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새벽강해'에 해당되는 글 262건
- 2011.06.26
- 2011.06.22
- 2011.06.19
- 2011.06.18
- 2011.06.16
- 2011.06.15
- 2011.06.14
- 2011.06.13
말씀의 토대위에(출애굽기24:3-8)
모세는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여호와의(hw:hy])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한소리로 말하기를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겠다’하였습니다. 다음날에 모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 주변이나 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이스라엘 12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연합하기 위한 의식이며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복주시기 위해 강림하시는 장소이기에 여호와의 현존을 뜻했습니다.
모세는 또한 청년들을 진중에 보내어 번제와 화목제를 소로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들의 피를 취하였습니다. 반은 여러 양푼에 담았습니다. 반은 단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는 나머지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언약의 피라 하였습니다.
피를 반으로 나눈 것은 계약을 맺게 될 두 편을 가리켰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베리트’에 의해 살아있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피는 계약의 피로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하나로 되는 거룩하고 신비한 활력이 되었습니다. 이 피를 백성에게 뿌리는 것은 생명의 실제적인 갱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져 그 안에서 하나님 은총의 능력으로 가득 채워지고 제사장의 나라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되는 것을 뜻합니다(카일·델리취).
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1:7-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피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풍성함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제사장이 되는 것이요, 그의 복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되게 하십니다.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시내산으로 부르신 하나님 (0) | 2011.07.02 |
---|---|
하나님 앞에서 (0) | 2011.07.01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0) | 2011.06.22 |
이스라엘의 국경 (0) | 2011.06.19 |
내가 하겠다 (0) | 2011.06.18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출애굽기24:1,2)
하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멀리서 경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백성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 70인들은 모세를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유사로서 질서를 유지하는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총수는 약 250만-300만 명이기 때문에 모세 혼자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70명을 뽑아서 모세를 돕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챙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오라고 해야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매우 경건해야 했습니다. “멀리서 경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들의 중재자로 세웠습니다. 모세는 앞으로 나아오도록 부르시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모세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모세 혼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으로서 홀로 지성소에 들어가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맺어진 은혜의 계약을 상징합니다.
히브리서 3:1-6절을 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높으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3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설 자는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아무도 그 앞에 서지 못합니다. 예일대학교 교수 야로 슬라프 펠리칸이라는 분이 쓴 것으로『예수의 역사 2000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역사는 예수에 대한 해석의 역사라고 합니다.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예수를 어떻게 대하느냐, 혹은 예수를 받아들인 자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였느냐에 의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번영, 정치가 달려 있고, 우리가 지향하는 안정과 행복도 거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예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결정됨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를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따라서 우리의 앞날이 결정됨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판단은 뒤로하고 오직 그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경(출애굽기23:31-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경계를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이 경계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경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땅의 경계를 다시 모세에게 말함으로서 가나안의 땅이 이스라엘의 땅임을 재차 확인시키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가나안사람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과 반드시 같이 머물면 이스라엘에게 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국제화를 획책하면 하나님께 범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그(그나라) 신을 섬기면 그 자체가 올무가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그들을 쫓아낼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손에 붙이신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보고 그들을 즉시 쫓아내야 했습니다.
하바드 대학의 신학교 교수인 하비콕스(Harvey Cox)가 1965년에 『세속도시 』(The Secular City)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하비콕스는 세속화가 복음의 적수가 아니라 열매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속화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속속의 인간과 그의 삶입니다. 그는 과학 기술도시를 예찬하였습니다. 세속도시의 이상이자 세속화 종교의 보유자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세속도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결코 하나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속화신학자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만이 기독교인들의 주요한 관심사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전통적 교회가 사회적, 정치적 악을 제거하지 못한 것을 합리화하려는 여러 가지 소행들을 통탄합니다. 그리하여 사회에 깊이 교회가 관여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세속화 신학자들은 본회퍼의 종교성 없는 기독교를 자기들에게 편리하게 해석하여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논하기 시작하여, “어떻게 은혜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것인가?” 하는 문제 대신 “어떻게 은혜로운 이웃을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학에서 현대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 못한 신, 즉 초월자요 초자연적인 신을 제외시켜, 기독교가 하나님 없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인간일 따름이요, 인간실존의 한 모범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세속화 신학자들은 교회와 세상의 구별이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정신에 따라, WCC 제2차 회의(1954)의 주제는 “교회와 세상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로 고쳐졌었으며, WCC뉴델리회의(1961)는 헌장 중,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절에서 “우리”를 빼버렸습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듯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정치와 혁명에 활발히 참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정치현장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속화신학은 초자연주의를 가능한 배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성이나 그의 속죄사역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거부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 가까이 살았던 모범적인 한 인간이었을 뿐이고, 속죄는 이웃을 위한 사랑에서 나온 철저한 자기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개념과 그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였습니다. 세속화 신학은 현대의 시대정신과 그 흐름을 잘 파악하여 세속화된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기독교의 메시지를 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세속화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말씀의 토대위에 (0) | 2011.06.26 |
---|---|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0) | 2011.06.22 |
내가 하겠다 (0) | 2011.06.18 |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0) | 2011.06.16 |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 (0) | 2011.06.15 |
