굽에서는 엄청난 타격이었습니다. 우선 바로의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해외 토픽감이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고센지방은 멀쩡했습니다. 주변국의 나라들은 멀쩡했습니다. 그리고 차자들은 멀쩡했습니다. 장자만 죽었습니다. 애굽의 장자들만 죽었습니다.

변을 당한 그 날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백성들과 아이들과 가축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이제 바쁜 사람이 바로였습니다. 바로가 얼마나 혼이 나갔는지 너희의 요구대로 내 백성가운데서 떠나라 하였습니다. 즉 너희들이 이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가 더 재앙을 받으니까 빨리 떠나라고 재촉하였습니다. 덧붙여서 바로는 자신을 위해서 축복하라고까지 했습니다. 어쨌든 바로는 이스라엘을 빨리 내보내려 했습니다. 재앙의 화근을 없애자는 것이었습니다. 애굽 백성들도 이스라엘을 빨리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식량인 떡반죽이 아직 醱酵되기도 전에 반죽 담은 그릇과 함께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나가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는 명령이 아직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반죽을 발효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여행 첫날에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나간다고 하니까 빨리 보내려고 은금패물과 의복을 구하는 대로 모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권세가 있고 힘이 있다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마치 벌레와 같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로서 이스라엘은 430년의 긴 노예생활을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로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기한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출애굽을 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과감히 탈출하여야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어야 합니다.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잡아놓고서 세상에 얽매여 살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마귀의 굴레에서 믿음으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헛되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신앙의 허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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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시⑩(출애굽기12:21-28)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지시하신대로 백성들의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가족대로 어린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우슬초묶음에 피를 적시어서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설주와 상인방에 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한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멸하는 천사의 치심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명료한 책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들은 성경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읽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많은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올바른 지식과 참된 믿음을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사실들에 있어서 배우지 못한 자들도 이해할 정도로 충분히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성경과 비교해야 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그들을 돕는 그 능력 속에 있는 모든 수단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말씀을 그대로 백성의 장로들에게 전했습니다. 백성의 장로들은 족장들에게 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목요연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만일에 이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전하지 않거나 잘못 전하면, 그 전하는 루트는 죽게 됩니다. 모세가 전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전체가 잘못됩니다. 장로들이 전하지 않으면, 거기에 속한 집단들이 죽음을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그대로 했습니다(28절). 모세의 말대로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며”(히11:28) 아무리 살길을 마련하더라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살길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서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까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은혜입니다. 말씀이 있는 나라, 말씀이 있는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미 받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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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을 지키라⑩(출애굽기12:15-20)

이스라엘은 7일간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첫날에 누룩을 제해야 했습니다. 첫날은 아빕월 15일입니다. 그러나 정월14일에 이미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첫날(15일)부터 칠일(22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끊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이 절기의 의의는 무교병을 먹는 데에 있습니다.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빵을 먹는 것입니다. 빵은 생명을 보존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유지가 생명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일주간을 무교병을 먹으라 하셨습니다. 무교병을 먹는 이유는 죄악된 본성의 누룩으로부터 깨끗해짐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 유교병을 먹는 자는 그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중에서 끊어졌습니다.

첫 날과 제 칠일에 성회로 모였습니다. 그 날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에는 여호와를 예배하기 위해 모여야 했습니다. 첫날과 제 칠일에는 음식을 만드는 외에는 노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안식일에는 음식 만드는 일도 금지되었습니다. 불을 피우면 끊어지리라 하셨습니다.

