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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다와 샤카브(출애굽기22:16,17)

고대의 여인에 대한 인권은 미미했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속한 소유물이었습니다. 아직 정혼하지 아니한 아비에게 속해있는 딸을 유혹하여 동침을 했을때도 가정소유물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였습니다. “동침하다”에는 구약성경에 “야다”([d'y: 알다, 이해하다)와 “샤카브”(bk'v; 눕다, 드러눕다)가 있습니다. 둘 다 “동침하다”라는 뜻은 같습니다. 그러나 “야다”의 용법과 “샤카브”의 용법이 다릅니다. “샤카브”(動詞)는 “눕다, 드러눕다”를 의미하며, “자는 것, 유숙하는 것, 동침하는 것, 죽어서 눕는 것” 등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야다’를 사용한 예는 창세기4:1입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아와 동침하매(야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샤카브의 사용된 예는 출애굽기22:16입니다.

사람이 정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빙폐를 드려 아내로 삼을 것이요

샤카브의 파생어들이 성적관계를 다룬 문맥에서 사용될 때는 언제나 불법적인 것입니다(창30:15,16, 삼하11:11은 예외). 이것은 동사 ‘샤카브’ 그 자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22:16은 간통을 불법화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2:22은 간음한 것이 발각된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8:22과 20:13은 동성애 관계를 금하는 진술에서 ‘샤카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7:21에서는 짐승과 “교합하는”(샤카브) 행위를 율법에 의해 저주를 선언합니다.

구약시대는 성적 탈선에 대해 보통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성경은 성적관계에 부정수단을 쓰는 것에 대해 매우 통렬하게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성적으로 문란한 문화권에 이스라엘이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방 종교의 가장 저질적인 특징들 중의 하나는 종교적 표현과 성적 표현이 종종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性의 神聖化가 아니라 宗敎의 性愛化였습니다. 따라서 본문도 처녀를 꾀어서 동침을 하면 반드시 그에 가중처벌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이 법은 하나님께도 큰 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백성입니다. 언약백성으로서 비언약인들과 똑같이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알아서 말씀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쿨한 백성들입니다. 무자비한 백성이 아닙니다. 죄의 백성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백성들은 멋진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을 보면 성적인 문제로 많은 성도들이 자유롭지를 못합니다. 이 죄로 인해서 사회의 비난이 쇄도합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성적인 죄는 성도들을 죽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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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맡겼을 때의 손해배상(출애굽기22:10-13)

만약에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켜달라고 하였는데 죽거나 상하거나(샤바르) 들에 있다가 강도들에 의해 몰려가도(대상5:21. 대하14:14, 욥1:15, 17), 다른 사람이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여호와 앞에서 두 사람(주인과 맡았던 자) 사이에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에 관해 죽였는지, 상하게 했는지, 또는 처분했는지에 관해 서약을 해야 했습니다. 웬만한 나라들은 가축을 이웃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자기의 집이 있고, 짐승의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목을 하는 나라에서는 있음직한 일입니다. 11절을 보면 가축을 맡았던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으면, 여호와께 맹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맹세로 인해서 가축의 임자는 그대로 믿어야 했습니다. 가축을 맡았던 사람은 배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에 그것을 맡아보고 있던 사람 이외에는 다른 목격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맡아보던 자가 여호와 앞에서, 즉 재판장 앞에서 서약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맹세는 하나님께 맹세하였기 때문에 거짓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축의 임자는 충분히 납득하고 믿을 수가 있었습니다(11절). 하지만 도적을 맞았으면 임자에게 배를 물어주어야 했습니다. 관리소홀로 인해서 도적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도적을 맞지 않을 수가 있는 대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2절). 그러나 사나운 맹수에 의해 찢겼다면 배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것을 증거 해야 했습니다. 찢긴 짐승을 보임으로서 주인에게 희생물을 구하려 했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약백성들입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사전에 계약을 했습니다(창 15:2-21).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돌보아주셔야 했습니다. 계약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토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20:22-26에서는 예배의 일반적인 형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권리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21:1-23:13에서는 민사적인, 사회적인 관점의 것들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 권리들입니다. 23:14-19에서는 여호와께 대한 종교적 계약적 관계에 있어서의 권리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자녀들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히 우리들이 맡을 수 없습니다. 잠시만 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자녀들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기회입니다. 예수를 믿게 할 어떤 상황이라도 만들어서 기필코 예수를 믿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내 자녀라고 내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만 위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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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재산을 손실했을 때(출애굽기22:7-9)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겼을 때의 처리법입니다. “맡겨 지키게”를 톰슨바이블(1)에서는 정당한 댓가를 주고 맡기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돈이나 물품을 지켜달라고 친구의 손에 재산을 기탁하는 예가 흔히 있었습니다. 고대사회는 투자가 어렵고 은행가가 아직 없었던 때이기 때문에 있을만한 신탁사항입니다. 또한 멀리 여행을 하거나 상인들이 그들의 집을 비울 동안에 재산을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재산을 맡겼을 때 그것을 다시 돌려주는 예는 흔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주지 않는 예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처리법을 모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신탁에 관한 것은 신용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신용이란 상당히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을 맡고 있을 때 이것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유주에게 도로 반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산이 수탁자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원리는 현대에도 적용됩니다. 신용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그 사람은 도적과 조금도 다름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에 세 자매가 살았습니다. 큰 누나는 시집에 가서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남동생이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누나는 그 동생을 위하여 논과 밭을 빌려주었습니다. 힘 펴는 대로 돌려주기로 하고 논과 밭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동생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차츰차츰 논과 밭을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 그 자매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바뀌어서 누나의 집이 심히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남동생의 집에서는 도와 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괘씸한 일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이 반드시 배신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살아보니까.

