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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출애굽기23:4,5)
4절과 5절을 보면 우리의 생각에 잘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법정 투쟁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원수라 하는데 그의 소유물인 길잃은 나귀나 소를 보았을 때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그 소나 나귀를 멀리 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들을 원수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신22:1-4을 보면
1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찌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본체 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찌니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원수의 짐승이 길 잃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다시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하며, 만일 그 짐승이 과중한 짐으로 인해 엎드러진 것을 보거든. 다시 그 짐승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엎드러진 것을 보거든 못 본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서 짐을 부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3을 보면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였지만 모세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부당하게 끌어낸 가르침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이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학자들이 잘못 끌어내서 굳어버린 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방법으로 원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롬12:20), 원수를 사랑하며(마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마5:44) 사랑하며 오래 참으라고(살전5:14)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특이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의뢰하며 믿는 우리들은 특이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즉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안에 가져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도 어떤 장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치권에 있는 목사와 장로들은 필연적으로 원수를 맺습니다. 결코 원수를 사랑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안식년(순종) (0) | 2011.0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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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수호(출애굽기23:2,3)
多數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訟事송사에도 적용하라 하셨습니다. 소송에 다수를 따라 적용할 경우 위헌을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2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즉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법개혁위원회가 2004년8월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연 미국식 배심제 모의재판에서 선발된 14명의 배심원이 재판에 앞서 선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배심제(陪審制)의 문제점은 '사회정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법을 토대로 한 판결에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이런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법적인 이론에 의한 공방보다는 인간적인 면(불쌍하게 보인다던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다던가…)을 이용하여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죄를 지어도 말 잘하는, 능력있는 변호사만 만나면 무죄판결을 받기가 쉬우니까, 범법행위를 하는 것을 그리 두려워하질 않게 되고, 결국 사회정의 실현이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배심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점들이 있기 때문에 배심제의 발생지인 영국에서 일찍이 폐지하였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이 제도를 잠시 도입했다가 곧바로 폐지하였다고 합니다.
흔히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수준에 똑같이 바른생활의 토대에서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수의 원리를 따른다면 다수결의 橫暴횡포라는 것이 있어서 바르게 집행할 수가 없습니다. 국회에서 횡포부리는 것을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다수의 횡포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거나 반대하면 國策事業도 어찌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항상 변합니다. context는 변하지만 text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교회안에서 반드시 다수결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차선책으로서 쓸 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소송도 해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로 가나안을 정탐했던 스파이들의 보고입니다. 12명중 10명이 바른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2명만 바른보고를 했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의견을 좇다가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보내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수결에 의해서 또는 감정에 의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에 의해서 처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감정에 치우치거나 다수결로 처리를 할 때에 많은 오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적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재판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0) | 2011.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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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과 연합하지 말라(출애굽기23:1)
하나님께서는 허망한 풍설을 전하지 말라 했습니다(1절). 허망(aw]v;/샤네/거짓)한 풍설([m've/세마/소식)은 헛된 소문입니다. 즉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유언비어(流言蜚語/rumor)는 공동체나 국가에나 상당한 영향을 주는 말입니다. 전혀 근거도 없는데 악성 루머를 퍼뜨려서 상대를 죽이려는 계책이기 때문에 계약백성으로서는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유언비어는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 심한 언론탄압이 있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또는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나 불안이 고조되었을 때 등 여러 가지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생기기 쉽습니다. 유언비어는 뜬소문입니다. 선동적인 악선전입니다. 진위(眞僞)가 분명하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동요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유언비어지만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심한 동요를 일으키기 쉽다는 것입니다. 유언비어는 사실보다 훨씬 큰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유언비어 때문에 우리나라가 IMF를 맞았습니다.