무교절을 지키는 이유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심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남아있는 애굽적인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누룩은 악을 상징합니다. 고전5:8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하였습니다. 순수하고 거룩한 식사를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떡을 먹으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새로운 생활 가운데 행함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본토인이나 타국인이 누구나 이스라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거하는 한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사43:15-17). 무교절은 7일간 지켜야 했습니다.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성회로 모였습니다. 모든 노동을 금지하였습니다.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신성화시켰습니다. 무교병을 먹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했습니다(요6:27). 그리스도인은 옛 생활을 청산한 사람들입니다. 누룩 없는 떡을 먹는 사람들입니다. 새롭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다시 옛생활을 동경한다거나 사랑해서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간다면 애굽에 노예로 남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와 같이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누룩을 우리의 생활에서 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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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된 솔로몬

열왕기상1:1-53

대통령(president)에게 부여되는 특권은 대단합니다. 내란죄(內亂罪)·외환죄(外患罪)를 범한 경우가 아니면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합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기타 국가위기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습니다(헌법71). 또한 외교·선전(宣戰)·강화권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60만 대군을 움직일 수 있는 국군통수권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은 법률에서 위임받은 대통령령(令)을 발할 수 있습니다(헌법75). 대통령은 긴급처분·명령권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계엄선포권이 있습니다. 죄를 사면하는 권한도 있으며, 훈장 등을 수여할 수 있으며, 국회에 대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일급경호를 받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서 4800만의 대표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권한이 막강합니다.

왕은 지금보다 조직은 미흡했지만 그 권한은 대통령보다 더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한도 가졌습니다. 그 나라를 자신의 마음대로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기 위해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피를 흘리는 경쟁을 벌렸습니다. 왕이 되면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10절을 보면

1다윗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 5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6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I. 자칭 왕 아도니야(1-10절, 41-53절).

사람은 나이가 들면 제대로 몸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음은 산이라도 들 것 같은데 조그마한 돌 하나도 들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신체기능들이 쇠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젊은 날에는 사자와 곰도 찢어 죽였습니다(삼상17:36).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생활할 때는 한들에서 자고나도 거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아름다운 젊은 처녀를 구하여 다윗을 수종을 들게 했습니다. 다윗의 몸이 이러다보니 국정에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주위에서 눈치를 채고 차기에 왕이 될 사람에게 자신의 힘들을 실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다섯 번째 아내인 학깃의 아들 Adonijah가 왕이 되기 위해 나섰습니다. 먼저 그는 스스로를 높였습니다(aCen"t]m/mitnasei). 왕이 되고자 여러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전차를 준비했습니다. 기병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50명의 경호원을 선택했습니다(5절).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넷째아들로서 아주 잘생겼습니다. 다윗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큼 인정을 받았습니다(6절). 첫째형 암논이 셋째인 압살롬에게 죽었습니다(삼하13:29). 셋째인 압살롬도 반역으로 죽었습니다(삼하18:15). 둘째 다니엘이 있었지만 어렸을 때 죽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로써 Adonijah는 장자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왕이 약해져 있는 지금 왕위를 확실히 하고자 했습니다.

거기에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Adonijah를 도왔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이 도왔습니다. 이들이 있는 한 왕위는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창한 어느 날 자기를 좇는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나단과 브나야와 다윗의 용사들은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초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잔치를 하고 기름만 부으면 왕이 될 차례였습니다. 기름을 붓기 전에 먼저 Adonijah는 측근들과 잔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왕이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입니다. 그리고 현재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없었는데도 Adonijah는 자기가 나서기만 하면 왕이 될 줄 알았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합니까? 믿을만한 측근이 있었습니다. 요압이 누구입니까? kingmaker입니다. 다윗을 다윗 되게 한 국방장관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최측근으로서 도와주고 있으니, Adonijah가 스스로를 높여봄직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품이 딱 왕감이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섬기고 있는 Miss Abishag과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Adonijah가 생각할 때에 자기는 왕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내가 왕이 되면 나라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CEO출신이니까, 나는 경제통이니까, 나는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으니까, 나는 명문대를 나왔으니까, 나는 많이 가졌으니까, 나는 잘 생겼으니까’하고 대권에 도전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면 아버지 다윗보다 더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공언했습니다. 운하도 만들고 실용정치를 펼치면 곧 이 유다는 중동에서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Adonijah는 자신을 충분히 성찰해야 하는데 성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먼저 물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충분히 묻고 난 다음에 아버지 다윗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또 백성들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격 있다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격이 있다고 해야 하는데, 본인이 자격이 있다고 설쳐대면, 잘못될 확률이 100%입니다. 이런 사람은 100%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도 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수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자화자찬(self-admiration) 할 때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디 출신이라고 믿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이 있다고 섣불리 달려들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셔야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너무나 믿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꿈과 야망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은 야망입니다. ‘이 회사 내가 세웠으니까 끝까지 가야지.’야망입니다. ‘지금 내가 청와대의 주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자’ 야망입니다. ‘이 교회 내가 세웠으니까 자식에게 물려주자’야망입니다. 꿈이 아닙니다. 야망과 꿈은 그래서 다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나 야망은 자신이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일을 해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럼에도 Adonijah는 마치 자기가 왕이 다 된 듯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기 전에 먼저 즉위식을 위한 잔치를 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II. 하나님이 세우신 왕 솔로몬(11-40).

