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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출애굽기19:1-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고( !ynIh}Ko tk,l,m]m' yli AWyh]Ti !T,a'w] /베아템 티헤우 리 마므레케트 코하님). 이 말을 아무나 받아들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조건이 붙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5절)이라는 조건에 충족해야 합니다. 5절을 보면 ‘소유’라는 말이 나옵니다.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값진 소유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소유(hL;gus]/çegullâh)는 일반적인 재산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값진 재산입니다. 따로 떼어 놓은 재산입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값진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너희가 모든 제사장들과 왕들이 되리라는 사상을 포함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 된다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왕실의 존귀함 뿐만 아니라 성직권도 부여받았다는 말입니다. 믿음과 순종을 견고히 지킨다면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왕들같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진정한 우리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에 하나님나라의 법을 적용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을 버렸습니다. 애굽에서 나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막는 사람들은 진멸 내지 멸망을 시켰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의 자녀만큼 특권을 받은 나라는 없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항상 장애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 장애들을 모두 제거하셨습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그의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께 거룩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되어야 거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거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자신과 교제하시려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계약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절대불가결적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즉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제사장나라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왕권과 제사직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왕권과 제사직의 대상은 이 세상입니다. 우리가 여호와께로부터 값진 소유로 선택함을 받은 것은 이 땅의 열국들입니다. 이 세상은 마치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독재자들이 몇 십 년을 통치하고, 공의롭게 하는 사람들은 뒤처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약속받았지만, 막상 가나안에 도착해보니 가나안사람들이 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의 경계를 전부말씀하시면서 이 땅을 모두 너의 후손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나라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선택받아서 만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뜻에 충족되는 삶을 우리가 살 때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그의 사랑을 받습니다.
순종하라고 하라(출애굽기19:1-6)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하여 여러 곡절을 겪고 3개월 만에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민33:15). 이스라엘이 이곳에 진을 쳤습니다. “시내광야”는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여호와께서 꼭대기로 내려오셨던 그 산 앞의 광야입니다. 이 산은 이스라엘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계속 시내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모세는 소명을 당한 후로부터 이스라엘이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3:12). 그래서 모세는 진을 치자말자 곧바로 하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올라가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이르고’ (r~m'ato/tō’mar) ‘고하라’(dyGEt'w]/větazêd) 여호와께서 어떻게 애굽 사람에게 행한 일과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을 것이다.
이사야 63:9을 보면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독수리의 날개가 아니면 감히 뺏어올 수 없는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셨습니다.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셨습니다. 그들을 팔로 안으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전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r<a;h; AlK yli AyKi/khî lî khōl hā’aretz). 이 말씀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콜 하에레쯔”“모든 땅”이 여호와의 것이었습니다. 아메리카도, 아프리카도, 아시아도, 오세아니아도 모두 하나님의 땅입니다. 남극도 북극도 하나님의 땅이십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하나님의 땅이십니다. 그러므로 내(하나님) 언약을 지키고 말씀을 잘 들으면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거룩한 나라 즉 “구별한 나라”이며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주권, 위엄의 총체로서 왕의 위엄과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날개로 업히움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제사장된 신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나 내세에서 결코 작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계가 다 우리의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그의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심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는 성결하라 (0) | 2011.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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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0) | 2011.03.04 |
이드로의 충고 (0) | 2011.03.01 |
미디안 사람 이드로 (2) | 2011.02.28 |
아말렉의 출현 (0) | 2011.02.27 |
이드로의 충고(출애굽기18:13-27)
다음날 이드로는 모세의 재판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드로가 본 재판과정은 백성들의 소송문제를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해결하기 위하여 모든 소송문제를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모세는 이 일로 인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에 골몰해있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찾아 물으려고”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온전히 재판에만 매달려 있어야만 했습니다. 업무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재판을 모세혼자 전부 감당해야 했습니다. 소송 중에 있는 문제에 관해 하나님의 결정을 알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모세는 자기 앞에 제출된 소송들을 판결하고 결정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을 이드로가 보고 힘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방법이 백성들에게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기진하였습니다. 즉 법적인 판결이 지연되기 때문에 백성들은 웬만한 일들은 모세에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크게는 공동체의 복리를 해치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모세에게도 좋지 않았던 이유는 업무가 많았습니다. 너무 과중하여 그가 혼자서 그 짐을 계속 짊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충고하기를 좀더 작은 소송 문제들을 위해서는 백성들 가운데서 사사를 뽑아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좀더 높은 결정 혹은 하나님의 결정을 필요로 하는 보다 어려운 소송들만 모세에게 직접 가져와 모세로 하여금 앞에 그런 문제들을 제기하게 하였습니다. 이드로는 千夫長, 百夫長, 五十夫長, 十夫長을 삼아서 웬만한 재판은 그들이 처리토록 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사람들을 선택할 때 재덕이 겸전한 사람(능력)이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arey:/경외하는 자)야 했습니다. 진실무망(tm,a, /신실)해야 했습니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말대로 행하였습니다.
