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새벽강해'에 해당되는 글 262건
- 2011.06.07
- 2011.06.05
- 2011.06.01
- 2011.05.31
- 2011.05.30
- 2011.05.27
- 2011.05.23
- 2011.05.20
하나님께 보이라(출애굽기23:17)
하나님의 언약백성 된 남자들은 일년 삼차 매년마다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이라 하셨습니다. 14절과 신명기16:16에 의하면 세 축제에서 반드시 여호와께 보여야 했습니다. 즉 성소에 순례하라는 명령은 인구조사에 포함된 남자들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주님 앞에 일년에 세 절기에 세 번 나타나도록 되었는데 “주께서 선택하신 장소”에서 보여야 했습니다. 또한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대로 힘껏 드리라 하셨습니다.
민수기1:3절을 보면 백성들을 헤아릴 때 20세 이상으로 헤아렸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의 계수법이었습니다. 전쟁에 나갈만한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여자와 소년들이 포함되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습니다(삼상1:3). 이로 인해서 매년 삼차씩 이스라엘에서는 대이동을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을 매년 삼차씩 모이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지상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각 교회마다 여러 특색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근본기능이 있습니다. 전도가 그 기능입니다. 건덕 즉 신자들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심을 가져야 하는 기능입니다. 교회의 기능 중에 중요한 기능이 있는데 예배입니다. 건덕이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또한 그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라면, 예배는 주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규칙적인 일정에 따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이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할 것을 명하였고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매주일 첫날에 연보하라고 고린도교인들에게 명한 바울의 지시(고전16:2)는 그들이 그날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규칙적으로 모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의 서신을 읽는 독자들에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히10:25)고 권면하였습니다. 비록 예배가 하나님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한 예배드리는 자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의도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는 기도와 찬미와 감사에 대해 경고한 바울의 말을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러한 행동들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고전14:15-17).이 시점에서 우리는 교회의 다양한 기능들이 자지고 있는 특별한 위치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 시대에 교회는 예배와 교육을 위해 함께 모였고 그 후에는 나가서 전도하였다. 예배를 통해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고, 가르침과 교제를 통해서는 자신들과 동료 신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으며, 전도를 통해서는 불신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 (0) | 2011.06.14 |
---|---|
성물의 취급 (0) | 2011.06.13 |
수장절(초막절/추수감사절)을 지키라 (0) | 2011.06.05 |
맥추절을 지키라 (0) | 2011.06.01 |
유월절을 지키라 (0) | 2011.05.31 |
수장절(초막절/추수감사절)을 지키라(출애굽기23:16)
이스라엘은 일 년 삼차 여호와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했고, 맥추절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수장절을 지켜야 했습니다. 수장절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수고하여서 밭에 뿌린 것을 연말에 거두어 저장함이기 때문입니다. 수장절의 다른 이름은 “초막절,Feast of Booths”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레23:29)입니다. 칠월절기(왕상8:2)입니다. 또한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의 특징은 1년의 마지막에 지켰습니다(23:16). 히브리 월력으로 7월 15일에서 7일 동안 지켜졌습니다(레23:24). 농작물의 소출을 기념하는 절기였습니다(레23:39). 광야생활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레23:43). 순례 절기입니다(신16:16). 즐거운 절기였습니다(레 23:40). 또한 히브리인의 삼대 절기 중 하나였습니다(신16:16).
초막절(hK;su/çukkâh/숙카)은 ‘임시 오두막’입니다. “숙카”의 이름 속에는 ‘초막에서 지키는 절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초막절이 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초막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초막절을 지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내용이기도 합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놓아두고 불편하고 초라한 초막에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초막에서 지낸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숙카’(초막절)는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수확과 포도수확을 거둔 후에 지켰습니다. 절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나그네 생활을 회상하는 것이기에 번영의 한 가운데서라도 과거의 불행한 날을 잊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여 주심을 기억하는 것, 땅의 소산물에 대한 기쁨을 그 따뜻한 감사의 감정으로 받는다는 것,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였으나 나그네 생활은 계속한다는 것 등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막절이 지닌 의미는 제일 마지막 절기인 만큼 인간의 삶과 관련해서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신뢰가 강조됩니다. 광야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음식도 없었고 마실 물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초막에 비유합니다(벧후1:14). 장막이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그네 인생의 삶을 비유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사는 인생살이도 결국은 나그네의 삶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초막을 지어놓고 살지만 떠날 때가 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임시적으로 사용하던 처소입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향해가고 있는 목적지는 따로 있습니다. 마지막 처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유월절은 추수의 시작입니다. 초막절은 추수의 끝입니다. 초막절이 끝나면 더 이상 추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추수입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얼마가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추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맥추절을 지키라(출애굽기23:16)
이스라엘은 일년 삼차 여호와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무교병의 절기를 지켜야 했고, 맥추절의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맥추절의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수고하여서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들에서 맨 처음 추수한 것을 익은 곡식의 첫 알곡이 아니라 새 곡식에서 나온 밀가루로 만든 첫 덩어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23;17). “칠칠절”이라고 불렀는데 그 까닭은 ‘레23;15,16,신16:9’에 따라 무교병 절기 이후 7주간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맥추절”이라고 부른 이유는 첫 열매로 드린 떡덩이가 밀가루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카일·델리취).