11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13당신은 다윗왕 앞에 들어가서 고하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할 때에 나도 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리이다

Adonijah는 자신이 왕이 되리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는지 보안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려면 보안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경쟁자가 있기 마련이므로 입단속을 했어야 했습니다. Adonijah가 왕이 된다는 말이 왕궁에 파다했습니다. 몇 사람만 빼놓고 모두 초청장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과 선지자 나단, 군대장관 브나야, 제사장 사독만 빼놓고는 모두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인가 눈치를 챈 것입니다. 초청장을 받은 사람도, 받지 않은 사람도 대충 짐작은 하였습니다. 다윗왕은 늙었습니다. 국정을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Adonijah는 명실상부한 장자였습니다. 그와 측근들은 그가 왕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장자이지요, 잘 생겼지요, 똑 부러진 모범생이죠, 어디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은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계획합니다. 하지만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십니다(잠16:6). Adonijah가 생각하지 못한데서 일이 터졌습니다. Adonijah와 그의 측근들은 예루살렘 샘 곁에서 Adonijah왕 축하연을 열었습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차기에 한 자리씩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 이스라엘의 정권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며 축배(toast)를 들고 있을 때에 다윗 궁에서 미사일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12절을 보면 나단이 등장합니다. 나단이 밧세바를 만나서 당신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살길을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숙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장관이 완장을 두르더니 구정권의 사람들을 몰아내는데 앞장섰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방송사장을 나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Adonijah가 정권을 잡는 즉시 제1번의 숙청대상은 뻔했습니다. 솔로몬과 밧세바, 그리고 나단, 브나야, 사독입니다. 이들은 Adonijah가 살려두지 않습니다. 잔치에 초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숙청대상이라는 신호입니다.

이에 나단이 밧세바를 만납니다. 그리고 밧세바에게 다윗을 만나라고 합니다. 밧세바가 다윗에게 어떻게 말하라고 알려줍니다. 13절을 보면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고하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내가 왕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밧세바가 다윗과 말할 때에 나단이 다윗을 만납니다. 그리고 언제 Adonijah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에게는 알리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Adonijah가 왕위를 찬탈한다는 말을 들은 다윗은 나단과 밧세바 앞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30절에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단과 사독, 브나야를 불러서 기혼으로 내려가, 거기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빨리 부으라고 합니다.

이에 나단과 사독과 브나야가 다윗왕의 말대로 기름을 붓고 솔로몬이 왕이 되었음을 알렸습니다(39절). 이 소리가 Adonijah의 잔치하는데 까지 들렸습니다. 양각나팔소리를 듣던 요압이 어쩐 일인가 궁금해 할 때에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천지가 진동하는 소식을 가져왔습니다(43절).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잔치자리는 죽음의 자리로 변했습니다. 할 수 없이 Adonijah는 살기 위해 성소의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51절). 솔로몬이 제단에서 그를 이끌어 내어 집으로 보냅니다(53절).

