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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엘로힘(창1:4)
@ybeW r/ah; @yBe !yhila> lDEb]Y"w" b/f AyKi r/ah; Ata, !yhila> ar]Y"w"
.&v,joh'
[그리고 엘로힘이(그가) 그 빛을 보셨다. 그 빛이 좋았더라 엘로힘이 그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본문에 나오는 !yhiOla> (하나님, 신들)은 H'/la> (하나님)=laE (하나님, 신. 강한 자)에서 유래한 말로 ‘하나님, 신, 신들‘을 의미합니다. 엘로힘은 복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복수의 의미는 아닙니다.
엘로힘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될 때 복수 어미는 일반적으로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서 진정한 복수를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복수형은 완전을 나타내는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실제로, 그리고 그 단어의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이시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수형이 사용된 이유의 또 하나는 성경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한 분이신 하나님의 단일성을 나타내면서도 위격의 복수성(삼위일체)을 허용해 줄 수 있는 용어의 필요성입니다(창1:2, 창1:26).
참 하나님으로서의 엘로힘은 인간에게 계시된 모든 신적 활동의 주체입니다. 인간에게 받는 모든 참된 존경과 경외의 대상의 역할을 하십니다. 이 한분 외에는 어떤 신도 있을 수 없습니다(사41:4 사42:8 사43:10 이하). 이방신은 신이 아닙니다(레2:11). 그는 우주의 전능한 창조주이십니다(사45:18). 우주를 지배하는 주권자이십니다(창24:3, 창24:9 신4:39 신10:17). 그는 심판자 하나님이십니다(시50:6 시58:11 시75:7).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시18:46 신8:15 렘 20:24등). 위엄과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사30:18 사65:16 렘10:10 삼상6:20)등으로 나타난다. 엘로힘은 또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삭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출3:6등). 따라서 엘로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친교를 나타내는 칭호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가까운데 하나님이십니다.”(렘 23:23), “너희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시라”했습니다.(왕하19:10),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신 8:5),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 48:15), "내 의의 하나님"(시 4:1),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시 59:17 [H18]),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시 43:2)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시 116:5).하셨습니다.
이제 이 지구상에 엘로힘께서 인간들을 가장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서 제공하셨습니다. 우주창조를 시작하여 지구의 환경조성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모두 우리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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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 우주론적 논증 (0) | 2012.01.10 |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창1:3)
.r/a Ayhiy]w" r/a yhiy] !yhila> rm,aYow"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오르 바이히 오르(그리고 엘로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매 빛이 있었다.)
말씀 rm'ia; (이야기하다, 생각하다(마음으로 말하는 것), 의도(기도)하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은 대화의 매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300회 나옵니다. 아마르의 가장 일반적인 용법은 직접적인 대화에서 나옵니다. 이때 주체는 하나님(창1:3), 에덴동산의 뱀(창 3:1), 두려워서 하나님에게로부터 숨고자 한 아담(창3:10), 완고한 선지자를 전환시키려고 한 발람의 당나귀(민22:28), 전쟁을 하고 싶어하는 군마(욥 39:25), 바다 속에 있는 지혜의 거처를 부인하는 바다(욥28:14), 왕을 찾는 숲의 나무들( 9:8)이었습니다.
아마르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말씀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6일간의 창조사에서 10번 나타납니다(창1:6, 창1:9, 창1:11, 창1:14, 창1:20, 창1:24, 창1:26, 창1:28, 창1:29). 여기서 말씀은 통상적인 대화의 매체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표현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신적 명령의 말씀, 곧 '창조적 말씀의 전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시 33:9에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굳게 섰도다'(롬4:17)라는 말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엿새간의 창조사에서 10번이나 나타난 말씀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공허하지 않습니다(신32:47 사55:11).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 분의 능력입니다(power). 말씀은 곧 행위입니다(Action). 따라서 창조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으로 인간들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아울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전혀 어떠한 재료나 매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명령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규정할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직접적인 방식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성경을 만드심으로서 자신의 권위를 위임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성경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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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섭리하심(창1:2)
tp,j,r"m] !yhila> j"Wrw] !/ht] ynEP] Al[' &v,jow] Whbow: Whto ht;y]h; $r<a;%h;w]
.!yIM;h' ynEP] Al[' 베하아레쯔 하이타 토후 바보후 베호세크 알 페네 테홈
베루아흐 엘로힘 메라헤페트 알 페네 하마임
창 1:1은 하나님의 전체 우주 창조의 최초 행위를 언급하고, 창 1:2 이하는 하나님의 우주의 다른 부분들을 창조하는 명령입니다.