첫 열매 절기는 rWKBi/bikkûwr/‘빅쿠르’는 처음 태어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처음 태어난 것은 수컷 혹은 남자아이를 말합니다. 첫 번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근거는 출애굽 사건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애굽의 왕 바로는 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출13:14~16). 하나님이 내리신 열 번째 재앙인 애굽에서 처음 낳은 것들 중,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이는 재앙을 당하고 나서야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소생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재앙이 있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나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갑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출13:2).이후부터 땅에서 나는 모든 수확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출23:19;34:26; 신18:3~5; 26:1~2,10). 농산물뿐만 아니라 동물과 사람들까지도 처음 난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출13:12~13; 34:19~20;민3:13;18:15~16),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2:2,3절을 보면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세대)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는 과감하게 단절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친분을 계속하고 있으면 우리가 세상의 풍속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점점 거룩하여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화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첫 태생이기 때문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db
유월절을 지키라(출애굽기23:15)
rmov]Ti tJ/XM'h' gj' Ata,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무교절 즉 유월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 절기는 내가 네게 명한대로입니다. 12장과 13장에서 이미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덧붙여진 말씀은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복에 보답하기 위한 예물입니다(신16:6,7). 애굽에서 유월절을 지킨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합니다.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볼 때 출애굽은 결국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계약의 실현이었습니다. 유월절은 맨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오기 하루 전날인 1월14일 저녁에 지켰습니다. 신명기16:2은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그치지 말고 매년 그 날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유월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유월절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유월절(The Lord's Passover)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피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 양은 먼 훗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유월절 양이 죽임을 당하여 피를 흘리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파괴하는 주의 천사가 그 집을 건너간다는 것은 속량의 교리 (Substitutionary Theory)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믿으면 죄로부터 해방되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애굽의 유월절 양, 첫 번째 유월절 절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 하는 것은 유월절 양을 먹을 때에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인 무교병과 쓴나물과 함께 먹어야 합니다.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당했던 쓰라린 속박과 고난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16:3은 고난의 떡으로 묘사했습니다. 둘째로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식사가 끝나자마자 이스라엘은 애굽을 급히 탈출해야 했습니다. 구원에는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 구원의 때입니다. 셋째로 누룩은 죄를 상징하였습니다.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기 때문에 누룩을 넣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후에 이것은 성만찬예식으로 변했습니다. 정기적인 성만찬을 나누면서 우리는 유월절어린양이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절기를 지키라(출애굽기23:14)
.hn:V;B' yli gjoT; !ylig:r] vlv;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하가그)를 지킬지니라”
절기( gg'j;/하가그)는 “(순례)절기를 지키다, 춤추다, 흔들거리다”입니다. “하가그”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세 개의 순례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었습니다(출23:14, 레23:39, 41, 신16:15, 슥14:16,18,19).
출23:14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레 23: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레23:41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신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
슥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슥14:18-19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절기“하가그”는 그 말이 의미하는 대로 춤추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것입니다. 일 년 중 세 가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여호와 앞에서 나타나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聖會로 세 번 모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세 번 여호와의 성소에 순례하라는 명령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루살렘성전에 절기를 지키러 모이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는 것은 권리이자 특권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절기인만큼 하나님과의 친속을 다지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는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지킨다”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다른 무엇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이치가 옳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면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욱 결속을 다져야 했습니다. 신정국가이며 언약백성의 국가인 만큼 하나님과 결속을 다지지 않으면 곧 파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는 세상과의 결속보다 하나님과의 결속을 더 다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하나님과의 일입니다. 절기를 지킨다고 해서 모이는 것에만 신경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뜻대로 해야 합니다. 절기를 지키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삼가 지켜라(출애굽기23:12-13)
12절을 보면 6일간은 힘써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는 혼자만 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쉬라는 것입니다. 소를 쉬게 해야 했습니다. 나귀를 쉬게 해야 했습니다. 종들을 쉬게 해야 했습니다. 계집종의 자식까지 쉬게 해야 했습니다. 나그네도 숨을 돌리게 해야 했습니다. 이상으로 말한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쉬게 함으로서 평온한 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약백성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비심이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고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종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충분하게 휴식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 이러한 것을 우리들에게 적용할 경우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고용주들이나 상류 인생들은 자신들보다 하류 계급 사람들의 노동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자신들도 그러한 과정을 겪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로로 지친 종업원들의 노고를 모릅니다. 그래서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매우 분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과로로 죽거나 잠을 못자거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생산성향상만 신경을 씁니다.