7절을 보면 맡긴 물건이 도적맞았다가 도적이 잡히면 도적이 2배로 배상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도적이 잡히지 않으면 물건을 맡은 자가 재판장(하엘로힘) 앞에 가서 물건에 손을 댔는지 안 댔는지의 여부를 조사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의심이 가기 때문입니다. 과실이나, 소나, 나귀나, 양이나 의복 등 어떠한 물건이든지 재판장 앞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재판장은 “엘로힘”으로 하나님이십니다. 사건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만큼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을 했을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처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탐심을 가지지 말라 하였습니다. 내 것이 아니면 욕심을 내지 말라 하셨습니다. 모든 문제가 탐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하나님 한분만 모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도적질이나 하고 탐심을 가지며,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면 그것처럼 추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용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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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한 손해배상(출애굽기22:6)

사람이 이웃의 재산을 도적질한 자들은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질책을 받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이를 엄히 꾸짖으며 엄한 형벌을 내리게 하여 손해를 기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에서는 절도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만죄로 인하여 남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연중 일정한 시기에 잡초를 태우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하지만 잡초를 태우는 일에는 항상 위험이 따릅니다. 그래서 굉장한 주의를 요하고 있습니다.

1998년 여름에는 하바로프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의 2만8천여 곳에서 발화하여 남한 면적과 맞먹는 지역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극동 송유관 인접지역까지 퍼져 하마터면 대참사를 빚을 뻔했던 이 화재는 8개월 동안 타다가 눈이 내려 겨우 진화됐습니다. 브라질에서도 1998년 1월부터 산불이 일어나 남한 면적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밀림을 태운 뒤 3개월만에 호우가 내려 진화됐습니다. 같은 해 여름에는 관광보고인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2개월간 계속된 산불로 12만 명의 이재민을 내고 2백5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보았으며, 같은 해 1월엔 호주 전국 50여개 지역에서 산불이 나 3만㏊의 숲을 태우는 등 역시 30년 이래 최악의 피해를 냈습니다. 2000년 5월4일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서 발생한 산불은 16일 뉴멕시코주 북부에서 샌타클래라 쪽으로 방향을 돌린 후 인디언 보호구역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1500여 곳을 소실시켰습니다. 이 산불로 184㎢의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으며, 로스앨러모스와 화이트룩 지역의 가옥 500여 채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재산 피해액만도 약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가 넘었습니다. 이토록 불은 무섭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손해를 입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위법행위로 손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또한 태만으로 인하여 손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이웃에 손해를 입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내가 중요하면 남들도 중요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마22:39).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언약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이웃사랑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같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데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에 가는 영혼들을 볼 때 불쌍함을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나 또는 우리가족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사랑은 결국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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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출애굽기22:5)