한보사건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유언비어에 휩싸여 웬만한 사람들이 한보에 모두 투자를 했습니다. 실제로는 껍데기뿐인데 권력의 중심이 한보에 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밑빠진 독에 물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주)한보가 현대그룹보다도 탄탄한 재벌 같았습니다. 삼성그룹보다도 더 탄탄해보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수긍하고, 경제부처가 지원하고, 은행이 지원했습니다. 유언비어는 과거 정치인들이 국민을 속이기 위하여 퍼뜨렸던 수법입니다. 금강산댐이라든지 북풍이라든지 세풍. 4대강부자론 등이 모두 유언비어입니다. 이 말에 국민들은 감쪽같이 속아서 성금을 걷고 휘말리는 등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웃을 해하려하거나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악인들과는 연합을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악인([v;r: /라샤)은 사악한 사람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연합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를 침해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난폭한 사람들입니다. 압제적이며, 탐욕스러운 사람들이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과 연합하면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이들을 위해서 우리의 손을 뻗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돕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사탄의 자식들과 연합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탄의 자식들과 연합해서 하나님의 백성들 즉 이웃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애굽에서 빠져나온 같은 민족으로서 이웃을 해하려는 자들과 연합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악인 많이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성직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 안에 있을 때 이들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0) | 2011.0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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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의무(출애굽기22:29-31)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추수한 것과 짜낸 즙을 (하나님께)드리기에 더디게 말라”하셨습니다(29절). “더디게” rj'a; 는 “지체하다”라는 뜻이며 “체재하다, 연기하다, 지체하다, 늦추다, 기다리다'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심령을 잘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항상 인간들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더디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우리의 노력으로 곡식을 생산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인 우리로서는 창조주께 먼저 영광을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주라”(29절)하셨습니다. 이것은 이교들처럼 인신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13:2,12을 보면 처음 난 것을 성별하라 하셨습니다. ‘2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12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초태생의 수컷은 항상 여호와께 헌신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이스라엘의 권리들 가운데서 반복되며 통합된 것이 있는데 여호와께서 처음 난 것들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계약관계의 특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전 백성들에게 영속적으로 보장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보이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우리가 드릴 때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헌신하게 하라’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오히려 더 유효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더디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나 양도 똑같은 예로 하라 하였습니다(30절). 칠일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팔일 만에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가축은 적어도 칠일이 지나야 제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최선의 것, 최고의 것, 최초의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앞의 휴지 한 장 줍는 것이 헌신입니다. 교회계단을 닦는 것 하나님께 대한 헌신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헌신하는 것 모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강단 앞에서 마이크잡고 찬양하는 것만 헌신이 아닙니다. 대형교회의 찬양대에만 찬양한다고 헌신이 아닙니다. 소형교회,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같이 드리는 것만 해도 엄청난 헌신입니다. 개척교회는 친척들도 싫어합니다. 그러다보니 목회자들은 엄청나게 힘이 빠집니다. 계약백성들은 처음열매를 성별하고,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며,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나님의 뜻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많은 대형교회들은 교인들이 차고 넘치고, 소형교회들은 그야말로 매일 눈물을 훔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못나서 그런다고 말도 안 되는 자책을 하면서.
진리 수호 (0) | 2011.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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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보호(출애굽기22:25-27)
어떤 사람이 자기의 백성들 중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었다면, 이자를 요구함으로서 그를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그가 자기의 웃옷을 전당잡히거든 그것을 해지기 전까지 그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그 옷이 그의 유일한 옷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방의 가난한 계급의 사람들은 커다란 천 조각으로 되어 있는 웃옷을 이용하여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잤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옷이 그의 몸을 덮는데 사용하기에 이불입니다(카일·델리취). 즉 옷을 주지 않으면 그날 저녁에 옷을 맡긴 사람은 덮을 것이 없이 춥게 자야 했습니다.
“가난한자” “아니”는 “가난한 poor, 비천한 humble, 낮은, 억압(압제) 받는 oppressed”들을 의미한다. 원래 “아니”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해에 의해서 많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난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산의 편중으로 인하여 가난은 항상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가난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전제주의나 왕정시대에는 재산이 왕족이나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독재주의나 공산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산이 독재자의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이론만 좋지, 실제로는 공정하게 분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산이 너무나 편중이 되어 있습니다. 재벌에게는 대대손손 재산이 상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대대손손 가난을 상속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임원은 봉급이 629만원이라고 보도가 되었습니다. 서민들의 연봉도 더 되는 돈입니다. 물론 내 돈 가지고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그 돈이 모두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도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그를 괴롭히는 자를 손을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그렇게 험한 꼴을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들이 주안에서 평강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평등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자들이 잘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고 압제하며 가난한 자에게 압박을 가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이십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학대받고 천대받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한자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범죄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악인과 연합하지 말라 (0) | 2011.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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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대한 의무 (0) | 2011.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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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대한 태도 (0) | 2011.05.06 |
예배의 대상 (0) | 2011.05.05 |
고아와 과부에 대한 태도(출애굽기22:22-24)
.@WN['t] al !/ty:w] hn:m;l]a' AlK;