충고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 문제가 됩니다. 대체적으로 독선적인 사람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은 그 고집으로 망해버립니다. 또 잘못된 충고를 받아들여도 잘못됩니다. 르호보암 왕이 잘못된 충고를 받아들였을 때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드로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말씀을 거절하면 우리는 생활에 규범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충고를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힘이 듭니다. 모든 것을 나의 머리에서 짜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면 우리의 일이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다 (0) | 2011.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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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라고 하라 (0) | 2011.03.03 |
미디안 사람 이드로 (2) | 2011.02.28 |
아말렉의 출현 (0) | 2011.02.27 |
맛사와 므리바 (0) | 2011.02.24 |
미디안 사람 이드로(출애굽기18:1-12)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가 거하고 있는 장막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드로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모세로부터 들었습니다. 특히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신 일을 들었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올 때에 십보라와 모세의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 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행하신 일들을 듣고는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이드로는 오히려 이방사람으로서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입니다. 미디안의 제사장이 모세를 찾았습니다. 물론 모세의 장인으로서 찾은 것이지만 이것은 친지 이상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드로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방인의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종교적 친교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과 미디안의 사람들은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말렉이나 미디안 모두 이스라엘과는 혈연관계를 가졌지만 그 백성들의 상이한 태도는 이방의 장차 행동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서 복을 받기도 했고 저주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들은 그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 20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로마서 11:13-20)
유대인들은 대대로 選民思想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선민사상도 제대로 가지고 있으면 괜찮은데 육적으로만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육적 못지않게 영적인 선민사상이 중요한데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면 선민사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은 유대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알기를 우습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노아를 선택했을 때에도, 아브라함을 선택했을 때에도 이미 복음의 보편화였습니다. 이스라엘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도 사랑했습니다. 헬라인이나 자유자나 매인 자나 모두 사랑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방인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가져왔습니다. 이드로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떡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말렉의 출현(출애굽기17:8-16)
다툼과 원망의 사건이 일어난 얼마 뒤에 아말렉이 르비딤에 이르렀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창36;12). 이들이 점점 강성하고, 주변의 부족들을 합병함으로서 강해졌습니다. 이들은 아예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작정을 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말렉과 싸우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처음 등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설 것이라 하였습니다. 비로소 이스라엘은 직접 처음 전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싸웠던 이방세계의 시작이 아말렉부터입니다. 그리고 희한한 전쟁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나가서 싸웠습니다. 모세는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아론과 훌이 같이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것을 아론과 훌이 보았습니다. 이에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았습니다. 그래서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손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기도의 표식이나 태도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위로부터, 즉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끌어왔다는 사실 때문에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음으로 인해 군사들은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그가 그의 기도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팔의 힘이 다하여 그가 지팡이를 아래로 떨어뜨리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아서 아말렉이 우세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론과 훌에 의해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고,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이겼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말렉을 도륙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는데, 감히 아말렉이 막았다는 것입니다. 즉 대대로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리라 하셨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군대를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말렉 같은 것들이 우리들을 힘겹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나가려하면 막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말렉 같은 것들입니다. 성도들의 길을 지체하게 하고, 때로는 아예 막아버리는 아말렉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제거하실 힘과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하는 무리들을 가만히 두지 않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도록 아예 멸망시키기도 하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대대로 찬양을 받으시게 하십니다.