내가 하겠다(출애굽기23:27-30)
이스라엘의 최대의 관건은 가나안의 정복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위엄을 이스라엘의 앞서가서 모든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엄위하심으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공포에 떨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려운 소문들이 이스라엘보다 앞서서 전파되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채웠습니다(15:14, 신2:25, 수2;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혼란에 빠뜨려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극도의 혼란에 빠져서 이스라엘을 상대하는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위해서 원수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하십니다. 감히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도 우리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왕벌을 이스라엘의 앞에 보내시겠다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위엄 외에 왕벌을 보내셔서 가나안의 세 족속을 처리하겠다 하셨습니다. 강한 히위족속, 가나안족속, 헷족속을 왕벌로 쫓아내겠다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위엄이 그들을 혼란과 무력한 절망에 빠뜨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설 수가 없었고, 그들로부터 등을 돌려 달아났다면, 공포를 뒤이어 경악의 쏘는 것이 완전히 그들을 몰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땅이 경작할 사람이 없는 광야가 되어버리고 들짐승이 번성하여 이스라엘을 해할까 염려하여 "일 년 안에"즉시 몰아내지 아니하셨습니다. 맹수들이 그 땅을 지배하면서 사람과 짐승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을 염려하신 것인데, 실제로 열 족속을 휩쓴 후의 경우가 그러했었습니다(왕하17:25,2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힘을 길러 그 땅을 차지하게 될 때까지, 즉 그 땅 전체를 점령할 때까지 점차적으로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이 땅위에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시기 위하여 항상 이스라엘을 눈동자처럼 보호하셨습니다. 그 족속으로부터 여인의 후손이 나오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안녕을 언제나 책임을 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앞서서 일을 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일이라면 자연 초자연을 동원해서라도 언제나 아낌없이 지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대한 사랑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라는 언약관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열심입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0) | 2011.06.22 |
---|---|
이스라엘의 국경 (0) | 2011.06.19 |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0) | 2011.06.16 |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 (0) | 2011.06.15 |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 (0) | 2011.06.14 |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출애굽기23:24-26)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아야 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섬기지 말고 숭배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소위(행위)를 본받지않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들을 모두 파괴해야 했습니다. 주상들을 모두 제해야 되었습니다. 주상을 부수고 부수어야 했습니다. 우상들을 만들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예배하던 기둥들을 철저히 파괴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섬기다“아바드”는 “봉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그 땅에 풍부한 양식을 주시고 건강케 하시고 곡식을 결실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장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식과 물을 언급하였는데 그것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필요불가결한 요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만 성도들을 인도하지 않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는 반드시 제공하십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만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그들은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병을 제한다는 말씀은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병은 예나지금이나 인간에게 있어서 무서운 존재입니다. 예나지금이나 인간의 생명을 심히 위협하고 있는 것이 병입니다. 병으로 죽는 사람이 큰 재난으로 죽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 병으로부터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인간으로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낙태나 불임이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리에 대한 보장입니다. 백성들이 끊임없이 보장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려서 죽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함으로서 그들의 복리를 보장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에 있을 것이 모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숭배하고 하나님만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여야 하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따로 있습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필수입니다. 창조주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피조된 것들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영원히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경 (0) | 2011.06.19 |
---|---|
내가 하겠다 (0) | 2011.06.18 |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 (0) | 2011.06.15 |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 (0) | 2011.06.14 |
성물의 취급 (0) | 2011.06.13 |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출애굽기23:20-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사자를 앞서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길에서 너를 보호(rm'v)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들로 내가 예비한 곳(가나안)에 이르게(a/B)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목소리(l/q)를 청종하라([m'v) 하셨습니다. 그를 노엽게(rr'm;)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계속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그에게 있다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면 하면 내가 네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되겠다 하셨습니다. 그 천사가 너희들의 앞서 가서 너희를 아모리 사람, 헷 사람, 브리스사람, 가나안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에게 인도하고 그들을 끊겠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0절에서 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자를 내가 앞서 보내리라 하셨습니다. “사자”라면 분명히 천사인데 보낼 사자가 천사 같지 않습니다.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않을 것은”하고 말하심과 “나의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라”한 것입니다. 간혹 우리는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언급이 인간과는 상관없이 여호와를 언급할 때는, “여호와”라는 말이 사용됩니다. 인간이 그를 목격하는 곳에서는 “여호와의 천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여호와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창 18장; 출 23:20-23).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이스라엘을 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자만이 이 백성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그의 사자만이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과 중보 하는 사역을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슥 1:12 3:1-5). 도대체 이 사자가 누구입니까?
구약성경에는 약간의 현현(顧現)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현현은 베들레헴에 앞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출현(出現)입니다. 대부분의 성경 신학자들은 구약성경에 수록된 여호와의 에피소드(episode) 속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사자(使者)가 곧 그리스도 자신과 동일한 존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창세기 48:16을 보면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사자는 신약시대에 베들레헴에 임하기전 미리 현현하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부인이었던 애굽 여인 하갈에게 나타났습니다(창 16:7). 그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창 18:1). 그는 야곱에게 나타났습니다(창 28:13). 그는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출 3:2). 그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났습니다(수 5:13). 그는 기드온에게 나타났습니다(삿 6:11). 그는 삼손의 부모에게 나타났습니다(삿 13장). 그는 이사야에게 나타났습니다(사 6:1). 그는 극렬히 타는 풀무 속의 세 히브리 청년들에게 나타났습니다(단 3:25). 그는 다니엘에게 나타났습니다(단 6:22). 그는 스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슥 1:8).