AdonijahSolomon을 비교해보면 극과 극입니다. Adonijah는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Solomon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열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대상3:1-5). 그런데도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왕이 되었습니까? 나단이 kingmaker의 역할을 해서 된 것 같습니다. 나단과 밧세바가 공모해서 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매튜 헨리는 “나단과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찬탈행위를 분쇄했다고 주석했습니다.” 톰슨도 이를 지지합니다. 즉 누구도 Adonijah가 왕 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Adonijah가 왕이 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볼 때에 하나님은 나단과 Bathsheba의 하는 일에 관여치 않는 듯한 인상을 우리가 받습니다. 그러나 그렇습니까? 잠언16:6을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무엘하7:12절을 보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Adonijah도 왕의 대상이 되고, Solomon도 왕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역대상 22:9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누가 왕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솔로몬을 왕이 되게 한 kingmaker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일들은 저절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절로 돌아가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일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일은 전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irony입니다. 불신자들이 잘 안되고 우리가 잘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반대 같습니다. 다른 애들은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좋은 학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잡아서 출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신경을 엄청 써도 그 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니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 됩니다. 기를 쓰고 별짓을 다해도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일을 처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정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아무리 인정을 받은들 우리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에게는 인정을 못 받아도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면 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하여 입사시험을 치릅니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회사에 출근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수능시험을 치릅니다. 수능시험에 합격해야 교과부의 인정을 받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인정을 어떻게 받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셨습니까?

다음으로 할 일이 그의 하신 일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로 홍해를 건너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용광로 속에 들어갔던 사람들을 살려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자굴속에서 멀쩡하게 나오게 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단강을 가르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성경에 있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는 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믿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잘난 맛에 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만의 계획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잘난 것만 믿었던 Adonijah와 그의 측근들은 뜻도 이루지 못하고 단죄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했던 요압과 아비아달도 후에 단죄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왕되는 것을 반대했던 무리들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회복이 없는 종말을 맞은 것입니다. 악은 금방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파멸이 급작스럽습니다. 우리가 누구 편에 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편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127: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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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을 대대로 지키라⑩(출애굽기12:12-14)

12절과 13절을 보면 어린양의 피를 인방에 바르라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온 애굽을 여호와께서 다니시며 애굽의 처음 것들을 모두 치신다 하셨습니다. 또한 애굽의 신들에게 벌을 내리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12절).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때에 그 피가 이스라엘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위한 표적이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피를 볼 때에 넘어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13절). 그러므로 이 날을 기념하여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키라 하셨습니다(14절).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겠다는 말씀은 어떠한 심판인지는 단언하지 못합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거짓 신들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며, 또 그런 신들을 예배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그릇된 일이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친히 그런 신들의 심판자가 되실 것을 선언하셨다.”라고 했으며, 매튜 헨리는 “애굽인들이 숭상하던 우상들이 파괴되었으니, 쇠로 만든 것은 녹아버렸고, 나무로 만든 것은 불에 탔으며, 돌로 만든 것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던 것이다.”(출애굽기 주석 182./33:4). 카일과 델리취는 애굽의 신들은 애굽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을 지배하던 영적 권세와 능력(귀신들)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들에 대한 심판은 애굽의 우상들의 타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29절에서 사람이나 가축을 막론하고 그 처음 난 것의 죽음만이 하나님의 심판적 행사입니다. 민 33:4에서도 신들에 대한 심판은 처음 난 것의 죽음의 심판이었습니다. 왕들의 아들과 많은 동물의 처음 난 것들이 다 죽임을 당함으로써 그들의 왕들과 신성한 동물들 중에서 예배되던 애굽의 신들. 황소신 Apis와 염소 신 Nendes 등과 같은 신들 자신이 실제로 얻어맞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날(14일 저녁)을 지켜 “여호와의 절기로 삼아 기념”하되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켜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속받은 백성으로 존재하는 한, 즉 영원토록 지켜야 합니다. 마치 구원받은 자들의 새로운 생활이 영원토록 지속되었던 것과도 같습니다.