이드로의 충고 (0) | 2011.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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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사람 이드로 (2) | 2011.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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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은 쉬라 (0) | 2011.02.21 |
맛사와 므리바(출애굽기17:1-7)
이스라엘의 회중(hd:[e/ʽêdâh/에다)이 신 광야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러나 르비딤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민수기33:12-14에 의하면 신광야와 르비딤 사이에서 돕가와 알루스에 진을 쳤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고 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없고 마실 물이 없으면 일단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은혜를 생각하며, 기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원망부터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못된 것은 애굽을 동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異蹟을 잊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반석 앞에 서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모세가 대면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가리켜야 했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모세는 이곳을 다툼과 원망이라는 “맛사·므리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주실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원망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면 길이 막혀버립니다. 많은 이스라엘의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원망함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맛사나 므리바의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많은 일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함으로 초래되는 잘못된 것들이 많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 이드로 (2) | 2011.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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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렉의 출현 (0) | 2011.02.27 |
만나를 대대로 간수하라 (0) | 2011.02.22 |
안식일은 쉬라 (0) | 2011.02.21 |
하나님의 떡 만나 (0) | 2011.02.19 |
만나를 대대로 간수하라(출애굽기16:31-36)
만나의 모양은 깟씨 같기도 하고 진주와 같은 모양이었습니다. 흰색이었습니다. 깟(dG")은 미나리과의 고수풀 coriander입니다. 이 씨는 회백색의 직경 3mm정도 되는데 소화제나 향료나 조미료로 쓰입니다.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민11:7). 맛은 꿀 섞은 과자 즉 기름에 튀긴 사탕과자와 같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하늘양식을 일 년 중 한창 때 처음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그것도 자연적인 만나가 발견되고 있는 곳에서였습니다. 시내반도에서는 6월과 7월에 시나이 근방, 와디 훼이란, 에스 세이크, 와디 가란델, 타이베, 시나이의 남동쪽 계곡에서 위성류의 일종인 타르파 나무 가지들로부터 스며 나와 나무 밑에 있는 마른 잎과 가지들로부터 둥글고 작은 공 모양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비가 오는 雨期의 6주간 동안 가장 많이 나오는 때입니다. 이것의 모양은 껌과 같고 그 맛은 꿀처럼 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사점들이 자연적인 만나와 성경의 만나간의 연관성을 보여주지만 성경에서 나오는 만나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를 40년 동안 받은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야 전역에서 모든 계절에, 또한 수많은 백성의 요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35절에 의하면 그들은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만나를 먹었습니다. 여호수아5:11,12에 의하면 그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 유월절을 지켰을 때 만나가 그쳤습니다. 유월절 이튿날에 그들은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만나를 대대 후손에게 계속 기억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만나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간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론은 만나 항아리를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의 후손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의 주권적인 은혜에 의해서 이 땅에 내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의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소유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지키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잊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믿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편안합니다. 이스라엘을 이끄는 아론과 모세는 하나님의 양식을 길이 간직하여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간직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쉬라(출애굽기16:22-30)
만나는 아침에만 내렸습니다. 해가 뜨겁게 오르면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만나를 거두려면 아침에 거두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250만 명으로 계산한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었습니다. 각 1오멜씩을 평균해서 거둔다면 2,500,000X1.2ℓ=3,000,000ℓ나 됩니다. 하루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매일 300만ℓ의 식량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21절).
제 육일 즉 금요일에는 두 오멜씩을 거두었습니다. 다음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내일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미리 식량을 준비하라 하였습니다. 즉 요리를 미리 해야 했습니다. 구울 것은 미리 구워야 했습니다. 삶을 것도 미리 삶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까지 간수를 해야 했습니다. 평일과는 다른 지시입니다. 역시 모세의 명대로 만나를 아침까지 보관했으나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위해서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안식일에는 쉬라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휴식이니”에서 “휴식”은 “안식일 지키기”입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날은 쉬셨습니다. 따라서 피조물인 우리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쉬어야 했습니다. 창세기2:3을 보면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7일째는 쉬셨습니다. 안식에 동참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쉼의 패턴 속에 우리를 넣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안식일 준수 명령은 적극적입니다. “쉬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안식과 예배의 기회를 부여합니다. 십계명에서 안식일 준수는 창조(의 완성)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안식일 준수는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종속된 노동자들에게 휴식의 날을 제공하는 사회적, 인도주의적 계명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식량이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더러는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자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계속 불순종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자리를 잡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포도밭을 허무는 여우처럼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지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맛사와 므리바 (0) | 2011.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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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를 대대로 간수하라 (0) | 2011.02.22 |
하나님의 떡 만나 (0) | 2011.02.19 |
아침에는 떡 저녁에는 고기 (0) | 2011.02.18 |
신 광야에서의 불평(출애굽기16:1-3) (0) | 2011.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