우리는 오늘 이 분의 인도와 성령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이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보호하시겠다 하십니다. 인도하시겠다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의 목소리를 청종해야 합니다. 청종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성경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를 노엽게 하지 않음도 역시 그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 그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고 믿으면 예나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청종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내가 하겠다 (0) | 2011.06.18 |
---|---|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0) | 2011.06.16 |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 (0) | 2011.06.14 |
성물의 취급 (0) | 2011.06.13 |
하나님께 보이라 (0) | 2011.06.07 |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출애굽기23:19)
19절을 보면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맥추절과 칠칠절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고의 첫 열매입니다. 문자적으로 하면 농사에 관한 일이지만, 오늘 우리들의 수입은 여러 곳에서 발생합니다. 직장일 수도 있고, 사업장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첫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은 16절의 “네 수고의 첫 열매”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첫 열매들을 드리는 것에 관해서는 민수기18:12.13과 신명기26:2-11에서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민18:12-13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첫 소산 곧 제일 좋은 기름과 제일 좋은 포도주와 곡식을 네게 주었은즉 그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땅 처음 익은 모든 열매는 네 것이니 네 집에 정결한 자마다 먹을 것이라
우리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나님께서 직접 쓰시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쓰고 레위인이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쓰신 것 같이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리 제사장이나 레위인을 챙기시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가나안에 갔지만 분깃이 없었습니다. 열한 지파들이 내는 십일조와 헌물이나 헌금으로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들에게는 다른 직업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도 많은 해석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짐승의 어린 새끼들은 인기 있는 음식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어린짐승이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조리중에 어린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았습니다. 맛을 돋우는 방법으로 어린 새끼들을 어미의 젖으로 삶았습니다. 또한 때로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이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와 자식 간에 확립해놓고 성별하신 관계를 멸시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뒤집어엎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풍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히 귀한 존재입니다. 요한계시록17:8을 보면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면 되지 않습니다. 먹을 것과 먹지 않을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살되 세상 사람과 같이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은 제때에 드려야 하며, 성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인지, 내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0) | 2011.06.16 |
---|---|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 (0) | 2011.06.15 |
성물의 취급 (0) | 2011.06.13 |
하나님께 보이라 (0) | 2011.06.07 |
수장절(초막절/추수감사절)을 지키라 (0) | 2011.06.05 |
성물의 취급(출애굽기23:18)
18절을 보면 “너는 네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희생)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내 절기의 희생”이란 유월절 희생입니다. 여호와께 유월절 희생이 가장 훌륭한 여호와의 절기였습니다. 또한 내 절기의 기름이란 날이 밝기 전 밤중에 먹고 그 후에 남은 것을 불에 태워버렸던 유월절 어린 양의 고기입니다(카일·델리취).
유월절은 해방(Liberation)과 구속(Redemption)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킬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기 흩어져 살고 있다가도 유월절이 오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기 때문에 성전은 약 한 달 전부터 그 준비 작업에 들어갑니다.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순례자들을 위해서 도로를 수리하고 성전도 깨끗이 청소합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유월절이 시작되면 출애굽기12:3에서 명하신대로 각 가정마다 유월절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속죄의 제물로 바칩니다. 요세푸스의 말을 빌리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잡은 양의 수만도 보통 256,000마리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완성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더는 유월절의 어린양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셨습니다. 유월절에 관한 기사는 4개의 공관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마26:17-30,막14:12-26,눅22:7-23,요13;1-30). 누가복음2:41-42은 예수님이 어린 시절 유월절을 지킨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서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토론을 나누신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유월절이 오면 대부분의 경우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과 더불어 유월절 만찬을 나누신 최후의 만찬에 관한 기사는 4복음서에서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마 26장; 막 14장; 눅 22장). 요한복음 2:13에 보면 공생애를 시작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월절을 맞이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죽은 어린양이십니다. 이 말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조상 아담이 죄를 상속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 값은 엄청나서 누구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죄 값을 우리예수님께서 갚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절기의 희생제물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 어린양의 희생물은 예수님과 다름없기 때문에 유교병과 함께 먹어서는 안 되었고 아침까지 남겨두어서 상하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께 상한 것들을 드려서는 안 됩니다. 즉 성의 없는 예배라든지 하나님을 경히 여기는 것이라든지 성물(聖物)을 함부로 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보호와 인도 (0) | 2011.06.15 |
---|---|
하나님께 성별된 첫 태생 (0) | 2011.06.14 |
하나님께 보이라 (0) | 2011.06.07 |
수장절(초막절/추수감사절)을 지키라 (0) | 2011.06.05 |
맥추절을 지키라 (0) | 2011.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