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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를 지키라(출애굽기23:14)

.hn:V;B' yli gjoT; !ylig:r] vlv;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하가그)를 지킬지니라”

절기( gg'j;/하가그)는 “(순례)절기를 지키다, 춤추다, 흔들거리다”입니다. “하가그”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중요한 세 개의 순례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사용되었습니다(출23:14, 레23:39, 41, 신16:15, 슥14:16,18,19).

출23:14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레 23: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

레23:41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신16: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찌니라

슥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슥14:18-19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 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절기“하가그”는 그 말이 의미하는 대로 춤추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춤추는 것입니다. 일 년 중 세 가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여호와 앞에서 나타나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聖會로 세 번 모이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세 번 여호와의 성소에 순례하라는 명령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루살렘성전에 절기를 지키러 모이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는 것은 권리이자 특권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절기인만큼 하나님과의 친속을 다지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이 절기는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지킨다”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다른 무엇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이치가 옳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면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욱 결속을 다져야 했습니다. 신정국가이며 언약백성의 국가인 만큼 하나님과 결속을 다지지 않으면 곧 파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는 세상과의 결속보다 하나님과의 결속을 더 다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하나님과의 일입니다. 절기를 지킨다고 해서 모이는 것에만 신경을 써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뜻대로 해야 합니다. 절기를 지키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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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지켜라(출애굽기23:12-13)

12절을 보면 6일간은 힘써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는 혼자만 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쉬라는 것입니다. 소를 쉬게 해야 했습니다. 나귀를 쉬게 해야 했습니다. 종들을 쉬게 해야 했습니다. 계집종의 자식까지 쉬게 해야 했습니다. 나그네도 숨을 돌리게 해야 했습니다. 이상으로 말한 사람들은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을 쉬게 함으로서 평온한 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약백성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비심이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고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종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충분하게 휴식하게 하여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 이러한 것을 우리들에게 적용할 경우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고용주들이나 상류 인생들은 자신들보다 하류 계급 사람들의 노동을 알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자신들도 그러한 과정을 겪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만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로로 지친 종업원들의 노고를 모릅니다. 그래서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매우 분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과로로 죽거나 잠을 못자거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생산성향상만 신경을 씁니다.

아들이 둘 있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가던 해 할머니가 죽게 되자 아들들이 슬피 울며 장례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3일장이 끝나고 관을 지고 방문을 나갈 때 둘째 아들의 실수로 관이 그만 벽에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관속에서 할머니가 관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졸도한 것을 의사의 오진으로 죽음으로 판명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후 10년간 더 사시면서 손자들과 건강하게 사시다가 이젠 정말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아들들 그리고 손자들의 울음 속에서 3일장이 끝나고 관이 방문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의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이 들렸습니다. 야! 벽 조심해! 요즘 노사관계가 심상치 않습니다. 실로 노사관계가 위의 노부부 같은 그런 노사관계로 전락하는 것 같습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른 말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경고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또한 다른 신들은 이름은 부르지도 말고 들리게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얼마나 다른 신들 즉 다른 종교들을 존경하는지 모릅니다. 다른 종교를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에서 더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하는 것들을 기독교에서 용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종교를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 말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신들의 이름을 들리게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지키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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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순종)(출애굽기23:10-11)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6년 동안은 땅을 파종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토지의 사용은 6년이었습니다(10절). 제7년에는 토지에 아무것도 심지 않아야 했습니다. 묵혀 두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 자라난 것들은 가난한 자로 먹게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했습니다. 포도원과 감람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년의 법을 제정하신 것은 육체적인 노동을 멈추고 한 해를 쉬는 동안 종교적이고 영적인 일에 더욱 몰두 하도륵 하기 위해서입니다(신31:10-13). 또한 가난한 이웃이나 심지어 들짐승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긍휼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영농법과 인조 비료가 개발되지 않았던 때이기에 땅의 휴식을 통해 토지의 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법은 레위기 25:1-7에서 정식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안식(창2)안식일(출20)안식년(레25)희년(레25)구원(신5)안식기업(신12)기업(시95)이레(단9)구속(눅4)영원한안식(히4)