5절을 보면 고의성이 없는 부주의로 인해서 손해를 입혔을 때 배상하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혹은 포도원에서 실수로 짐승이 풀려서 채소나 곡식 열매 등을 먹어서 없앴다면, 배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고의적인 손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 과실입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라 하였어도 배상은 해야 했는데, 단순한 변상입니다. 없어진 만큼의 배상이기 때문에 대신 자신의 제일 좋은 것으로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갑절이라든지 네 배, 다섯 배 라든지가 없고 손해를 입힌 만큼의 배상이면 됩니다. 배상은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회복은 없습니다.

배상(!l'v;/shâlam/샬람)은 “온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샬람’은 “회복, (약속 등) 이행, 보상, 배상, 화해, 평화조약 체결”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샬람의 背後에 있는 일반적 의미는 완성과 성취-완전과 조화의 상태에 들어가며 회복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또한 ‘샬람’은 “정복자에 대한 공물의 상납”(수10:1)이나 “손해를 입은 자에 대한” 배상(출21:36)을 통해 평화가 회복되느냐 아니면 “사업 거래상의” 단순한 지불과 완료를 통해(왕하4:7) 회복되느냐 하는 평화의 개념의 시각도 있습니다. 서원을 갚으면(시50:14) 계약이 완성되고 이로써 쌍방이 ‘샬롬’의 상태에 있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도 잘해야 하고 사람에게도 잘 대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잘하고 사람에게는 잘못한다든지 사람에게는 잘하고 하나님께는 잘못한다든지 할 때는 문제가 붙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일방적입니다. 하나님께만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에게만 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두 잘못된 열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배상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도, 손해를 입힌 사람도 똑같이 만족함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손해를 입은 사람이 만족하면 하나님께서도 만족하십니다. 이것이 형제의 화목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갚아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지옥에 가야 할 빚을 갚지 못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고 있습니다.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는 대도 갚지 않고 있습니다. 당분간 못 갚는 것이 아니라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갚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빚을 갚지 못한 빚쟁이로서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빚을 갚아주신 예수님이 계신대도 그를 의지하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므로 영원한 빚쟁이로서 슬프게 멸망되고 맙니다. 손해배상은 이 세상에 있을 때 갚는 경제관입니다. 성도들이 빚을 지거나 남의 것에 손해를 끼치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으면 도둑과 똑같고 사기꾼과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것을 등치고, 교회에 십일조 내는 것 도둑질하는 것이며, 감사헌금하는 것, 강도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손해를 당합니다. 그래서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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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죄의 배상법(출애굽기22:1-4)

가축을 도적질한 것에 대해서는 도적질한 것이 죽었을 때와 살아있는 채 도적의 손에 있는 것을 구별하였습니다(카일·델리취). 소와 양을 훔쳐서 잡거나 팔면 소는 5배로, 양은 4배로 갚게 하였습니다. 소와 작은 짐승 간에 차이를 둔 것은 도적의 크기와 보상의 금액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절도의 죄를 정한 것은 교훈적인 목적입니다. 타인의 것을 훔치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것을 교육적인 목적으로 배상을 크게 했습니다. 또한 도적이 집을 뚫고 들어왔을 때(밤에) 그를 쳐죽이면 죽인 죄가 없었습니다(2절). 하지만 낮이면 도적이라 하여도 죽이면 피 흘린 죄가 있었습니다(3절). 밤도적과 낮도적을 구별하는 이유는 밤도적의 능력과 낮도적의 능력의 의도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도적이 살인할 목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밤에는 달랐습니다. 밤에는 도적에게 반항 할 경우에는 흥분한 나머지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도적은 반드시 배상해야 하는데 배상할 것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즉 노동이라도 해서 갚아야 했습니다. 4절을 보면 도적질한 것이 아직 살아 있으면 소나 나귀, 양 등을 2배로 갚도록 했습니다.