너는 (아무)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괴롭히지)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에 대해서 배려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힘없고 가난한 약자를 보호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배려입니다(Thompson Bible).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학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은 이방인들과 더불어 과부와 고아도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들은 약하고 보호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들에게 적극적인 조항을 세워주었습니다(출23:11, 레19:9,10, 신14:29,16:11,14, 24:19-2126:12,13). 이로 인해서 대체적으로 이 율법은 잘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틈바구니에서도 과부들과 고아들은 심한 압박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마가복음12:40을 보면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즉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적극적으로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이러한 타락을 엄하게 경고하였지만, 이들은 과부를 압제하였습니다. 고아를 해롭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형벌의 내용을 과부나 고아들이 부르짖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신원하심을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연약한 과부나 고아의 기도를 적극 수용하시겠다는 의도하심은 이들의 학대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하심의 주체를 돕는 방법으로 연약한 자체를 사용하셨습니다. 과부나 고아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신 방법이십니다. 어떠한 형벌을 적용하시는가?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또한 “하나님의 노가 맹렬하시다”하셨습니다. 만일에 압제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기도하였다면 반드시 죽이리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죽게 하든지 아니면 우연히 죽게 하든지 죽음으로 형벌해서 그의 아내를 과부로 만들어 깨닫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하심은 연약한 자들을 적극 도우라는 말씀이면서 보호의 의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들에게 잘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한 자에게 잘해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우리 한국의 사회는 어떻습니까? 약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가진 자들의 횡포가 굉장히 심합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묵과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 (0) | 2011.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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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보호 (0) | 2011.05.09 |
이방인에 대한 태도 (0) | 2011.05.06 |
예배의 대상 (0) | 2011.05.05 |
질서 파괴 죄 (0) | 2011.05.03 |
이방인에 대한 태도(출애굽기22:21)
한 소녀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운 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아사 직전, 이웃에게 발견돼 겨우 목숨을 건진 적도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모녀에게 설상가상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왔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 때 한 구호단체가 그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모녀는 그들에게서 받은 식량으로 굶주림을 해결했습니다. 그 단체는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UNICEF)으로서 지구촌의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구호 빵을 먹으며 위기를 극복했고 그 구호단체를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생명을 부지한 소녀는 장성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됐습니다. 이 소녀가 ‘오드리 헵번’입니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분들을 위해 이제 내가 봉사할 차례다”라고 말하던 그는 죽은 후에도 “홍보대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구호를 돕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도 이방인 애굽에서 나그네였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일을 기억해서 절대로 이방인의 체류자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전에 노예였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압제하다” hn::y:/야나는 “압박(제)하다, 학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가서 나그네뿐만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함부로 대했습니다, 심하게 억압하고 부당하게 대우하였습니다. “학대하다” $j'l;/라하쯔는 “압착하다, 압박하다”라는 동사로서 “심하게 죄다, 압착하다, 압박하다, 밀다(밀어 넣다)”라는 뜻입니다. 이전에 애굽에서 그들은 심하게 압제받고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방 사람들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평등한 원칙을 고수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미워하고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귀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선민 이스라엘에 대해서 각별한 은혜를 쏟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안에 있는 이방인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는 가공스러울 만큼 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많은 nuance가 있습니다. 권고의 말씀도 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유대인들이 이웃사랑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오늘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인해서 굉장히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수할 때 즉 들을 때 심층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면에는 분명히 어떠한 액션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은혜를 받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그에 상당하는 형벌이나 대우를 받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예배의 대상(출애굽기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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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 외에 다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외에 어떤 신들에게도 희생 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희생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멸할지니라”의 “하람”은 “금지(파문.저주)하다”라는 의미로서 “어떤 물체를 사람이 사용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제외시켜 그것을 하나님께 결정적으로 넘겨주는 것”임의 뜻이 있습니다. “하람”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다”를 의미하는 아랍어 어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회교 여자들 전용의 거처를 의미하는 ‘하렘’(harem)이란 말이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것을 하나님께 넘긴다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데 바치는 것이나 혹은 그것을 철저한 파괴를 위한 금지 하에 두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어떤 대상을 바친다는 개념은 레위기 27:28에 나옵니다.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사람이든, 짐승이든, 제물이든 간에, 여호와께 바쳐진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가장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았으며 따라서 팔거나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여 구속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람”은 ‘철저한 파멸을 위한 금지하다’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거나 거부하는 것,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것의 강제적인 봉납을 의미합니다.
지금 많은 종교들에서 자신의 신들을 섬기고 있지만, 이런 자들은 죽어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에 결국 여호와 앞에 바쳐진 것이었습니다. 죽음에 의해서 살아생전에 바치지 못했던 여호와에게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바쳐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이미 살아서부터 하나님께 드려졌지만 이들은 아닙니다. 죽어서 지옥에밖에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것은 불경한 것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피조물이 창조주에 대한 불경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하나님을 잊으려 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절대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인데 그것들을 섬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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