안식의 강조점은 안식일이 아니라 “쉼”입니다. 하나님은 6일간 일하시고 7일째 쉬셨습니다. 안식에 동참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6일간 일하시고 7일째 안식한 패턴 속에 우리를 몸담아 넣어주는 하나님의 복입니다. 안식일은 농사일, 노동, 상행위 등을 그쳐야 합니다. 노동에서 해방되어 쉴 것을 의미합니다. 일주간 속에서 하루를 성결하게 보내야 하는 적극적인 휴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식년은 땅의 안식년입니다(레25:1-8). 명시된 요구는 땅의 휴식입니다. 땅은 6년 경작하고 7년째는 쉬게 해야 했습니다. 인간을 쉬게 할뿐만 아니라 땅을 쉬게 하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땅은 인간의 손에 있을지라도 무제한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그 땅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이라 하면 통상 우리는 주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시간입니다. 물론 매일매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안식일(주일)에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를 하나님께서 보고 싶으시다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감사하고 다만 그 앞에 나가야 합니다.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인간의 신체구조상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쉬면서 일해야 합니다. 인간이 쉬어야 짐승도 쉽니다. 인간이 쉬어야 땅도 휴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휴식해야 모든 것들이 휴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섬겨야 다른 것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안식에 대한 의미는 안식일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휴식입니다. 이것을 바로하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에 혼돈이 옵니다. 직업의 다양화로 인해서 안식일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유흥과 여가로 인해서 안식일(주일)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일을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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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입니다. 잘 번식합니다.

이름을 잘모릅니다.

패랭이 꽃입니다. 항상 풍성하게 피어있습니다.

국화입니다. 꽃이 피기전에 세번을 잘라주면 풍성해집니다.

작년가을에 심은 양파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래보여도 매일 딸기를 조금씩 수확합니다.

도라지입니다. 2년이 되어갑니다.

감자와 완두콩입니다.

강낭콩입니다

고추를 몇포기 심었습니다.

이름을 모르는데 노란꽃이 예쁘게 핍니다.

작약과 백합입니다.

들깨입니다.

옥수수도 심었습니다.

한여름에 즐겨먹는 오이와

방울토마토

대파를 모종한 것입니다.

매발톱입니다.

꽃잔디입니다. 화려하죠.

허브입니다.

이 외에도 호박, 가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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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이란 소송이 들어온 양자를 철저하게 가려서 당사자 간의 분쟁에 대하여 구속력이 있는 裁斷을 내리는 권한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재판이 잘못되었을 시에는 억울한 사람이 있게 되어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재판관에게 말하기를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함부로 하거나 공평치 않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의 대의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의 권리를 곡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보호막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성도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한 자들)은 그 말씀대로 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공평하게 처리해야 했습니다. 7절을 보면 재판관은 거짓 일을 멀리해야 했습니다. 거짓(세케르)일(다바르)을 멀리하며(라하크) 즉 거짓된 일을 옮기라(제거하라)하셨습니다. 재판관이 바른 재판을 하지 않고 거짓된 재판을 할 경우에는 옳은 풍속과 바른 국가관이나 공동체관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거짓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재판관은 무죄한 자(결백한, 무죄한, 깨끗한, 자유로운, 면제된)와 의로운 자(공정한, 올바른)를 죽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은 이것에 실패했습니다. 의로운 자들을 죽였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살해했습니다. 이것이 이들이 망하게 된 동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의로운 자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서 그 뜻을 폈더라면 우리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이 영향은 지금 우리가 지금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라샤)을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 하셨습니다. 모두 갚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나폴레옹이라든지 징키스칸, 알렉산더 등은 도둑들입니다.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들을 영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도둑이요 강도요, 폭도들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타인들을 짓밟았던 사람들입니다.