창세기1:26-27과 3: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노동규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노동의 명령을 주셨습니다. 노동은 여러 가지의 직업입니다. 사무직이라고 해서 노동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모두 모두 노동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신성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서 인간의 생활을 영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것으로 살려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쳐서 생활을 하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중한 벌을 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소위가 아주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배나 다섯 배로 갚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약백성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산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계산이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남의 것을 탐을 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적은 도적이 있는가 하면 합법적인 도적들이 있습니다. 펜으로 법을 이용해서 수십억원의 돈을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는 일도 우리의 몫입니다. 성경은 남의 것을 탐을 내지 말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고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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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잃었을 때II(출애굽기21:35-36)

이스라엘에서 소는 상당한 재산이었습니다. 굳이 이스라엘이 아니더라도 소는 상당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에 대한 사건사고로 인해서 분쟁이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에 대한 분쟁을 해결해줘야 했습니다. 소와 소가 서로 부지중에 받았을 경우, 상대방의 소가 죽었을 경우에 처리방법입니다. 35절의 경우에는 산 소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1/2로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소도 똑같이 1/2로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는 없어졌지만 분쟁의 요소는 남지 않습니다. 공평하게 처리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받은 소가 전과가 있다면 문제는 달랐습니다. 죽인 소가 받는 버릇이 있는 것을 그 소의 주인이 알았다면 관리소홀로 주인이 배상해야 했습니다. 곧 산 소로 손해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신 죽은 소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소끼리의 분쟁을 해결토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이웃에게 항상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웃에 대한 의무태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에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생활 중에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정의의 법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13:10을 보면 이웃에 대한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hJ ajgavph tw'/ plhsivon kako;n oujk ejrgavzetai: plhvrwma ou\n novmou hJ ajgavph.

사랑(아가페)은 이웃에게 악(카콘)을 행치 않는 것입니다. 악은 친교(코이노니아)를 헤치기 때문입니다. 악은 하나님과 성도를 갈라놓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사람들에게 악을 행치 않아야 합니다. 대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윤리적인 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ajgaqo;")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입니다. 사랑은 율법(novmo")의 완성(plhvrwma)입니다. 완성(플레로마)는 “채우는 행위”입니다. 즉 율법의 완성의 總合이 아닙니다. 모든 율법을 이미 다 이룬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의 완성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마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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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상 피해를 입었을 때(1)(출애굽기21:33,34)

아프리카 산골 작은 마을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마을 사람 거의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들은 선교사가 가르쳐 준 대로 기도의 삶을 생활화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에 자기만의 기도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이상 그곳을 찾아가 기도를 하였습니다. 어느새 마을에서 기도처에 이르는 곳까지 여러 개의 기도 길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을 “각자의 기도 길” 혹은 “나의 생명 길” 이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가 기도를 게을리 하여 기도처를 찾지 않으면 그 기도 길에 풀이 자라났습니다. 신앙의 친구가 조용히 찾아가 “형제님의 생명 길에 풀이 많이 자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변화가 없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의 친구 몇 사람이 대신 그의 기도처를 찾아갔습니다. 가서 대신 기도해 준 다음 그들의 친구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형제님, 우리가 형제님의 생명의 길을 닦아 놓았어요. 주님이 거기서 형제님을 기다리시는데 저희가 함께 가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며칠간 그 형제와 함께 그 길을 동행하며 기도의 회복을 도왔다고 합니다. 신앙은 꾸준히 관리하는 것입니다.

33절부터는 재산에 관한 법입니다. 이스라엘의 소유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했던 가축의 생명이 부주의로 인해서 죽었다면 이것도 마땅히 보상해야 했습니다. 만일 어느 사람이 구덩이나 저수지를 파거나 열어놓았다가 다른 사람의 소나 나귀가 거기에 빠져 죽으면 그 구덩이의 주인은, 그 짐승의 값을 전부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짐승은 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물통은 평평한 돌이나 두꺼운 판자로 덮었습니다. 물을 긷고는 반드시 덮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울타리가 없는 팔레스타인에서 흔히 가축이 얼마든지 구덩이에 빠져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을 못합니다. 태만은 한 도시를 불타게 하고 잠자고 있는 수백 명도 앗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게으름을 조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것,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듣지 않는 것 게으름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파멸케 하는 것, 게으름 입니다.즉 세상에는 바쁘지만 영혼을 위한 것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게으름입니다. 마태복음25:26 절을 보면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따라서 가지고 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영적인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게으르지 않은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길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부지런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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