우리 예수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는 속죄의 피였습니다. 속죄와 하나님과의 새로운 친교의 피였습니다. 그 피가 죄의 용서와 속죄를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 화해토록 한 피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자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만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와의 끝없는 관계개선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어야 할 이유가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을 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대대로 지키라 했습니다. 애굽의 구원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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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먹으라⑩(출애굽기12:11)

하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을 먹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불안한 탈출가운데 먹어야 했습니다. 이제 긴 여행을 하는 복장으로 “허리에 띠를 띠고”먹어야 했습니다. 너풀거리는 옷으로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발에 신을 신고”는 평상시 걸을 때처럼 맨발로가 아니라 어려운 힘든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수9:5-13). 손에 지팡이를 잡고 먹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애굽내의 유월절 음식에만 적용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임박한 출발준비를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라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멸망시키는 천사가 피가 묻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과 집을 그냥 지나간 것입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분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은혜였지만, 애굽에게는 저주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생명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였을 때 그것을 믿지 않았다면 이스라엘도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즉 죽음은 불순종에서 옵니다. 애굽은 아무리 말해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초연하게 들었습니다.

지금도 애굽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듣지 않습니다. 기적을 아홉 가지나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피로 변한 나일강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이가 세상을 주관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애굽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오실 메시야라고 표적을 보였으나 믿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메시야라는 것을 알만한데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망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심판이 있는데 믿지 않습니다. 대심판이 있기 전에 개인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을 통과하면 다음 심판이 있습니다. 즉 예수를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심판의 대상인 인간이 지금이라도 예수를 영접하면 대심판을 면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심판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급히 먹으라 하셨습니다. 발에 신을 신고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먹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급히 먹어야 합니다. 즉 빨리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해야 영혼이 안전합니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살아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하면 죽어도 산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마귀에 꽉 잡혀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이 세상이 끝입니다. 이 세상이 지나면 추후 세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마귀의 임무입니다. 그래서 마귀에게 잡힌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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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어라⑩(출애굽기12:8-10)

이스라엘은 아빕월 14일에 어린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명령이었습니다. 날로 먹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삶아서도 안되었습니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까지 모두 불에 구워먹어야 했습니다. 어린양을 나누지 않고 통째로 구워야 했습니다. 창자도 뱃속에 있는 대로 구워야 했습니다. 어린양을 구워야 했던 것은 그것을 자르지 않은 채로 그리고 본래의 모습 그대로 상위에 차려놓기 위해서입니다(카일·델리취). 그들에게 먹으라고 준 어린 양의 통일성과 완전성을 통하여 참석한 사람들이 식사를 제공한 주님과 더불어 완전히 하나가 되고 친교하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0:17). 그리스도인은 교제( koinwniva)가 중요합니다.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화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린양의 고기는 무교병과 아울러 먹어야 했습니다. 무교병은 발효되지 않은 빵니다. 이스라엘은 발효되지 않은 빵을 먹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누룩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따라서 더럽히는 것이라 하여 제외되었습니다(레2:11). 무교병은 구속받은 거룩한 자가 먹을 신령한 음식을 상징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무교병을 주면서 “내 살이라”하셨습니다. 어린양의 고기는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쓴나물입니다. 쓴 나물과 함께 먹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경험했던 인생의 쓴맛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애굽의 생활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생활을 기억하여 다시는 쓴 생활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무려 430년이나 쓴 인생을 살았습니다. 요셉시대를 빼놓고는 약 300년간은 그야말로 어두운 생활이었습니다. 그 음식은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남긴 것은 燒火해야 했습니다. 이후로 모든 제사음식에 이 규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 했던 聖物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종교적인 예표를 해야 했습니다. 임박한 출발에 앞서서 그 밤에 음식을 먹을 때 그들은 편안하게 평상시처럼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철 가마 같은 애굽을 탈출하면서 먹는 음식인 만큼 이스라엘에게 감회가 깊었습니다.

우리는 이전생활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수를 모르고 살았던 이전시대가 얼마나 고통의 생활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아마 그때의 실생활은 좋고 기뻤을지라도, 그 생활이 쓴 나물의 생활이었습니다. 무교병의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이전을 기억하여 새롭고 거룩하게 살라는 지시의 말씀입니다. 왜 쓴 나물의 시대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은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격리된 생활은 그 생활자체가 쓴 시대입니다. 영원히 멸망된 생활의 한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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