우리 인간이 속한 가장 큰 구조가 우주입니다. 우주의 크기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이 우주는 수백 만개의 은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하는 약 1000억개 정도의 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은하계의 크기는 지름 10만 광년(300,000×60초×60분×24시간×365×100,000)입니다. 중심 두께 3,000 광년이며 옆에서 본 모습은 납작한 렌즈 모양이며 위에서 보면 바람개비 모양의 나선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은하에는 대략 2천 억 개 정도의 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하나인 태양은 은하 중심으로부터 약 3만 광년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창조되어 하나님의 주권의 지배 하에 있습니다. 태초에 창조된 땅은 “그리고 그 땅이 혼돈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혼돈이라는 것은 “황량하다”라는 뜻도 있고 “형체가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지구는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 빈 상태입니다.
그리고 지구는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어두움은 흑암으로서 창1:2에서 세상을 덮고 있던 태초의 '흑암'입니다. 이 흑암은 원시 지구를 뒤덮고 있던 최초의 흑암입니다. 이 흑암은 빛의 상대물로서 물리적 의미의 어두움이며, 악이 아닌 하나님의 순수한 창조입니다.
이 때 성령(엘로힘 루아흐)께서 수면에 운행하셨습니다. “운행하시니라”의 뜻은 “비상하다, 배회하다”라는 뜻입니다. 신 32:11에서는 한 마리의 어미새(독수리)가 새끼들이 완전히 날 수 있을 때까지 새끼들 위를 맴돌며, 지키고 보호하고 양육(훈련)하는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창 1:2에서도 라하프는 신명기 기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피엘분사가 사용되어 인격체에 의한 강력하고도 반복적인 행동을 나타내는데, 이는 성령이 창조 활동을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는 하나님께서 운행하심으로 공전을 했으며 스스로 자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는 시속1600㎞로 자전합니다. 지구는 시속11만㎞로 태양을 공전합니다.지구는 시속11만㎞로 가로지르는 태양계속에서 움직입니다. 지구는 시속77만㎞로 움직이는 은하계 공전궤도 안에서 움직입니다. 지구는 시속 216만㎞로 공간을 통과합니다. 24시간마다 우리는 9000만㎞를 여행합니다. 매년 우리는 336억㎞의 공간을 여행합니다.
하나님/엘로힘 (0) | 2012.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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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神論 우주론적 논증(창1:1)
그 땅을 그리고(을)그 하늘을 를 하나님이 그가 만드셨다 태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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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은 특별계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존재는 합리적으로 어느 정도 증명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가지고는 하나님의 구체적 속성에 대해서 증명할 수는 없지만 合理的 有神論證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보여줄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기독교를 변증하고 전도하는데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1.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은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관념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인간이 신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신 관념을 갖게끔 하는 절대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Anselm, Descartes, Clarke).
2.우주론적 증명(Cosmological Argument)은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는 인과론적 접근 방법입니다. 만믈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들을 존재케 한 第一原因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다는 논증입니다(Locke, Leibnitz).
3.목적론적 증명(Teleological Argument)은 자연 만물이 질서를 유지하되 혼돈에 이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 질서를 유지하는 어떠한 이성적 존재가 필연적으로 있다는 논증입니다(Teleophilus, Clement).
4.도덕론적 증명(Moral Argument)은 이 사회에는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도덕적 판단이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양심도 악을 미워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을 지향하는 도덕적 성향은 곧 이 사회를 도덕적으로 인도하려는 도덕적 주권자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입니다(Kant).