아들이 둘 있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던 해 할머니가 죽게 되자 아들들이 슬피 울며 장례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3일장이 끝나고 관을 지고 방문을 나갈 때 둘째 아들의 실수로 관이 그만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관속에서 할머니가 관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졸도한 것을 의사의 오진으로 죽음으로 판명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후 10년간 더 사시면서 손자들과 건강하게 사시다가 이젠 정말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아들들 그리고 손자들의 울음 속에서 3일장이 끝나고 관이 방문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이 들렸습니다. 야! 벽 조심해! 요즘 노사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실로 노사관계가 위의 노부부 같은 그런 노사관계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른 말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경고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다른 신들은 이름은 부르지도 말고 들리게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얼마나 다른 신들 즉 다른 종교들을 존경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더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하는 것들을 기독교에서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종교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신들의 이름을 들리게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키라 하셨습니다.
안식년(순종)(출애굽기23:10-11)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6년 동안은 땅을 파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토지의 사용은 6년이었습니다(10절). 제7년에는 토지에 아무것도 심지 않아야 했습니다. 묵혀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 자라난 것들은 가난한 자로 먹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했습니다. 포도원과 감람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년의 법을 제정하신 것은 육체적인 노동을 멈추고 한 해를 쉬는 동안 종교적이고 영적인 일에 더욱 몰두 하도륵 하기 위해서입니다(신31:10-13). 또한 가난한 이웃이나 심지어 들짐승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영농법과 인조 비료가 개발되지 않았던 때이기에 땅의 휴식을 통해 토지의 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법은 레위기 25:1-7에서 정식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안식(창2)⇨안식일(출20)⇨안식년(레25)⇨희년(레25)⇨구원(신5)⇨안식기업(신12)⇨기업(시95)⇨이레(단9)⇨구속(눅4)⇨영원한안식(히4)
안식의 강조점은 안식일이 아니라 “쉼”입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7일째 쉬셨습니다. 안식에 동참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6일간 일하시고 7일째 안식한 패턴 속에 우리를 몸담아 넣어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안식일은 농사일, 노동, 상행위 등을 그쳐야 합니다. 노동에서 해방되어 쉴 것을 의미합니다. 일주간 속에서 하루를 성결하게 보내야 하는 적극적인 휴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식년은 땅의 안식년입니다(레25:1-8). 명시된 요구는 땅의 휴식입니다. 땅은 6년 경작하고 7년째는 쉬게 해야 했습니다. 인간을 쉬게 할뿐만 아니라 땅을 쉬게 하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땅은 인간의 손에 있을지라도 무제한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그 땅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라 하면 통상 우리는 주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시간입니다. 물론 매일매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안식일(주일)에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고 싶으시다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감사하고 다만 그 앞에 나가야 합니다.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인간의 신체구조상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쉬면서 일해야 합니다. 인간이 쉬어야 짐승도 쉽니다. 인간이 쉬어야 땅도 휴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휴식해야 모든 것들이 휴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섬겨야 다른 것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안식에 대한 의미는 안식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휴식입니다. 이것을 바로하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에 혼돈이 옵니다. 직업의 다양화로 인해서 안식일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유흥과 여가로 인해서 안식일(주일)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일을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바른 재판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23:6-9)
재판관이란 소송이 들어온 양자를 철저하게 가려서 당사자 간의 분쟁에 대하여 구속력이 있는 裁斷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재판이 잘못되었을 시에는 억울한 사람이 있게 되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재판관에게 말하기를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함부로 하거나 공평치 않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의 대의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곡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성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자들)은 그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공평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7절을 보면 재판관은 거짓 일을 멀리해야 했습니다. 거짓(세케르)일(다바르)을 멀리하며(라하크) 즉 거짓된 일을 옮기라(제거하라)하셨습니다. 재판관이 바른 재판을 하지 않고 거짓된 재판을 할 경우에는 옳은 풍속과 바른 국가관이나 공동체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거짓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재판관은 무죄한 자(결백한, 무죄한, 깨끗한, 자유로운, 면제된)와 의로운 자(공정한, 올바른)를 죽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은 이것에 실패했습니다. 의로운 자들을 죽였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살해했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망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의로운 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서 그 뜻을 폈더라면 우리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 영향은 지금 우리가 지금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라샤)을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모두 갚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나폴레옹이라든지 징키스칸, 알렉산더 등은 도둑들입니다.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도둑이요 강도요, 폭도들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들을 짓밟았던 사람들입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과 뇌물을 받지 말 것을 재판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 뇌물만 받지 않는다 해도 상당히 괜찮은 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뇌물 때문에 이 나라가 얼룩지고 있습니다. 뇌물은 밝은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는 것이 뇌물입니다. 따라서 바른 재판을 뇌물을 받았을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언약백성은 일반백성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선(토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