8절과 9절을 보면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과 뇌물을 받지 말 것을 재판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 뇌물만 받지 않는다 해도 상당히 괜찮은 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뇌물 때문에 이 나라가 얼룩지고 있습니다. 뇌물은 밝은 눈을 어둡게 합니다.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는 것이 뇌물입니다. 따라서 바른 재판을 뇌물을 받았을 때는 할 수가 없습니다. 언약백성은 일반백성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선(토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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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출애굽기23:4,5)

4절과 5절을 보면 우리의 생각에 잘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법정 투쟁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원수라 하는데 그의 소유물인 길잃은 나귀나 소를 보았을 때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그 소나 나귀를 멀리 쫓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들을 원수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신22:1-4을 보면

1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찌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본체 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찌니라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원수의 짐승이 길 잃은 것을 보았다면 그것을 다시 주인에게로 돌려주어야 하며, 만일 그 짐승이 과중한 짐으로 인해 엎드러진 것을 보거든. 다시 그 짐승을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엎드러진 것을 보거든 못 본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를 도와서 짐을 부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3을 보면 “네 원수를 미워하라”하였지만 모세 율법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부당하게 끌어낸 가르침이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이 원수를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학자들이 잘못 끌어내서 굳어버린 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방법으로 원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롬12:20), 원수를 사랑하며(마5:4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마5:44) 사랑하며 오래 참으라고(살전5:14)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특이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의뢰하며 믿는 우리들은 특이합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즉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안에 가져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도 어떤 장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치권에 있는 목사와 장로들은 필연적으로 원수를 맺습니다. 결코 원수를 사랑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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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수호(출애굽기23:2,3)

多數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訟事송사에도 적용하라 하셨습니다. 소송에 다수를 따라 적용할 경우 위헌을 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2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즉 편파적인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법개혁위원회가 2004년8월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연 미국식 배심제 모의재판에서 선발된 14명의 배심원이 재판에 앞서 선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배심제(陪審制)의 문제점은 '사회정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적인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법을 토대로 한 판결에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이런 일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법적인 이론에 의한 공방보다는 인간적인 면(불쌍하게 보인다던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한다던가…)을 이용하여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죄를 지어도 말 잘하는, 능력있는 변호사만 만나면 무죄판결을 받기가 쉬우니까, 범법행위를 하는 것을 그리 두려워하질 않게 되고, 결국 사회정의 실현이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배심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점들이 있기 때문에 배심제의 발생지인 영국에서 일찍이 폐지하였고,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이 제도를 잠시 도입했다가 곧바로 폐지하였다고 합니다.

흔히 민주주의는 다수결원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수준에 똑같이 바른생활의 토대에서 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다수의 원리를 따른다면 다수결의 橫暴횡포라는 것이 있어서 바르게 집행할 수가 없습니다. 국회에서 횡포부리는 것을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다수의 횡포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우리는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거나 반대하면 國策事業도 어찌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항상 변합니다. context는 변하지만 text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교회안에서 반드시 다수결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차선책으로서 쓸 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소송도 해야하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잘못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로 가나안을 정탐했던 스파이들의 보고입니다. 12명중 10명이 바른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2명만 바른보고를 했습니다. 그 결과 다수의 의견을 좇다가 그들은 40년을 광야에서 보내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다수결에 의해서 또는 감정에 의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에 의해서 처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감정에 치우치거나 다수결로 처리를 할 때에 많은 오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적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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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내가 해야 한다.

불신자들은 기독교의 전도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외치고, 버스 속에서 외치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외치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주는 모습을 방송에서도 신문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기독교인들도 하면 안 된다. 물론 전도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불신자들과 어울려서 같이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했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졌다. 인간의 교통수단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우리들보다 현재 지적인 수준이 높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도하면 훨씬 잘 될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우리보다 능력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사는 절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만일에 천사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면, 굳이 열 두 제자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었다. 특히 베드로와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그들을 구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천사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천사들은 전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전도의 명령을 천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천사는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천사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누가 하는가? 바울사도와 사도들이 했다. 그리고 오늘은 이 사명을 우리들이 고스란히 맡은 것이다. 천사는 다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도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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