5.종속론적 증명(Ethnological Argument)은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지상의 모든 종족이 보편적인 신 관념과 종교를 가졌다는 것은 절대자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6.성경적 증명(Biblical Argument)은 앞에서와 같은 合理的 有神 論證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유한한 인간의 증명시도로서 필연적으로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론적인 유추에 의해 증명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창1:1). 따라서 믿는 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완전한 증명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그릇된 것에서 바른 것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를 교훈하시고 바른길을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엘로힘 (0) | 2012.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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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케 하시는 하나님 (0) | 2012.01.13 |
하나님의 섭리하심 (0) | 2012.01.11 |
유신론 존재론적 논증 (0) | 2012.01.06 |
개신교의 신앙규칙 (0) | 2012.01.05 |
有神論 존재론적 논증(창1:1)
그 땅을 그리고(을)그 하늘을 를 하나님이 그가 만드셨다 태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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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은 세상의 창조자, 보존자, 그리고 통치자이신 우주밖에 계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주장하는 교리입니다. 이 논증들은 존재론적 논증, 우주론적 논증, 목적론적 논증, 도덕적 논증입니다. 존재론적 논증은 형이상학적인 선험적(경험에 앞서서 認識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논증입니다. 하나님의 실제적인 객관적 존재는 이 존재의 관념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목적입니다. 존재론적 논증은 후험적이 아닌 논증입니다.
안셀무스(켄터베리 대주교 Anselmus 1033-1109)는 “사물속에 존재하는 것은 단지 정신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크다. 우리는 무한히 완전한 존재에 관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 존재는 무한한 완전성 속에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만일 실제 존재가 완전하고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안셀무스의 논증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부정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最高眞理요, 最高存在요, 最高善으로서 다른 모든 진리와 선은 그 표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론은 존재의 필연성은 절대 완전성의 관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관념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현존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Descartes, R.1596-1650)의 논증은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 관념은 우리로부터 淵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주변의 다른 것으로부터 연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신의 현존은 필연적이다.”라고 했습니다.
새뮤얼 클라크(Samuel Klarke 의 논증은 1705년에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에 관한 증명“에서 세상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영원한 것은 아니다. 공간과 시간의 비존재에 관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공간과 시간은 실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우연적인 것들의 영원하고 필연적인 실체(즉 신)가 있음에 틀림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쿠쟁은 “심리학 입문”에서 무한자의 관념은 유한자의 관념속에서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유한자와 불완전자의 관념이 무한자의 관념에 선행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선행하지 않는다. 의식이 정신에 유한자와 불완전자의 관념을 제공할 때 이성이 무한자의 완전자의 관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무한자와 완전자는 바로 신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유한 불완전한 존재로서 무한,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유한 불완전의 존재는 또한 무한 완전에 포함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한하고 완전한 자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엘로힘 (0) | 2012.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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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신앙규칙 (0) | 2012.01.05 |
개신교의 신앙규칙(창1:1)
그 땅을 그리고(을)그 하늘을 를 하나님이 그가 만드셨다 태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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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엘로힘이 그 하늘 그리고 그 땅을 만드셨다)
모든 改革敎人(Reformed Churches)들은 “신구약 성경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게 무오한 규칙”이라고 가르치는데 동의합니다. 개혁교회의 원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인식하여 성경의 절대권위에 순복하고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절대규범으로 삼고,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령의 내적 조명을 원리로 삼고,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한 성경계시에 의존하는 신앙]입니다.
슈말칼텐조항을 보면 루터교회는 “교부들의 말이나 행동에서 신앙의 조항들을 끌어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다.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의 조항들을 확립시키며,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천사라도 확립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는 성경안에서 구원하는 신앙과 하나님에게 열납 될 만한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에 대한 가장 완전한 해설을 가지고 있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을 따라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성경을 통해 선언한 하나님 자신 이외에 다른 재판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갈리아신조는 “성경은 지고의 모든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우리는 어떠한 인간 혹을 심지어 천사들에 의해서도 그의 말씀에서 어떤 것도 가감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전혀 바꾸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주장한다”라고 말합니다.
영국교회의 39조에 보면 “성경은 구원에 필수적인 모든 사실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그 안에서 읽혀지지 않거나 그것에 의해 입증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신앙의 항목으로 믿도록 또는 구원에 필수적이거나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요청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은 신구약 성경의 모든 책은 하나님의 감동을 통해 기록된 것으로 삶의 규범이 된다.···성경은 첨가시킬 수 없다. 성경은 모두 명료하다···그래서 누구나 성경을 사용하여 구원을 이룬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엘로힘 (0) | 2012.0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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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케 하시는 하나님 (0) | 2012.01.13 |
하나님의 섭리하심 (0) | 2012.01.11 |
유신론 우주론적 논증 (0) | 2012.01.10 |
유신론 존재론적 논증 (0) | 2012.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